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를 생각하게 만든 충청도 사투리
얼마 전, 친한 선배와 카톡을 주고받는데 계속 말끝에 “~~유”를 붙여 톡을 날리길래 “왜 이러는겨?” 하고 답을 했다. 하트 뿅뿅으로 답을 한다. 저녁 술자리에서 물어봤다. ‘갑자기 사투리를 쓰고, 왜 그런겨?” 선배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너는 온양 찌질이 소년시대 병태를 모르는겨? 엄청 유행인디”. 임시완이 OTT 드라마 <소년시대>를 찍은 것도 알고 있었고 그 배경이 온양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내가 의외였던 것은 충청도 사투리가 유행하고 있고 낼모레 60을 바라보는 선배가 그걸 재밌다고 흉내 낸다는 것이다.
내 고향도 충청남도 부여 언저리, <소년시대> 배경인 그곳과 아주 가깝다. 드라마 배경인 1989년에는 그곳을 떠나 서울에 주소지를 둔 때지만 드라마 곳곳에서 느껴지는 정서는 낯설지 않고 오히려 기억 속 압축된 폴더를 풀어내는 느낌이었다. 직접 만나보진 못했지만 전설처럼 공유되던 주먹 좀 쓰는 형과 그의 여친 이야기, 유치한 별명, 제도권을 살짝 벗어난 무용담, 연애편지, 종이학까지 언젠가 한 번은 스쳐간, 혹은 그 안에 흠뻑 젖었던 그 시절 이야기가 피식 웃음 짓게 만든다. 하지만 그 시절을 소환하게 만든 큰 요소 중 하나는 적절히 잘 녹아져 사용된 충청도 사투리다.
사투리가 유행된 적은 적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 개그 프로그램 최양락의 “괜찮아유”, 김미화의 “쓰리랑 부부”, 박준형의 “생활 사투리”, 장동민의 “그까이꺼” 등이 있었고 드라마로는 전국 사투리가 골고루 나온 <응답하라 1988/1994> 영화는 <친구>, <범죄와의 전쟁>, <써니> 등이 대사를 기억나게 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런 대중문화 이전에 내 마음속 충청도 사투리의 주인공은 “엄마”다. 엄마 역시 오리지널 충청도 사람이다. 1989년에도 거기 계셨고 지금도 거기에 사시며 그 충청도 사투리를 쓰신다. ‘서울 사람’이 된 나는 이제 사투리를 거의 쓰지 않지만(내 기준에는) 충청도 사투리를 접할 수 있는 대표 루트는 여전히 “엄니”다. 직접 찾아뵙거나 간혹 전화 통화 시에 강제 추억 소환이 이뤄진다. 전화를 드리면 첫마디는 늘 “응, 아들.”이다. 그 이후는 끊임없는 충청도 잔소리다. 밥은 먹은겨? 인제 먹은겨? 솔찬히 비싸더만, 허지마 아서 등, 끊임없는 사투리 향연이다.
엄니의 충청도 사투리가 유행하는 이유는 아마도 충청도 사투리는 은근히 짧으면서 적절한 유머 감각도 담고 있다는 거 아닐까 한다. 그리고 쎄지 않다. 경직되지 않은 “조”로 배려를 담아낸다. 그렇다고 무조건 느리지도 않고 끝에 “유”만 붙이지도 않는다. 우리 엄니 같은 경우, 엄청 빠르게 말씀하신다. 충청도 사투리는 중용의 미를 갖춘 말매무새를 지니고 있다. 선거철마다 충청도를 ‘중도”, “캐스팅보트”라고 표현하는데 정치를 떠나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유행할 만하다.
<소년시대>가 앞서 만들어진 수많은 10대들의 학교폭력을 주 소재로 사용하고 있지만 차원이 다른 인기를 얻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친숙한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순박하며 정감 있는, 앞서의 장점을 담은 충청도 사투리를 적절히 사용해 그 같음을 다르게 보여줘서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 엄니의 사투리처럼.
엄마가 담근 부추김치가 생각난다. “엄니, 시방 정구지 담그는겨? 건건이로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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