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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t Mar 18. 2024

17,800원으로 아내에게 칭찬받기

여보, 이제 덜 튈 거야


설거지를 마친 아내의 상의는 늘 물에 젖어 있었다. 그러면서 늘 하는 말이 있다. “싱크대가 내 키에 안 맞아. 수전도 너무 낮고, 물이 너무 많이 튀어. 단독주택 가면 싱크대는 꼭 맞춤으로 할 거야”. 아내의 그런 바람을 들어줄 능력이 못 되는 나는 대꾸도 못하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간다.  


대부분의 맞벌이 부부들처럼 우리 집도 가사 분담을 지키려 노력한다. 아내의 영역은 청소, 세탁, 설거지 나는 음식 만들기와 기타 아내의 지시사항을 이행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설거지와 청소는 오히려 일을 두 번 하게 만든다는 것이 분담의 이유다. 


아내의 청소, 설거지는 거의 집착이라 불릴 정도로 깔끔을 추구하고 그만큼 시간도 꽤 걸린다. 특히 설거지를 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 마치 식기를 한 꺼풀 벗겨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온 힘을 다해 닦고 또 닦는다. 몸살 나지 않는 게 신기하면서도 저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기도 하다. 이런 열정을 바친 설거지 후의 아내의 모습은 기진맥진이고 마치 물과 한 판 승부를 치른 사람 같다. 안쓰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집이나 싱크대를 바꿔줄 능력이 안 되는 나로서는 뭔가 대안을 찾아야 했다. 물론 최고의 대안은 설거지로부터 그녀를 해방시켜 주는 것이지만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는 이상 불가하므로 적어도 옷이 젖는 건 줄여줘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싱크대물막이 - Mosh 

시작은 커뮤니티와 쇼핑몰 검색에 앞서 최적의 키워드 찾기. “싱크대”, “물튀김”, “방지” 등을 조합해 검색하다 보니 한 가지로 모아진다. “싱크대물막이”. 홍수철에 자주 들어 본 “물막이”가 여기에 붙다니. 신통방통하다. 바로 커뮤니티를 들어가 보니 구매 유경험자가 많고 쇼핑몰을 검색하니 정말 놀라웠다. 네이버 기준, 96,000개가 등록돼 있다. 세상에 우리만 몰랐나.


사용자 후기와 아내의 선호 색깔을 고려해 주문하고 2-3일 뒤 “싱크대물막이”가 도착했다. 실리콘 재질에 접착 실리콘을 추가 부착하는 그런 아이였다. 바로 설치하고 아내에게 사용을 독려하면서 눈치를 살폈다. 표정에 100% 만족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든 것 같아 안심하고 있는데 아내가 물었다. “근데 얼마야?”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포인트 쓰고 무배로 17,800원”.       

싸게 막았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조금 더 신경 써서 미리 준비해 줬다면 젖은 티셔츠로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여보 미안해. 다음에는 물막이 필요 없는 제대로 된, 당신 키에 맞는 싱크대 준비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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