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필요한 모범택시는 몇 대일까?
드라마를 즐기거나 챙겨 보는 타입은 아닌데 가끔 몰아보기를 하게 만드는 드라마가 있다. 시즌3에 접어든 “모범택시”가 그중 하나다. “정의가 실종된 사회, 전화 한 통이면 오케이”라는 홍보 문구가 이 드라마의 정체성을 보여주는데 법이 보호해 주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를 대신해 사적 복수를 대행해 준다는 의미를 담은 듯하다. 그런데 문득 사적 복수 드라마 제목이 하필이면 제목이 “모범택시”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범”이라는 단어는 누군가에게는 강박일 수도 있는데 “모범생”이라는 단어가 가장 대표적이지 않을까? 이에 비춰볼 때, '모범적'이라는 의미는 일반적으로 규칙을 따르고, 사회적 기준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드라마 속 주인공은 법과 제도의 한계를 넘어서서 사적 복수를 대신해 주는 인물이기 때문에 '모범'이라는 단어가 사회 규범을 벗어난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지 않나 싶다. 이는 일상적 규칙을 따르지 않지만, 정의를 실현하는 사람이라는 모순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택시일까? 내게 모범택시는 비싼 택시일 뿐인데. 일반적으로 택시는 사람들을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이동 수단이며 다양한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다양성을 상징할 수 있다. 드라마에서 택시는 ‘복수’를 실현하는데 필요한 수단 혹은 공간으로 변모하는데, 이는 택시를 타고 가는 승객이 결국에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복수를 이루는 과정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택시는 '범죄'와 '정의' 사이에서의 중립적 위치를 가진 존재이며 약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어떤 측면에서는 정의의 사도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결국, "모범택시"는 사회 규범을 따르지만 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사적 복수로 해결하는 캐릭터의 복잡한 성격과, 택시라는 이동 수단을 통해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돕는 이야기를 대변하는 것이다.
"모범택시" 류의 드라마를 내가 왜 좋아할까를 생각해 봤는데 법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적 해결을 통해 제공되는, 혹은 내가 기대하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결론에 도달했다. 더불어 이 드라마가 담고 있는 가치, 의미를 나름 정리해 보면 이렇다.
가장 먼저, "모범택시"는 사회의 불평등과 이를 풀어줄 정의가 없음을 전제로 한다. 주인공은 법의 테두리 내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려 하며, 이는 정의의 상대성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법 체제가 모두를 보호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주인공이 사적인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은 "무조건 법을 따르는 것이 정의가 아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사적 해결은 복수의 형태로 나타나며, 다만 피해자가 직접 행하지 않기에 대리복수라는 한계는 있지만,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복수로 정의가 실현됨을 보며 시청자는 억눌렸던 감정들을 해소하고, 동시에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불만을 풀어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복수의 정당성과 초법적 정의의 위험성이라는 대립각이 세워질 수 있지만, 이건 드라마고 이렇게라도 기대치를 보고 싶다는데 그게 문제일까?
"모범택시"는 주로 권력자, 기득권자, 부유층들이 법을 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상황이 낯설지 않다. 동 시간대 뉴스에 비슷한 이야기로 Fact로 나오니 말이다. 다시 말해 이 나라에서 법적 시스템이 항상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반영하며,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들이 사적인 복수를 통해 사회적 부조리를 해결하려 하는 모습은 법과 권력이 가진 한계에 대한 강한 메시지로 보인다.
더불어 이 드라마의 개연성을 이해하려고 하는 이유는 "모범택시"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강한 존재론적 불안을 안고 있습니다. 이들은 각자 과거의 트라우마나 복수의 욕구를 안고 살아가며, 그들의 행동은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주인공들이 복수와 정의 실현을 위해 행동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극복하며 동시에 누군가의 고통을 해결하려는 심리적 동기가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 간, 사적 복수를 소재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인기를 끄는 배경에는 이런 다양한 요인들이 있지 않나 싶고, 시간이 흘러 나아짐은 있겠지만 절대 없어질 것 같지 않은 사회적 불평등이 상존하는 한 “모범택시”는 계속 운행할 것 같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보이는 사회악적 불평등의 사라지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모범택시가 필요할까?
사실 나도 지금, “모범택시”를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