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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라는 집, 금이 간 벽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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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사님
ChatGPT Image 2025년 12월 4일 오전 07_21_08.png

한국이라는 집, 금이 간 벽 앞에서

요즘 뉴스를 켜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집, 오래 버텨온 건 맞는데… 어디선가 서서히 금 가는 소리가 난다.”

정치는 매일 싸우고, 경제는 버틴다고 하지만 내 지갑은 점점 가벼워지고,
사회는 아이도, 청년도, 노인도 모두가 조금씩 고립되어 가는 것 같다.

한국의 지금을 한 발짝 떨어져, 최대한 냉정하게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끝에 가서는 “그래도 한 번 더 해보자”라는 말을 꺼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1. 정치 – 진영이 나라를 먹어치우는 방식

한국 정치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정책의 싸움이 아니라, 정체성의 전쟁이 됐다.”


누가 더 나은 해법을 내놓느냐의 싸움이 아니라,
“너는 우리 편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전쟁이 돼버렸다.


상대 정당은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적”, “나라를 말아먹을 세력”으로 호명된다.


합리적인 중도는 설 자리가 없다. 조금만 다른 의견을 말해도
“배신자”, “프락치”, “내부의 적”이라는 말이 날아온다.


그러는 사이, 연금·저출산·교육·노동 같은 장기 과제는
“표 안 되는 안건”으로 뒤로 밀린다.


정치에 대한 피로감과 혐오가 쌓이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더 위험한 건,
**“정치는 원래 다 그런 거야”**라며 완전히 등을 돌리는 순간이다.

정치는 마음에 드는 쇼가 아니고,
내 삶의 제도와 룰을 정하는 기술이다.
‘정치 혐오’는 결국,
그 기술을 나 대신 누군가가 마음대로 쓰도록 내어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2. 경제 – 숫자는 버티는데, 삶은 점점 쪼그라든다

한국 경제는 당장 붕괴 직전은 아니다.
수출도 돌고, 반도체도 돌고, 성장률도 아주 바닥은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이상하다, 통계상으론 버틴다는데
내 삶은 왜 이렇게 추운가.”

이 괴리감의 배경에는 몇 가지 구조가 있다.


저성장 고착화

경제는 “빨리 커서 위로 끌어올려 주는 시대”에서
“간신히 버티는 시대”로 바뀌었다.

케이크가 더 이상 크게 자라지 않으니,
나눠 먹기 싸움만 격해진다.


산업 구조의 피로

반도체·자동차·조선…
한국을 떠받쳐온 산업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새로운 성장 축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미래 일자리는 불안하고, 현재 일자리도 언제까지 유효할지 모른다.


청년 체감 경제의 붕괴

집값·전세, 불안정한 일자리, 끝이 보이지 않는 경쟁.

“열심히 해도 인생이 크게 나아질 것 같지 않다”라는 정서가
서서히, 그러나 깊게 스며들고 있다.

경제가 무너지진 않았지만,
“사다리”가 부러진 느낌.
이게 지금 이 땅을 사는 많은 사람들의 체감일 것이다.


3. 사회 – 아이를 낳기도, 혼자 버티기도 두려운 나라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은
이제 숫자가 아니라, 하나의 문장처럼 들린다.

“아이를 낳을 용기를 내기엔, 인생이 너무 불안하다.”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다.

집은 언제 안정될지 모르겠고,

직장은 언제 나를 내보낼지 모르고,

아이를 키우며 커리어를 이어가는 길은 여전히 험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렇게 계산한다.
“내 삶도 겨우 버티는데, 이 나라에서 아이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출산율은 떨어지고, 사회는 늙어간다.
그 한편에서,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세상과의 끈을 놓아버리는 청년들도 늘어난다.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
벌써 태어난 청년들도 조용히 사라져가는 사회.
이 두 그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4. 지금 한국의 핵심 문제를 한 줄로 말하면

정치는 진영 싸움에 갇혀 있고,
경제는 저성장과 양극화에 갇혀 있으며,
사회는 고립과 저출산에 갇혀 있다.


세 겹의 “갇힘”이
한국이라는 집을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조여오고 있다.

이 결박을 풀지 못하면,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비슷한 곳에서 다시 막힐 것이다.


5.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1) 정치 – 이겨야 할 상대가 아니라, 합의해야 할 룰을 먼저 바꾸기

정치를 살리는 건
“우리 편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누가 이겨도 나라가 안 부서지는 룰”을 만드는 일이다.


양당 독점 완화

거대 양당이 모든 걸 쥐지 못하게,
연동형 비례대표제 강화, 소수정당과 연합정치가 가능해지는 구조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승자 독식”이면,
언제나 상대를 악마화해야만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밖에 없다.


사법·검찰의 정치로부터의 독립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검찰과 수사가 정적 제거의 도구가 아니라는 최소한의 신뢰.

인사·지휘 체계를 권력으로부터 분리하는 초당적 합의가 필요하다.


