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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t Feb 21. 2024

하프타임 랩소디 #2
- 베껴쓰기가 뿜어내는 도파민-

필사하는 즐거움에 대하여

몇 년 전에 뭣도 모르고 필사라는 단어를 여기저기 남발한 적이 있다. 그저 베껴 쓰기 정도를 생각했고 책을 읽는 중에 언젠가 인용이 필요하다 싶거나 나름 중요하다 생각되거나 꼭 기억해 둬야 할 것들을 만년필을 이용해 공들여 노트에 옮겨 적는 것을 어리석게도 필사라 여겼다. 


그러다 지방 여행 중, 고흥에 있는 “조종현 조정래 김초혜 가족 문학관에 들러 제대로 된 필사를 만났다. 독자들이 보내온 어마어마한 양의 태백산맥 전권 필사본. 압도적인 양과 그 안에 담긴 작품에 대한 존경에 할 말을 잃었던 기억이 있다. 제정신 차리고 스스로에게 얼마나 욕을 했는지. 독자들은 좋아하는 작가를 닮아간다. 생각도 글쓰기도. 

조정래 작가께서 아들, 며느리에게 <태백산맥>을 베끼게 한 이유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다. “매일매일 성실하게 꾸준히 하는 노력이 얼마나 큰 성과를 이루는지 직접 체험케 하려는 것이다. <태백산맥> 베끼기를 통해 아들과 며느리가 인생이란 스스로 한 발, 한 발 걸어야 하는 천릿길이란 것을 깨우쳐 주고 싶었다. 인생이란 지치지 않는 줄기찬 노력이 피워내는 꽃이라는 것을 체득시키고 싶었다”라고.  ‘비판적 지식인’ <경기일보>2013.7.4 발췌


베껴 쓰기에 담긴 위대한 노작가의 생각이 묵직한 울림으로 머리와 가슴에 커다란 잔향을 남긴다. 노작가는 필사에서 삶을 대하는, 살아가는 방법을 말씀하셨다. 지금은 나도 조용히 혼자 만의 필사를 시작했다. 마음을 다잡으며. 노작가의 화두를 마음에 담고 나에게 있어 필사, 베껴 쓰기는 무슨 의미인가를 정리해 본다. 

필사를 하며 얻게 되는 가장 큰 즐거움은 읽어야 해 읽어 내리라 하는 강박에서 벗어나 원작의 내용, 구조 등을 분석하며 새로운 이해의 시간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나만의 주석을 달게 되고 때로는 재해석도 할 수 있게 된다. 이를 문학적 이해도가 늘어난다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작가의 글을 분석하고 모방함으로써 꼭 소설이나 문학작품이 아니더라도 이해도가 증진되고 작가의 글쓰기 스타일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 수 있을 것 같다.


Creative 적 발상을 해 보는 기회도 된다. 작가의 아이디어를 곱씹어보며 나만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거나 영감을 얻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필사는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과 스타일을 경험함으로써 창의성과 영감을 확장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개인적으로 필사를 하며 만난 문장이 준비하는 제안서의 흐름을 긍정적이고 더 강화된 방향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된 적이 있었다. 도파민이 별 거일까? 도파민이 뿜뿜함을 경험했고 이런 중독이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더불어 필사는 글쓰기 능력, 기술을 향상하는데 도움이 됨을 느낀다. 원작의 문장 구조, 어휘 선택, 문체 등을 분석하고 모방하면서 나만의 글쓰기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 필사를 통해 분석하면서 독해력과 비평적 사고능력이 좋아지고 때로는 모방을 통해 내 글쓰기에 작가의 예시 방법, 그를 통해 풀어내는 방법, 마무리 짓기로 달려가는 방법을 배우고 어느 새인가 나도 나만의 방법을 찾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필사가 주는 가장 큰 매력은 나만의, 나만을 위한 시간 속에서 나를 돌아보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대로 필사에 매몰되다 보면 그동안 내게 없었던 집중력이 발휘됨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필사가 주는 최고의 유의미가 아닐까 한다. 

아직은 필사 새내기라 페이지가 많지 않은 단행본으로 진행 중이지만 조만간 오롯이 나만의 집중력으로 전집을 베껴 쓰기 할 날을 기대한다. 


필사와 관련해 발견한 것 중 하나. 여러 필기구를 써 보았지만 만년필 만한 게 없다는 것이다. 궁합이 맞는 재질의 노트에 흐르는 만년필의 유려함과 거기서 나오는 소리는 또 다른 도파민 중독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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