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어른이 아빠라서
연초 회사 웍샵에서 참석자 한 명이 “좋은 어른”이라는 화두를 제시하며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간 적이 있었다. 어린이의 권리 옹호와 후원을 업으로 하는 NGO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에 포함되는 “어른”을 어떻게 포지셔닝하고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차원에서 제시된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게 이 화두를 캠페인화 해 보라는 “오더”가 내려왔다. 아, 왜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봤다. 살면서 ‘어른’이라는 단어를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가? 없었다. 그런데 “어른”에 딱 맞는 한 사람이 떠올랐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3 아시안컵을 보내면서 다시 소환된 한 사람. 축구선수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씨였다. 그에게서 “좋은 어른”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어른이라는 말이 이 사회에서 자주 사용된 적이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긴 분이 세상을 떠나면 항상 “이 사회의 큰 어른”이라는 말로 그분을 보내드렸다. ‘큰 어른’과 ‘좋은 어른’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존재하겠지만 대한민국에서 ‘좋은 어른’이 갖는 의미는 문화적, 사회적, 윤리적으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어른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한다. “어른스럽다”라는 말이 이를 보여주는 것 같다. 여기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존중하며, 상황에 따라 적절한 예의를 갖춘다는 것이다. 여기에 붙여 좋은 어른은 분명 “책임감과 성숙함”을 지닐 것이다. 자신의 의무와 역할을 이행하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한다. 부모님에게서 혹은 상사에게서 이런 모습을 볼 수도 있다.
배려와 인내도 좋은 어른의 덕목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어른의 모습은 사회적 책임감을 갖는다는 것이다. 좋은 어른은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이행하고 자신의 행동이 사회나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사회나 이웃을 돕는데 기꺼이 참여한다.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의 행동과 그가 전하는 묵직한 말속에서 이런 모습들을 발견했다. 그는 위대한 축구 선수를 키워낸 감독이기에 앞서 이 사회를 구성하는 어른이고 한 사람의 아버지다. 앞서 말한 ‘튼 어른’과는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게서 ‘좋은 어른”의 답을 구할 수 있다.
그에게서 그냥 어른이나 “꼰대’의 모습보다는 철저한 ‘자기 객관화’를 통해 상대에게 방향을 보여주는 어른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아버지의 실패를 거울로 삼아라. 내가 삼류였기 때문에 흥민이에게는 다른 프로그램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라고. 본인도 축구를 했고 그리고 지금도 축구를 가르치는 위치이기에 사실 이런 말을 자식에게 하기란 쉽지 않다. 단순히 경험을 경력으로 부풀려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체화된 무엇을 스스로 평가해 보고 그중에 정말 살이 될 만한 것을 말한다. 어미새처럼 그저 먹이를 자식 입에 넣어주면서 키우는 것과는 다르다. 그 안에 그만의 인내, 책임감, 성숙함을 담았고 그것이 제대로 자식에게 전달돼 실력으로 태도로 보인 것이 아닐까 한다. 자식은 그것을 받아 “겸손”과 주장의 “책임감”으로 보여준다.
아이와 부모 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만의 접근이 보인다. “자유라는 연료가 타야 창의력이 나온다.” “아이들의 일에 실패란 없다. 오직 경험만이 있을 뿐이다.” 창작집단, 광고대행사 리더들이 할 법한 말이지만 이것은 자식들을 대하는 지금 대한민국 부모들에게 던지는 그의 화두다. 내 모습과 희망을 아이들에게 투영하지 말고 그들의 모습을 만들고 뽑아내도록 하는 것이 부모의 모습이고 책임이라고 나는 해석된다.
손웅정 씨의 나이는 잘 모르지만 같은 세대에게도 툭 던진 말도 곱씹게 된다. “전성기라고 하면 참 좋지만 전성기란 내려가는 신호다. 아름답게 점진적으로 내려가야 한다. 한 번에 추락하는 게 아니라 점진적으로 점진적으로.” 묵직하게 다가와서 숨을 가다듬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의 말과 행동이 좋은 어른을 100% 보여주는 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존중, 책임감, 성숙함, 이해심, 인내, 배려, 그리고 지혜 등의 가치를 자기화해서 맞은편, 특히 자식을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좋은 모범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그것들이 좋은 어른으로서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어쨌든 손흥민은 좋겠다. “좋은 어른”이 아빠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