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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지나가는 길

마음으로 매트릭스를 풀고, 핵의 시간을 어루만지다.11장

by 토사님

Part III. 루프의 해부 — 분자에서 생활까지

ChatGPT Image 2025년 11월 29일 오후 05_00_05.png

11장. 장력의 문법: ECM 조성·강성·정렬이 세포운명을 좌우하는 경로


11-1. 조성의 언어 — ECM의 재료가 말해주는 것들

세포는 침묵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완전히 고요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세계에는 말 없는 언어가 흐르고,
그 언어의 첫 페이지에 적힌 문장은
도구도, 호르몬도 아닌 — ECM의 재료다.


조직의 바깥 풍경은
단순한 골조나 발판이 아니라
세포가 하루를 시작하는 책상,
세포가 결정을 내리는 목소리,
세포가 미래를 해석하는 사전이다.

그리고 그 사전의 단어들은
하나하나 다른 울림을 갖고 있다.


① ECM의 조성은 세포에게 들려주는 첫 단어다

어떤 조직은 콜라겐이 많고,
어떤 조직은 엘라스틴이 많다.
또 어떤 공간은 피브로넥틴으로 새벽처럼 깔려 있고,
어떤 공간은 라미닌으로 조용히 빛난다.

이 단백질들의 비율은
그 조직의 음색이다.

콜라겐이 많으면 공간은 단단해지고

엘라스틴이 많으면 공간은 탄력 있게 흔들리며

피브로넥틴이 많으면 세포는 “여기가 안전하다”고 느끼고

라미닌이 많으면 세포는 “여기는 성장의 자리다”라고 이해한다

세포는 이 음색을 듣고
자신의 행동을 조율한다.

조성은 환경의 첫 문장이며,
세포는 그 문장을 따라 읽으며
어떤 존재가 되어갈지 결심한다.


② 피브로넥틴 — ‘처음 손잡이’의 역할

상처가 났을 때,
가장 먼저 달려와 바닥에 깔리는 단백질은 피브로넥틴이다.
마치 “여기, 나를 잡아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첫 손잡이 같은 존재다.

피브로넥틴은 세포에게
붙잡을 자리와 방향을 제공한다.
그래서 상처 회복의 첫날에는
피브로넥틴의 풍경이 섬세하게 달라지고,
그 변화는 곧 세포의 행동에 반영된다.

처음 깔리는 단어가
문장의 톤을 바꾸듯,
피브로넥틴은 회복의 톤을 정한다.


③ 콜라겐 — 단단한 문장을 쓰는 단어

콜라겐은 ECM의 뼈대이자,
조직의 긴장을 만드는 언어다.

콜라겐이 많이 생성되고
가교화(LOX)에 의해 서로 더 강하게 묶일 때,
공간은 서서히
부드러운 대지에서
단단한 섬처럼 변한다.

이 단단함은 세포에게 말한다.
"긴장해라. 버티어라. 움직이지 말라."


그리고 세포는 그 말을 따른다.
그들은 잘 늘어나지 않고,
쉽게 쉴 수 없고,
늘 경계 상태에 머문다.

콜라겐의 과잉은
긴장의 문장을 늘리고,
그 문장은 결국
FAK와 YAP/TAZ의 언어로
핵 속에 기록된다.


④ ECM 조성과 세포 운명의 연결

조성이 바뀌면
세포가 듣는 언어도 바뀐다.
그리고 언어가 바뀌면
유전자 발현의 문장 구조도 바뀐다.

피브로넥틴이 깔리면 부착과 이동이 시작되고

콜라겐이 과잉이면 긴장과 경직이 증가하며

엘라스틴이 풍부하면 세포는 탄력을 회복하고

라미닌이 충분하면 분화의 방향이 선명해진다

이 미세한 단어들의 조합이
FAK—RhoA—YAP/TAZ 경로를 울리고,
그 울림은 곧
유전자의 새로운 단락으로 번역된다.

ECM의 재료는 단순한 구성물이 아니라,
세포가 사는 세계의 첫 단어다.


에필로그 — 조성은 세계의 첫 색깔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도 그렇고,
세포가 살아가는 공간도 그렇다.
환경의 재료는
그 자체로 메시지다.

세포는 그 메시지를 읽고
움직이고, 쉬고, 성장하고, 변화한다.

조성은 생명의 첫 색깔이며,
그 색깔이 바뀌면
세포의 운명도 함께 바뀐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색깔을 다시 칠하는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여정이다.


11-2. 강성의 문법 — 공간의 단단함이 유전자 문장 구조를 바꾼다

세포가 살아가는 공간은
눈으로는 고요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늘 장력의 기류가 흐르고 있다.

ECM의 강성, 즉 “딱딱함–부드러움”의 스펙트럼은
이 기류의 방향을 정해주는 문법이다.
그 문법 하나가 바뀌면
세포의 인생 전체가 달라진다.
왜냐하면 세포는
“힘의 풍경”을 그대로 유전자의 문장으로 옮겨 적기 때문이다.


① 조직 강성의 스펙트럼 — 몸이 만들어낸 다양한 세계

우리 몸의 각 조직은
저마다 고유한 강성의 세계를 가진다.

뇌: 젤리처럼 매우 부드러운 세계

지방조직: 조용히 눌리는 부드러운 세계

근육: 단단하면서도 반응성 있는 세계

연골·뼈: 흔들림조차 허락하지 않는 단단한 세계

세포는 자신이 태어난 세계의 강성을 기준으로
“이곳이 옳다” 또는 “이곳은 낯설다”를 판단한다.


즉,
강성은 세포의 고향의 톤이며,
그 고향의 톤에서 벗어날 때
세포는 다른 행동을 선택한다.


② 강성과 세포 운명의 대응 관계 — 힘이 유도하는 분기점

줄기세포는 이 관계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부드러운 ECM 위 → 신경세포(neuron)처럼 유연한 형태로 분화

중간 강성 ECM 위 → 근육세포(myocyte)로 변화

딱딱한 ECM 위 → 골세포(osteoblast)로 단단하게 변화

공간의 ‘경도’라는 단순한 변수 하나가
세포의 정체성 전체를 바꾼다.

이 변화는 FAK, RhoA, ROCK,
그리고 YAP/TAZ 경로를 타고
핵 안에서 전사 프로그램의 대대적 개편으로 이어진다.

부드러운 세계에서 세포는
“펼치고, 쉬고, 회복하는 문장”을 쓰고,
단단한 세계에서는
“응집하고, 버티고, 증식하는 문장”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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