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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t Mar 28. 2024

나도 베케에 살고 싶다.

제주도 생태정원카페 "베케(veke)"

아내의 꿈은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을 갖는 것이지만 서울에서 맞벌이하는 우리에게 아직은 그저 위시리스트이자 말 그대로 ‘꿈’이다. 아직 정원은 없지만 대신, 공부하며 준비하는 심정으로 집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을 챙겨 보고 잘 가꾸어진 정원을 자주 찾아 눈요기를 한다. 아내는 이번 제주도 여행에도 그런 ‘꿈’을 보여주는 곳을 꼭 가보자 그랬다. 도착한 첫날, 그런 정원을 찾았다. ‘VEKE(베케)’라는 카페다.  

아내가 베케를 알게 된 계기는 피트 아우돌프라는 자연주의 정원사와 베케의 주인인 김봉찬 씨가 정원을 소재로 대화를 나누는 <지구 정원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찾아보니 이미 SNS 핫플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눈길을 끈 건, 베케의 주인장인 김봉찬 씨가 우리가 좋아라 한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봉화), 아모레 성수(서울), 모노하 한남(서울) 등의 정원을 만든 분이라는 거다. 기대가 크다. 미니멀하면서도 눈길을 잡아 끄는 매력이 있는, 또 가보고 싶은, 똑같이 만들고 싶은 그 정원들을 만든 분이라니. 

차를 주차하고 조금 걸어 미로가 연상되는 통로를 지나 묵직한 문을 열면 약간은 어둑한 생태정원카페 베케의 공간이 보이고 맞은편 큰 통창 너머로 초고 정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원을 마주한 자리는 약간 아래로 파인 공간으로 그곳에 앉으면 정원과 교감이 가능한 눈높이를 갖게 된다. 유리창 너머 찐 정원을 보러 밖으로 나오면 이곳이 그저 예쁜 정원이 있는 카페가 아닌 자연을 있는 그대로 통째로 담은 곳임을 발견하게 된다. 

베케는 ‘밭을 일구다 나온 돌을 쌓아놓은 무더기’라는 뜻을 가진 제주도 말이라고 한다. 눈앞에 펼쳐진 정원에는 베케(돌무더기)와 이끼를 듬뿍 담고 있다. 그 옆으로 제주도의 봄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게 이름 모를 꽃과 초목들이 만발하다. 

현무암으로 만든 돌담이 자연스레 구획을 나눠 주고 그 땅에 답답하지 않게 너그러이 꽃밭이 펼쳐진다. 사람이 조경한 걸 알면서도 그 자연스러움에 ‘자연’을 생각하게 된다.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 봄 꽃들이 만발한 그 아래 쉬어 가라는 듯이 예쁜 의자, 벤치들이 곳곳에 놓여 있다. 의자마저도 원래 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자연스러워 내가 만든 정원이 아닐까 착각하게 만든다. 주인장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마음에 드시나요?”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네, 좋아요. 그런데 이렇게 가꾸시려면 안 힘드세요?” 우문에 현답이 돌아온다.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여전히 재미있고 좋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식물 키우기에 어려움이 많은 우리 부부는 하소연을 하게 된다. “왜 자꾸 식물들을 들이면 오래가지 못하고 시들어 버릴까요?” 예쁘게 피어난 노란 꽃을 가리키며 한 말씀 주신다. 사람들 욕심입니다. 집에 맞고 자기에게 맞는 식물을 들인 다음 잘 자라길 기대해야지, 맞지도 않는 애들 데려다 잘 크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입니다.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이 자리에 얘가 맞기에 심었고 그러면 이렇게 잘 자랍니다”.     

사람살이도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울리는 공간에, 어울리는 식물을 들여야 잘 자라듯이 우리 삶도 나를 알고 내가 있는 환경을 알고 거기에 맞게, 맞춰서 살아야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내가 담길 그릇을 그리고 그 그릇을 잘 가꿔가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한 소중한 시산들을 “베케”가 만들어줬다. 

제주도에 오면 꼭 들러야 할 곳이 하나 더 생겼다.

하나 더, 베케는 소중한 정원 말고 또 좋은 걸 품고 있다. 산미 짙은 커피와 흑임자라테를 꼭 마셔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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