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없는 아재의 취향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WIP라는 단어를 가끔 접하게 되는데 Work in Progress의 약자로 “작업이 진행 중” 혹은 “일의 진척도”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현장 용어가 패션 브랜드에 쓰이고 있다. 1899년에 설립된 칼하트를 기반으로 재탄생한 스트리트 브랜드인 칼하트윕(Carhartt WIP, Carhartt Work In Progress)이다. 칼하트는 노동 현장에서 입는 워크웨어와 캐주얼웨어를 주로 만들며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현장 노동자들의 특수 의류나 작업화도 만드는 독특한 패션 브랜드다.
이런 칼하트(윕)가 갑자기 TV 프로그램에 소환됐다. 물론 국내 MZ에게 사랑받기 시작한 지 꽤 되어 놀라운 건 아니지만 소환 장소가 런던의 빈티지샵이고 출연자가 선택한 옷이 요즘 사랑받는 “디트로이트 재킷”이라는 게 놀라웠다. 이 재킷이 시장에 나온 게 1954년이다.
약간 다른 이름이었지만 통칭 ‘재킷’이라는 패션 아이템을 유행시킨 그 옷이다. 재킷을 보면 대부분 “아 이거” 할 정도로 익숙한 디트로이트 재킷이지만 MZ 세대 출연자가 빈티지샵에서 이 옷을 선택하며 ‘최애 아이템’이라고 말하는 게 놀라웠다.
칼하트로 대표되는 워크웨어와 함께 유행하는 패션 트렌드가 있다. 바로 ‘아메카지”다. 아메리카와 캐주얼을 일본식으로 합성해 만든 조어다. 워크웨어는 광부나 노동자들이 입던 스타일이 기본이고 함께 청자켓, 청바지, 카고바지, 조끼(베스트), 부츠 등도 포함한다. 아메카지는 미국의 캐주얼한 스타일과 일본의 전통적인 스타일이 결합된 것으로, 미국의 워크웨어와 일본의 전통적인 복식을 현대적으로 재결합한 스타일이다. 두 스타일 모두 실용적이고 편안하면서도 멋스러운 느낌을 준다는 게 공통적인데 이 영역이 바로 MZ들의 ‘픽’이 된 이유다.
MZ들이 명품을 싫어한다는 건 아니지만 동시에 실용성과 멋을 겸비한 스트리트웨어도 선호한다. 여기에 레트로 감성을 듬뿍 담은 ‘빈티지 감성’을 표현하기에 워크웨어와 아메카지는 적격이다. 레이어드룩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다양한 스타일링을 가능케 하는 워크웨어는 개성과 실용 모두를 만족시키고 트렌드를 벗어난 듯 보이면서도 트렌드의 중심에 있게 하므로 차별화도 덤으로 갖게 하는 다재다능한 룩을 만들어 준다. 워크웨어와 살짝 결을 달리하는 아메카지는 워크웨어에 밀리터리 룩을 한 스푼 정도 가미한 룩으로 보면 좋을 것 같다.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옷에 관심이 많은 내게 워크웨어와 아메카지는 새로운 취향을 갖게 한다. 어릴 적 겉멋에 입었던 미군 군복이 풍기는 ‘밀덕’의 냄새보다는 편안하게 합리적 비용으로 또래와는 다른 룩을 보여주는 맛이 아주 새롭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평범한 ‘아재’들의 폴로 스타일 셔츠, 니트, 치노를 벗어나 가벼운 워크웨어, 아메카지 룩을 레이어드 해 입는 맛은 사라졌던 취향과 자신감까지도 조금은 살려준다.
50대에게만 맞는 옷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지금도 환절기, 간절기가 되면 룩북을 뒤져보곤 한다. 프린트해 책상 앞에 붙여 놓고 혼자 런웨이를 만들기도 한다.
워크웨어나 아메카지가 모두에게 잘 어울리는 건 아닐 것이다. 다만,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취향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더욱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선택한 스타일이 자신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한다면 이 보다 더 좋은 아이템이 있을까?
런던 여행 프로그램 중간에 한 출연자가 신현준에게 별명을 붙여준다. “무철”이라고. 50대 중반에 철이 없다고. 그렇다면 나도 오늘부터 “무철”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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