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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t Mar 13. 2024

밴드명이 "버티고개면" 어떨까?

도시 이름을 밴드 이름으로 썼던 그룹들 이야기 

몇 천 장의 CD가 자랑인 적도 있었지만 시절이 바뀌고 이사를 몇 번 하다 보니 짐스러워져 버릴 건 버리고 장르 별로 외장하드로 이주시키고 PC-Fi로 안착했다. 며칠 전, “POP”이라 적힌 외장하드를 열고 익숙한, 자주 듣는 아티스트를 FOOBAR로 옮기며 재미난 점을 발견했다.  연식이 있다 보니 선택된 아티스트들이 8090 중심이긴 한데 지금 알파세대가 들어도 알 법한, -물론 노래도 모르고 밴드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지만- 밴드 이름이 리스트업 됐다는 것이다. 


시카고(Chicago), 보스톤(Boston), 캔사스(Kansas), 마이애미사운드머쉰(Miami Sound Machine), 포티쉐드(Portishead), 맨하탄트랜스퍼(Manhattan Transfer), 베를린(Berlin) 등 등. 

록음악을 오래 들어왔거나 연식이 있는 이들이라면 눈치챘을 거다. 8/90년대를 말 그대로 주름잡은 밴드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밴드명이 모두 도시 이름이다. 


당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지만 많은 밴드가 국가, 대륙 및 주, 도시를 포함한 다양한 장소의 이름을 따서 그룹명을 지었다. Asia, Europe 등의 대륙명이 있고 국가 이름은 대표적으로 Japan이라는 그룹이 있었다. 하지만 압도적으로 도시 이름이 많았고 뉴 웨이브, 신스팝, 댄스, 글램 메탈, 헤비메탈, 컨트리 및 가스펠은 물론 록과 클래식 록을 포함한 모든 장르를 아울렀다. 

도시 이름을 딴 밴드 중, 가장 유명하고 성공한 밴드는 바람 많은 도시, ‘윈디시티’에서 결성된 록밴드 “시카고”다. 시카고는 브라스(관악기)를 밴드에 도입하며 소프트록,  재즈록이라는 장르를 정착시켰고 특히 보컬리스트 피터 세트라(Peter Cetera)의 목소리를 각인 시킨 <If you leave me now>, <Hard to say I’m sorry/Get away>로 친숙하다. 1967년 결성돼 50여 년 간 활동하고 있으며 201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도시명 밴드로 시카고만큼 유명세를 갖고 있는 그룹이 보스톤(Boston)이다. 이 그룹은 하드록과 프로그레시브 요소가 혼합된 독창성 가득한 음악들을 발표했고 특히 국내에서 가장 사랑받는 <More than a feeling>이 수록된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2천만장 이상이 판매되어 그룹의 성가를 더했다. 카운트테너로 불려도 손색없을 브래드델프(Brad Delp)의 보컬도 큰 몫을 했다. <Amanda>라는 곡도 여전히 사랑받는 대표곡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도시 이름을 단 밴드 중, 최고는 캔사스(Kansas)다. 같은 미국 밴드지만 시카고, 보스톤과는 아주 다른 프로그레시브적인 색채가 강한 록 밴드다. 대한민국 ‘최애 팝송’ 중 하나인 <Dust in the wind>가 대표곡으로 캔사스의 노래 중에서 유일하게 빌보드 10위 안에 이름을 올린 곡이고 특이하게 앨범 발매 25년 후인 2008년에 디지털 다운로드로 골드앨범을 인증 받았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지만 ‘죽음의 필연’에 대한 곡으로 모든 것은 먼지로부터, 그리고 먼지는 모두 되돌아 간다라는 철학적 매세지를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Carry on wayward son>을 가장 좋아하는데 프로그레시브, 아트록 성향을 가장 잘 표현했고 노래 초반에 들려지는 보컬 파트가 특히 인상적이다. 이 곡 역시 성격의 돌아 온 탕자를 연상케 한다. 

