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1일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합니다.
밤사이 가라앉은 생각들이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지만,
아침은 늘 그렇듯
아무 조건 없이 열립니다.
오늘이라는 그릇에
무엇을 담을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는
조금 조심스럽게
하루를 들어 올립니다.
1908년 1월 11일 — 그랜드 캐니언이 미국 국립기념물로 지정된 날
수백만 년에 걸쳐
천천히 깎여 내려간 협곡은
당장의 쓸모보다
지켜야 할 가치로
선택되었습니다.
이날의 결정은 말합니다.
깊이는
서두르지 않는 시간 속에서
비로소 의미가 된다고.
모든 것을 개발하지 않아도
세상은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고.
창가에 놓인 화분 하나.
물을 준 지는 며칠 되었고
눈에 띄는 변화는 없습니다.
하지만 흙을 살짝 파보면
뿌리는
조용히 더 깊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자라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그 식물은
분명히
자기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그걸 지켜보는 나는
괜히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습니다.
오늘,
깊이를 서두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숨을 쉽니다.
나는 자주
눈에 보이는 성과로
나의 하루를
재단해 왔습니다.
얼마나 했는지,
얼마나 나아졌는지,
얼마나 달라졌는지로
나를 판단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날들을
쉽게
실패라 불렀습니다.
가라앉게 하소서.
즉각적인 변화만을
의미라 여기는
조급한 시선을.
그리고
맑아지게 하소서.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쌓이고 있는
시간과 마음의 층위를.
깎이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부분이
게으름이 아니라
보존일 수 있음을
알게 하소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깊이가
비어 있음이 아니라
형성 중임을
믿게 하소서.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덜 선명할지라도
더 깊어지고 있을 수 있음을
스스로에게
허락하게 하소서.
모든 하루가
절정일 필요는 없고,
모든 성장이
눈에 보여야 할 필요도 없다는
단순하지만 어려운 진실을
오늘은
조용히 받아들이게 하소서.
이 하루의 끝에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
나는 나를 깎아내리지 않고
지켜냈다고.
가라앉아
조급함이 잠들고,
맑아져
시간이 빚는 깊이에 대한
신뢰가 살아나도록,
오늘을
남겨두는 하루로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