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뚝-탁, 그것이 희망의 심장박동이었다
아침 바닷물은 아직 차가웠다.
소년이라 부르기엔 이미 너무 많이 아팠고,
영웅이라 부르기엔 아직 시작도 안 된 한 사람이
의족을 물속에 천천히 담갔다.
1980년 4월 12일, 캐나다 뉴펀들랜드 세인트존스 쪽 바다. 그는 오른쪽 다리 대신 금속으로 된 다리를 바다에 적셨다. 그리고 병으로 잘린 그 다리의 자리에, 차가운 바다를 다시 심었다. 그 물을 두 병에 담아 들고 그는 말했다. 하나는 끝까지 가져가서 태평양에 부어 줄 거라고. 하나는 기념으로 간직할 거라고. 그는 그날 자기 여정을 ‘희망의 마라톤’이라고 불렀다. 그는 캐나다를 가로질러 달릴 거라고 했다. 한 발과, 한 의족과, 온몸의 고통과 함께.
그의 이름은 테리 폭스.
18살 때, 오른쪽 다리에 뼈암이 찾아왔다. 의사는 말했다. 살고 싶다면 무릎 위로 잘라야 한다고. 그는 다리를 잃었고, 생존율은 50%라고 들었다. 그건 몸의 절반이 잘려 나가고도 “아마 절반은 살 수도 있어요”라는 뜻이었다.
보통 사람은, 거기서 무너진다.
보통 사람은, 거기서 “왜 나야”라고 묻는다.
그런데 그는 이상한 쪽으로 부러졌다.
그는 병상에서 다른 환자들을 봤다. 머리카락이 다 빠져 있는 아이들. 주사바늘을 붙잡고 엄마 손을 찾는 아이들.
그리고 결심했다.
“나는 달릴 거야.
내가 아픈 이유를, 그냥 내가 아픈 걸로 끝내지 않게 할 거야.”
그는 캐나다 전 인구가 약 2,400만 명이던 그 시절, “사람 한 명당 1달러씩만 모아서 2,400만 달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 돈 전부를 암 연구에 쓰겠다고. 다른 게 아니었다. 단지 다음 아이는 덜 아팠으면 해서.
이 목표는 미친 소리로 들렸다.
의족으로, 매일 마라톤 거리를? 나라 끝에서 끝까지, 8천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그런데 그는 이렇게 썼다.
“내가 기어서라도 마지막 한 마일까지 갈 거예요.”
“사람들이 기적을 믿어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기적을 믿어요.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의 달리기는 조용히 시작했다. 아무도 몰랐다. 첫 며칠은 비, 눈, 폭풍. 차들은 경적을 울리고 어떤 운전자는 욕을 했다. 어떤 날은 모욕처럼 느껴졌고, 어떤 날은 정말로 쓰러졌다. 사람들은 쳐다보기만 하고, 거의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는 화가 나고, 좌절하고, 동행하던 친구와 싸우고, 서로 입도 안 열던 날도 있었다.
그런데요.
작은 마을 하나에서 일이 일어났다.
뉴펀들랜드의 한 항구 마을. 인구 약 만 명 남짓. 그 마을 사람들은 길 가장자리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 그리고 조용히 돈을 모아 그에게 내밀었다. 그 금액은 무려 만 달러가 넘었다.
만 명짜리 마을에서, 만 달러.
그 순간 테리는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아, 나 혼자가 아니구나.” 하고.
그는 매일 마라톤 거리만큼 달렸다. 하루 26마일. 하루 42킬로미터.
상상해보자.
의족은 살 덩어리가 아니라 금속이다. 금속은 피부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루 수십 킬로미터씩 금속과 살이 부딪히면, 살은 갈려나간다. 피가 고이고, 피가 마르면 굳고, 굳은 피는 다시 벗겨지고, 그 아래 새 살이 노출된다. 그리고 그 위에 그는 다시 의족을 끼우고, 또 뛴다.
그의 달리기는 점점 입소문처럼 번졌다.
“한 다리로 캐나다를 횡단하는 애가 있다더라.”
“암 환자들을 위해 돈을 모은대.”
“미친 거 아니야?”
“아니… 우리도 뭐라도 줘야 하는 거 아냐?”
그가 주(州)를 넘어갈 때마다 마중 인파가 늘어났다. 경찰 오토바이가 선두에서 길을 열어주고, 관악대가 나와 연주를 했다. 토론토에 들어섰을 때는 수천, 수만 명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따라 뛰었다. 그를 만나려고 유명한 스포츠 스타들이 달려왔다. 아이들은 손글씨로 “고마워, 테리”라고 적은 판을 흔들었다. 어떤 날은 하루에 10만 달러 가까운 돈이 모였다. 온 나라가 한 청년의 의지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의 사랑을 다 받아낼 만큼 튼튼하지 못했다.
사실 그는 이미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숨이 가빠졌고, 기침이 잦아졌다. 그냥 피로려니 했다.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조금만 더. 오늘은 멈추지 마.”
