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st Apr 01. 2024

들라크루아가 2명이었어

무지한 건지, 앎이 협소한 건지, 지난주 재미난 일이 있었다. 아내가 전시회를 가자고 해 “무슨 전시인데?” 물었더니 “들라크루아”라고 답하며 3월 31일이 마지막이니 서둘러 예매를 부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부부가 그림에 조예가 깊은 건 아니지만 나름 해외 여행할 때, 미술관은 꼭 들르고 국내에서도 좋은 전시회가 있으면 찾는 편이라 아내의 요청이 그리 새롭진 않았다. 다만 좀 의아했던 건, ‘들라크루아’의 그림이 아내의 취향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사람이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같은 낭만주의를 좋아했었나희한하네 하면서 예매를 하러 지정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혼란의 파도가 밀려왔다.

 

물랭 루주, 영원히, Moulin Rouge toujours, 2016 ©Michel Delacroix 

‘들라크루아’가 맞다. 그런데 아니었다. 일단 혼란은 전시회 타이틀에서 시작됐다.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 “파리의 벨 에포크? 파리의 아름다운 시절?” 19세기 화가가 ‘파리의 아름다운 시절’을 그렸다고? 대표작을 살펴봤다. 눈에 익은 그림이고 화풍인데 내가 알던 그 들라크루아가 아니다. 한 화가의 화풍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 미술 문외한도 알 정도의 차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예매 페이지를 찬찬히 살펴보며 ‘무지’와 ‘오해’의 경계를 오가는 중, 무지로 기울었다. 그리고 한 마디, “아, 들라크루아가 두 명이었네.” 미셸 들라크루아(Michel Delacroix) 그리고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그런데 한 명은 이름, 그림 모두 익숙하고 한 명은 그림만 익숙했다. 그림 그린 화가 이름을 몰랐던 것이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iberty Leading the People)

내게 더 익숙한 화가는 외젠 들라크루아였다그의 화풍과 그림을 잘 안다기보다는 교과서를 통해 어려서부터 알았고 그 그림이 주는 임팩트가 컸기 때문이었다사실 외젠 들라크루아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이라는 작품으로 대표되는 화가지만 그의 그림 중 이런 정치색을 띈 작품은 이게 유일하다오히려 그는 단테 등의 문학 작품과 신화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화풍을 이어간 '역사화가라는 표현이 맞다


무지와 오해를 풀고 예매를 마치고 아내에게 전화 걸어 슬며시 물어봤다. “당신이 보고 싶어 하는 들라크루아는 어떤 들라크루아야?” 물어보면서도 “참 유치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대답은 의외로 쿨했다. “물랑루주 그림 그린 들라크루아. 왜?” “아, 아냐, 그냥 내가 맞게 예매했나 해서. 31일 예매했어, 할인받아서.”

그런데 미셸 들라크루아 그림은 왜 익숙하지 하고 생각해 봤다. 한참을 생각해 보니, 구독하는 블로그에서 ‘어린 시절 파리의 풍경을 자신 만의 화풍으로 동화적으로 구성해 일 년 내내 크리스마스를 느끼게 하는 화가’라는 소개를 접한 적이 있었고 블로그 안에 다양한 겨울 파리 풍경을 담아낸 그림에 어릴 적 크리스마스 카드 같다고 생각했던 기억을 떠 올렸다. 약간의 사전 정보를 통해 91세 노장의 현역 화가이고 작년 하반기 시작된 전시회가 역대급 성황을 이어가고 있으며 관람객들의 평도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요일 이른 아침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놀랐다. 성황 중인 전시회고 마지막 날이라고는 하지만 ‘미술관 오프런’을 마주할 줄을 상상도 못 했다. 15만 관람객이 공연한 소리가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궁금했다. 사실 이 화가는 특별한 미술 사조를 만들었거나 전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그런 화가는 아니다. 물론 91세의 나이에 아직도 캔버스를 마주하고 다작을 해내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놀랍긴 하지만 그렇다고 미술 전람회에,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15만 명이 관람했다니, 너무 궁금했다. 왜? 나는 뭔가 다른 포인트가 잇지 않을까 했지만  대부분 관람객들이 감동한 포인트는 역시 노인의 열정 그리고 그 열정이 주는 감동이었다고 한다.  

정해진 동선이 있는 건 아니지만, 호기심과 기대로 테마 별로 전시된 작품을 하나하나 관람해 봤다. ‘파리의 아름다운 시절’을 담았다고 하지만 화가가 살던 당시의 파리가 아닌 동심에 기억된 편린들을 바탕으로 덤덤하게 가볍게 파스텔톤으로 그린 그림들이었다. 오롯이 화가의 기억 속에 남은 아름다웠던 추억을 캔버스에 펼쳐냈다. 눈길을 끈 건 자주 등장하는 오브제, 소재들이었는데 기억 속의 노트르담 사원, 애완견, 의사 선생님, 파리 어딘가 있었을 연인들 그리고 이들을 아우르는 “따뜻함”이었다.  

너무 피폐해지는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90세 노장이 전하는 동심과 따뜻함을 맛보려 여길 찾지 않았나 싶다. 15만 명이 중요하다기보다는 어떤 형태로든 어린 시절 추억, 따뜻함을 느껴보려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가 보다. 나를 포함하여.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황사가 걷힌 따스하고 맑은 하늘이 반긴다. 2024년 3월의 끝 날, 전시장에서 그리고 서울 하늘 밑에서 제대로 된 따스함을 맛봤다.   

작가의 이전글 자크뮈스(Jacquemus)는 명품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