록에서 잠시 눈을 돌려 재즈로 넘어가 본다. 맨하탄트랜스퍼(Manhattan Transfer). 1971년 결성된 4인조 혼성 재즈-팝 보컬그룹으로 넘사벽의 화려한 혼성 화음이 돋보이는 코러스와 스타일리시함이 돋보이는 음악을 했다. 개인적으로 대행사 초창기 시절 오디오팀에서 광고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던 그리고 그들의 대표곡인 <The Boy From New York City>, <Twilight Zone> 커피 광고를 대표하는 <Java Jive> 등을 여전히 자주 듣는다. 맨하탄이라는 단어가 주는 세련됨이 아주 잘 붙는 그룹이라 생각된다. 


도시 이름을 사용하면서 미국 문화의 다양성을 잘 담아내 밴드가 있다.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Miami Sound Machine). 80년에 등장한 이 그룹은 휴양지로 유명한 플로리다 도시에서 이름을 딴 라틴 팝 그룹으로 전염성 있는 댄스 비트와 중독성 있는 훅으로 인기를 끌었고 후에 솔로로 데뷔한 쿠바 출신의 카리스마 넘치는 보컬리스트 글로리아 에스테판(Gloria Estefan)이 밴드를 대표했다.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음악으로 국제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라틴 퍼커션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팝, 디스코, 라틴 리듬의 독특한 퓨전음악을 펼치며 이후 다른 크로스오버 아티스트를 위한 길을 열었다.


미국을 벗어나 영국으로 가보면 도시명을 쓰는 더 매력적인 그룹을 만날 수 있다. 

포티스헤드(Portishead). 영국 브리스톨 근처 마을 이름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처음 이 그룹 음악을 들었을 때가 기억난다. ‘트립합’이라는 장르도 익숙지 않았지만 한 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독특한 분위기의 사운드스케이프와 소울풀한 보컬에 일렉트로니카, 재즈, 힙합의 요소를 혼합한 음악은 충격적이었다. 음울함이라는 단어만으로는 가둘 수 없는 그들의 음악은 이후 일렉트로닉 음악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마지막으로 플로렌스 앤 더 머쉰을 말하고 싶다. 이탈리아의 매혹적인 르네상스 도시에서 영감을 받은 영국 밴드로 아트 록, 포크, 바로크 팝의 요소를 결합하여 당시에 누구와도 겹치지 않는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파워풀하고 감성적인 여성 보컬리스트 플로렌스 웰치(Florence Welch)가 이끄는 이 밴드는 매혹적인 라이브 공연과 생각의 꼬리를 물게 하는 자극적 가사로 국제적인 찬사를 받았다. 


이들 외에도 유명한 그룹들이 도시명, 국가명, 지명을 사용해 음악 활동을 해왔다. 


그러면서 우리 나라 음악 시장을 돌아봤다. 노래 제목이나 가사에 지명이 쓰이는 경우도 참 많은데 그룹, 밴드명에 지명이 쓰인 건 정말 드문 것 같다. 이상해서일까? 그룹 이름이 <구파발>, <삼천포>, <버티고개> 등이 밴드명으로 쓰여지면 사람들이 웃을까? 미국 사람들은 <Kansas> <Miami Sound Machine>이 처음 등장했을 때 안 웃었을까? 


지금 생각나는 국내 밴드 중 <서울전자음악단>이 있다. 누구의 아들, 누구의 동생 그러는 게 안 좋지만 신중현의 아들, 신대철의 동생 “신윤철”이 몸담고 있는 밴드다. 신윤철을 처음 알게 된 건 1990년 대 중반 <명태>라는 곡을 들으면서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는 기타를 정말 친다. 그가 몸담은 <서울전자음악단>의 음악이 참 좋다. 미국 도시보다 “서울”이 더 좋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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