“오늘만 넘기자. 내일은 내일 생각하자.”
이건 영웅의 마음이 아니라 버티는 사람의 마음이었다.
어느 날, 온몸이 흔들렸다. 가슴 깊은 데서부터 뜨거운 통증이 올라왔다.
그는 도로 위에서 결국 무릎을 꿇었다.
사람들은 처음엔 그가 기도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는 더 이상 숨을 들이쉴 수 없었다.
병원.
엑스레이.
의사들의 표정.
결과는 너무 잔인할 만큼 간단했다.
암이 폐로 번졌다. 그 순간, “희망의 마라톤”은 온 캐나다가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중단되었다. 그의 달리기는 온전히 143일, 약 5,300km 가까이를 버틴 끝이었다.
그 소식은 전파를 타고 번개처럼 퍼졌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전국에서 돈이 쏟아졌다.
TV 방송국은 그를 위한 특별 방송을 잡고, 기업인들은 “마일당 2달러씩”을 약속하며 따라 붙었다. 어떤 날은 한 주에 수백만 달러가 모였다. 어떤 주정부는 “백만 달러”를 바로 내놓았다. 그의 이름으로 모인 돈은 몇 달 만에 수천만 달러가 되었다. 테리가 원했던 그 약속 — “암 환자를 위해 1달러씩만” — 사람들은 정말로 해냈다. 그리고 그 흐름은 멈추지 않았다.
병상에서 테리는 계속 편지를 받았다.
편지 봉투에는 주소가 이렇게 적혀 있었다.
“To: Terry Fox, Canada.”
‘캐나다의 테리 폭스 앞으로’.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편지는 정확히 그의 손에 도착했다. 우체부들은 알았다. 온 나라가 지금 이 아이를 안다는 걸.
그는 유명해졌다. 국가적 상징이 되었다. 상도 받았다. 수상을 위해 무대 위에 올랐을 때 그는 아직도 마르고 어렸다. 그는 사실 그런 것보다, 계속 달리고 싶었다. 그는 말했다.
“나 아직 안 끝났어요. 나 조금만 나아지면 다시 뛸 거예요. 내가 시작한 건 내가 끝낼 거예요.”
의사들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의 몸은 이미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1981년 6월 28일, 그는 2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스물둘.
우리는 스물둘이면 겨우 세상을 미워하기 시작할 때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그 나이에 세상을 사랑하려고 몸을 갈아 넣었다.
그리고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가 떠난 뒤,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우리가 대신 뛸게.”
그해 9월, ‘테리 폭스 런’이라는 이름으로 수십만 명이 달렸다. 나라는 울고 있었지만, 동시에 달리고 있었다. 이 달리기는 매년 열렸고, 곧 전 세계 60개국 이상에서, 수백만 명이, 경쟁도 순위도 없이, 단 한 가지 마음으로 뛰기 시작했다.
“암을 이겨내자.”
그렇게 모인 돈은 수억 달러, 지금은 9억 캐나다달러를 훌쩍 넘었다. 이건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하루짜리 암 연구 모금 행사로 자라났다. 그 한 발, 한 발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우린 가끔 이런 질문을 한다.
영웅이란 누구인가.
울지 않고 버티는 사람인가,
아니면 울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인가.
테리는 한 번도 자기를 슈퍼히어로라고 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뭐든 가능하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꿈은, 시도하면 가능해져요.”
이 문장은 너무 단순해서, 그냥 자극 문구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문장은, 피 냄새가 배어 있는 대퇴부의 절단면에서 나왔다.
의족이 살 속을 계속 파고드는 고통 위에서 나왔다.
숨을 들이쉬는 것조차 칼처럼 아프던 폐에서 나왔다.
“가능해.” 라는 이 말은, 꽃밭에서가 아니라 바닥에서 나온 것이다.
자, 이제 우리 쪽 이야기다.
우리는 살아가며 낭떠러지에 선다.
“나 이제 못 가” 하고 주저앉는 날이 온다.
그리고 아무도 우리 이름을 모른다. TV도 없고, 팬도 없고, 성대한 기부 방송도 없다.
우리는 그냥 한 사람이다.
무릎을 바닥에 대고 엎드린 한 사람.
그때 기억해도 좋을 한 장면이 있다.
비에 젖은 캐나다 변두리 도로.
희끄무레한 새벽.
한 청년이, 의족에서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선다.
아직 멀었어. 아직 끝이 아니야. 오늘만 더 가보자.
그리고 그가 달린다.
절뚝- 탁. 절뚝- 탁. 절뚝- 탁.
그 소리는 절망이 아니라 심장박동 소리처럼 들린다.
그 리듬 위에 나라는 다시 희망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스물둘에 멈췄다.
하지만 그의 리듬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도 그 리듬을 듣는다.
우리는 여전히, 그의 숨을 들이마신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우리 각자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그는 아직 말해준다.
“할 수 있어.
너도 할 수 있어.
제발… 포기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