장기 의제에 대한 ‘대합의 테이블’

연금, 저출산, 교육, 노동 같은 문제는
여야·전문가·시민이 함께 들어가
정권을 넘어 지속될 수 있는 최소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뒤집기 어렵게 만드는
절차적 장치까지 포함해서.


정치는 결국,
“싸움 그 자체”가 아니라
“싸우는 방식을 설계하는 기술”이다.
우리에겐 지금, 그 방식을 갈아엎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6. 경제 – 성장률보다 ‘사람이 체감하는 삶’을 중심에

경제 정책의 우선순위를
이렇게 바꾸는 상상을 해보자.

청년·가계 중심으로 재정 재배치


보여주기용 대형 토목·행사보다,
안정된 주거, 교육·의료·돌봄비 절감에
더 많은 예산을 쓰는 나라.

“열심히 살아도 계속 추락한다”는 감각을
“버티면 조금씩 나아진다”는 감각으로 바꾸는 일.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

대기업·정규직의 견고한 성벽과
중소기업·비정규직의 불안정 사이 거리를 조금씩 줄이는 것.

중소기업 생산성·디지털 전환을 돕고,
최소한의 임금·복지 안전망을 끌어올리는 방향.


사람을 살리는 산업에 투자하기

반도체와 기술만이 아니라
돌봄, 헬스케어, 그린에너지, 지역 로컬 경제,
문화·예술·교육, 도시농업 같은
“삶의 질”과 직결된 영역에 과감히 투자하는 것.

경제는 단지 “국가의 성적표”가 아니라,
사람이 ‘살 만하다’고 느끼는 감각의 총합이라는 걸
정책의 출발점에 세워야 한다.


7. 사회 – “아이를 낳아도 되는 나라”에서 “살아도 괜찮은 나라”로

출산율 문제를
“아이를 더 낳게 하는 정책”으로만 볼 때,
해법은 항상 비슷해진다.
지원금, 보조금, 몇 년 가는 캠페인.

하지만 진짜 질문은 이것 아닐까.

“이 나라에서,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이 견딜 만한가?”

그래서 필요한 건 이런 방향이다.

삶 전체를 다시 설계하는 출산·양육 정책

돈만 쥐여주는 것이 아니라
▸ 안정된 주거
▸ 유연한 노동시간, 재택·시간제 등 다양한 근무 형태
▸ 아버지의 육아 참여를 전제로 한 제도 설계


아이를 낳는 순간,
생애 전체가 “불안과 손해”로 바뀌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

청년 정신건강·고립 문제를 국가 과제로

학교와 지역마다 마음 건강 센터,
온라인 상담과 커뮤니티 지원.

방 안에 갇힌 손이,
단지 한 번이라도 밖으로 뻗어 나올 수 있게 만드는 사회적 장치들.


다가오는 다문화·이민 사회를 준비하기

이미 한국은 “단일민족 신화” 속에서 살던 나라가 아니다.

서로 다른 언어·피부·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같은 동네를 공유하는 시대.


혐오와 공포 대신,
조용한 공존의 기술을 배우는 방향으로 교육·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8. “국가의 해법”에서 멈추지 말고, “내 반경의 해법”까지

여기까지 읽었다면
마음 한 켠이 더 무거워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를 잊지 말고 싶다.

대한 구조를 만드는 건
결국, 작은 태도들의 총합이다.

정치·경제·사회 구조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정보 다이어트

분노와 혐오를 팔아 조회수를 올리는 콘텐츠에서
의식적으로 조금씩 멀어지기.

서로 다른 성향의 매체를 섞어 보며,
“내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는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논쟁 대신, 질문으로 말하기

가족·지인과 정치 이야기를 할 때
“넌 틀렸어” 대신
“넌 왜 그렇게 느껴?”라고 묻는 습관.

집 안, 식탁 위에서라도
이 사회의 분열을 복제하지 않는 태도.


작은 정치에 참여하기

주민 모임, 학부모회, 협동조합,
지역의 환경·도시농업·돌봄 네트워크…


중앙 정치는 멀리 있어도,
내 동네의 공공성은 내가 직접 만드는 것.


이런 작은 선택들이 쌓여야
“정권이 바뀌어도 바닥이 요동치지 않는 나라”가 된다.


9. 금이 간 벽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한국은 지금,
망했다고 말하기엔 아직 너무 살아 있고,
괜찮다고 말하기엔 너무 많이 균열이 드러난 나라다.

그래서일까.
이상하게도,
이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어쩌면 가장 단단한 애정의 다른 얼굴인지도 모른다.

무너지는 소리를 듣고도
여전히 이 집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바로 시민이다.


정치가 우리를 실망시켜도,
경제가 우리를 숨 막히게 해도,
사회가 우리를 고립시키려 해도,

질문하는 시민,
연결을 포기하지 않는 시민,
“그래도 한 번 더 해보자”고 말하는 시민이 남아 있는 한,

이 집은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그 집의 한 구석에서,
오늘도 우리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이 질문을 이어가야 한다.

“이 나라를 이렇게 만든 힘이
결국 우리라면,
다시 고쳐 세울 힘도
우리에게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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