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향기 한 번 맡아보았으면
이번엔 제발 오래 살아주라.
식물을 키우는 데는 여러 목적이 있다. 공기정화, 인테리어, 향기 등. 개인적으로는 관심을 쏟는 만큼 커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얻게 되는 소소한 만족, 기대감이 가장 크다. 그런데 그 기대감을 맛보기가 영 쉽지가 않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아내와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다. 크지 않은 거실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식물들의 겨울 지내기 이후 생존에 관한 일이다. 물론 모두 “생”하셨다면 실랑이가 없겠지만 “졸”한 분들로 인해 분란이 생기는 거다. 아내는 물만 제대로 주고 바람만 잘 쏘이면 되는데 그거 하나 제대로 키우냐며 핀잔을 준다. 핀잔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어진다. 제대로 키우지도 못하면서 또 무슨 식물들을 집으로 들이냐는 것이다.
나름, 제 때에 제대로 물 주고 바람 쐬고 하는데도 식물들이 내 맘과 다르게 조금 자라다 생을 마감한다. 식집사 레벨은 아니지만 물 주는 법, 환기 등을 공부하며 식물들을 키우고 때 되면 분갈이도 해가며 정성을 쏟았지만 그들의 생애주기는 정말 예측이 어렵다. 이번 겨울을 가고 내 바람과는 다르게 몇몇을 보내야만 했다. 가을에 들인 로즈메리, 부레옥잠, 물배추, 워터코인, 보스턴 고사리가 짧은 생을 마감했다. 물론 모두 내 불찰이고 미숙함이다.
한편으로는 정말 억울하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다르지만 식물들에게 물 주는 것으로 내 아침을 시작한다. 매일 챙겨 먹어야 하는 혈압약보다도 우선이다. 책을 통해 배운 것이긴 하지만 봄과 여름에는 아침과 저녁에 물을 주고, 가을과 겨울에는 아침에 한 번만 물을 준다. 물을 준 후에는 잎이 마르거나 시들지 않았는지, 줄기나 뿌리가 손상되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그런데 이 또한 어렵다. 흙 표면을 만져보고 잎 상태도 체크해 가며 물을 주지만 반응은 제 각각이다. 잎이 갈변하거나 뿌리가 약해지고 심지어 아예 고사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가끔 영양제를 주기도 하지만 역부족인 경우가 태반이다.
고수들의 말을 빌면 식물을 키우는 데는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걸 누가 모르나. 그리고 집안의 습도 유지를 위해 식물을 키우는데 그 키움을 위해 습도를 맞춰야 한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많이 건조한 편이다. 이걸 감안해 물 주고 환기시키고 하는데 조절이 어려워 가습기까지 동원해 봤지만 여전히 난맥이다.
아내가 말한다. 식물은 단독주택으로 가면 키우라고, 여기서는 더 이상은 무리라고. 아, 단독주택까지 나오니 할 말이 없다. 오디오파일들이 마지막 단계가 음악을 듣기 위해 집을 바꾸는 거라더니, 내가 그 짝이다.
하지만 이번 봄에도 이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새 식구를 들였다. 아파트 거실을 고려했을 때, 쉽지 않겠지만 치자나무와 거북 알로카시아를 들였다. 또 공을 쏟으며 분갈이, 물 주기를 시작했다. 이 봄에 아주 소소한 바람을 가져본다.
이번에는 제발 오래 같이 살자, 아이들아. 나도 이번 봄엔 치자 향기로 한 번 취하게 해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