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이빨을 예찬한다.

함께 살아 온 내 이빨들에게

by jest

50대 중반을 넘기며 병원 출입이 잦아졌다. 최근 들어 치과 출입이 잦아졌고 오늘도 그런하루다. 어느 병원이든 가기 싫지만 유독 가기 싫은 병원이 치과다. 일단 돈이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병원을 압도하는 치과만의 청각, 후각, 시각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공감각적 공포가 싫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오복 중 하나가 주어지지 않은 걸.

복이 없음을 자책하며 접어 뒀던 『읽다, 일하다, 사랑하다』를 읽는데, 우연찮게 제이디 스미스의

『하얀 이빨(white teeth)을 소개하는 챕터를 만났다.


얼핏 책 제목이 기억나기는 하나 사실 제대로 된 독서는 전혀 없었기에 치과를 생각하며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소설 “하얀 이빨”에서 이빨, 특히 하얀 이빨은 ‘이민자의 정체성’, ‘혈통’을 드러내는 상징이고 세대 간 전해지는 유전, 정체성, 문화적 혼종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읽힌다. 예전에 ‘하얀 이’가 흑인의 피부색과 대비해 인종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어 한편으로는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1970/80년대에 학교를 다닌 이들에게 “이빨 까다”라는 비속어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말로 속이거나, 실속 없는 말을 늘어놓는 행위를 비꼬는 표현으로 기억되고 나도 사용한 것 같다. 특히 ‘까다’라는 동사는 드러낸다는 의미이니 담고 있는 의미가 심장하긴 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이빨”이라는 단어가 신체 기관 중 하나라는 걸 넘어 참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이빨은 보통 32개이고 많이 사용하는 건 대략 28개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안에도 각자의 이름이 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사람의 생애주기, 즉 성장이나 통과의례와 맞물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를 반영한 문학작품이나 영화도 꽤 많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빨은 직접적으로 성장과 세대의 교체를 드러내는 신체적 변화이기 때문에, 한 개인 또는 집단이 어디서 왔고 어떤 뿌리를 갖는지를 상징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 가장 먼저 ‘젖니’가 있다. 젖니는 인간의 생애에서 가장 먼저 나는 치아로, 의학적으로는 유치(乳齒, primary teeth)라고도 부르며 생후 6개월에 나기 시작해 대략 30개월 전후에 완성이 된다. 그리고 12세 전후에 영구치로 교체가 완료된다. 젖니는 가장 원초적이고 어린 시절의 정체성, 뿌리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여겨진다.


이어 교체되는 어금니, 송곳니를 포함하는 영구치는 성인이 되며 형성되는 새로운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 같다. 이 시기는 사춘기와 질풍노도의 시작이며 문화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은유하기도 한다. 성장과 통과의례가 함께 하는 시기인 것이다. 나만의 정체성을 수립해가는 시기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영구치의 시기에 눈에 띄는 두 이빨이 있다.

송곳니. 일단 날카롭다. 왠지, 공격성을 띄고 힘을 보여주는 것 같으며 원초적인 생존 욕망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물적 본능과도 연결되는 것 같고. 야생 동물, 특히 최상의 포식자를 묘사할 때 송곳니가 자주 등장하지 않던가. 반대로 어금니는 '버티는 힘’, ‘일상의 생존’, ‘소화를 통한 적응’을 비유할 것 같다. 우리도 일상적으로 “어금니 꽉 깨물고” 등의 표현을 사용하니 말이다. 영구치가 만들어지는 시기, 영구치 안에 이들이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삶을 살아가며 맞닥뜨릴 여정을 준비하며 앞으로 맞닥뜨려 헤쳐갈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 싶다.


하지만 그 여정은 살아보니 그리 녹녹지 않다. 넘어져 이가 깨지고 스트레스로 이가 흔들리는 경우도 있고 충치가 생겨 발치하고 심지어 임플란트를 하기도 하고, 이빨이 흔들리고 부서지고 빠지는 것은 여러 상징을 내포한다. 억압된 감정, 균열 난 가족 관계 혹은 숨겨진 역사로도 해석된다. 가끔 ‘이가 빠지는’ 꿈을 꾸는 적이 있어 찾아보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안, 상실에 대한 두려움, 변화의 전조를 상징한다고 한다. 특히 앞니가 빠지는 꿈은 사회적 이미지, 정체성 변화와 연관된다고 한다.


문학작품이나 영화 안에서 이빨은 위에 말한 것들 이상으로 많은 의미와 상징을 보여준다. 그만큼 "이빨"이라는 존재가 담고 있고 보여주는 것들이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우주를 담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입 안에서 평생 함께 하는 이빨은 먹을 수 있는, 씹을 수 있는 즐거움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과 살아온 여정이 담겨 있는 것이다.


거울 앞에 서서 내 이빨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힘들었지만 아직 잘 버티고 있는 내 이빨들을 예찬한다. “수고했어.”

keyword
작가의 이전글NGO 브랜딩,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