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 힘으로 몸을 치유하는 법. 1장
같은 진단, 같은 치료인데 어떤 사람은 빨리 회복하고 어떤 사람은 지연되는 이유.
회복력, 기대, 의미, 관계, 성격, 트라우마 등 “보이지 않는 변수” 이야기.
병실 불이 희미하게 줄어드는 저녁,
간호사가 마지막으로 혈압을 재고 나가면
창문엔 도시의 불빛 대신
환자들의 숨소리가 천천히 떠오릅니다.
한 병실, 네 개의 침대.
그 중 두 사람은 같은 병, 같은 수술을 받았습니다.
나이도 비슷합니다.
같은 집도의, 같은 약, 같은 물리치료 스케줄.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눈에 띄는 차이가 하나 생깁니다.
왼쪽 침대의 A 씨는
며칠 지나지 않아 “혼자 걸어 보자”는 말을 듣고
조심스럽게 병실 복도를 한 바퀴 돕니다.
웃음까지는 아니어도,
“그래도 생각보다 할 만하네”라는 표정이 얼굴에 어렴풋이 비칩니다.
오른쪽 침대의 B 씨는
같은 날 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자리에서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통증이 몰려오고,
미래를 떠올리려 하면 가슴부터 먹먹해집니다.
의사는 “수술은 잘 됐고, 경과도 나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지만
B 씨의 마음에는
알 수 없는 무거운 그림자가 깔려 있습니다.
A 씨는 퇴원을 준비하고,
B 씨는 여전히 밤마다 뒤척입니다.
이런 장면은 실제 병실에서
그리 드문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병실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꼭 이렇게 생각합니다.
“왜 나는 저 사람만큼 빨리 낫지 못할까?”
“나는 회복도 느리고, 마음도 약한 사람인가 보다.”
우리는 흔히 말합니다.
“똑같이 수술했는데, 쟤는 벌써 퇴원이야.”
“같은 병인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진단명, 수술법, 투약 내용, 입원 기간, 나이, 병원.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비교할 수 있는 겉조건입니다.
의학적인 설명도 대개 이 선에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의 회복이란,
눈에 보이는 조건들만으로 설명되기엔
너무나 많은 층위를 가진 과정입니다.
같은 수술대에 올랐더라도,
그 이전까지의 삶의 역사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누군가의 돌봄과 지지를 받으며 살아왔고,
어떤 사람은 늘 혼자 감당하며 버티는 법만 배우며 살아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 몸은 웬만하면 잘 회복한다”는
경험을 여러 번 쌓아왔고,
어떤 사람은 작은 병에도 크게 꺾이곤 했던 기억을 안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겐 병이
“삶을 조정하라는 경고”로 느껴지고,
어떤 사람에겐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는 선언처럼 들립니다.
이 모든 것은
검사 결과표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지만,
회복의 속도와 질을 깊숙이 흔드는 보이지 않는 변수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보이지 않는 변수들을 모른 채
저울 위의 숫자들만 보고
스스로를 평가해 버리곤 합니다.
“나는 역시 약한 사람이다.”
“저 사람은 며칠 만에 일어나는데, 나는 왜…”
하지만 진실은 이렇습니다.
당신과 그 사람은
애초에 같은 출발선에 서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실패와 성공, 회복과 지연을 이야기할 때
너무 쉽게 “의지”라는 단어를 꺼냅니다.
“쟤는 의지가 강해서 금방 나았나 봐.”
“나는 의지가 약해서 늘 이런 식이지 뭐.”
의지는 분명 어떤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의지 하나만으로 설명하려는 순간,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놓치게 됩니다.
병실의 두 사람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A 씨는
치료가 시작되기 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서
이런 말을 여러 번 들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당신은 워낙 잘 이겨내는 사람이잖아요.”
“이전에도 큰 수술 잘 넘겼잖아요, 이번에도 해낼 거예요.”
스스로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 나는 그래도 잘 버티는 편이었지.”
몸은 아프지만,
마음 어딘가에는 작은 믿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반면 B 씨는
살면서 큰 병을 겪은 경험도 처음이고,
삶의 굴곡을 이야기해 줄 누군가도 많지 않습니다.
“또 남한테 신세를 지는구나.”
“이 나이에 이런 병이라니, 이제 끝이겠지.”
B 씨의 가슴에는
오래된 죄책감과 두려움,
“나는 원래 좀 약한 사람”이라는 자기이미지가
두껍게 쌓여 있을지도 모릅니다.
둘 다 같은 약을 먹고 있습니다.
같은 수술 부위를 꿰맸습니다.
하지만 그 약을 받아들이는 몸의 분위기,
그 꿰매진 자리를 바라보는 마음의 태도는
전혀 다른 색을 띠고 있습니다.
A 씨의 몸속에서
약은 “나를 도와주는 동료”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B 씨의 몸속에서
약은 “그래도 부족한 나를 간신히 붙들고 있는 마지막 줄”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생각의 차이가 아닙니다.
두려움과 불신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더 많이 분비하게 만들고,
그 호르몬은 다시
통증 민감도, 수면의 질, 면역 반응에 영향을 줍니다.
반대로,
조심스러운 희망과 신뢰의 감정은
신경계의 긴장을 조금씩 낮추고,
그 여유만큼 몸은
회복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쓸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회복이 빠르다는 말을
“의지가 강해서”라고만 축소해버리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이 모든 배경을
한꺼번에 지워버리는 셈이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회복이 느린 사람에게
불필요한 죄책감까지 덧씌우게 됩니다.
이 장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확인해야 할 사실은
어쩌면 아주 단순합니다.
“당신이 느리게 회복되는 것은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당신 안의 지도가 다르기 때문일 수 있다.”
당신의 지도에는
어쩌면 이런 길들이 그려져 있을지 모릅니다.
오랫동안 누적된 과로와 긴장,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상실과 상처,
늘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굴어야 했던 습관,
“아프면 피해만 준다”는 오래된 믿음,
혼자 참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워 온 삶.
이 길들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저, 당신의 몸과 마음이
이 길들을 따라 여기까지 걸어왔다는 사실일 뿐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책이나 비교가 아니라,
지도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어디에 낭떠러지가 있는지,
어디에 오래된 상처가 묻혀 있는지,
어디가 취약하고 어디가 의외로 튼튼한지 살펴보는 것.
그 이해가 시작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왜 나는 저 사람처럼 빨리 낫지 못할까?”
대신 이렇게 묻게 됩니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나는 어떤 방식으로 회복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당신을 비교의 감옥에서 꺼내어
자기 이해의 길 위에 올려놓습니다.
이제 다음 소단원에서 우리는,
회복의 속도와 방향을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변수들을 하나씩 불러내 보려 합니다.
기대, 의미, 관계, 성격, 트라우마, 생활습관.
이 변수들이 어떻게 엮여
각자의 회복지도를 만들어 내는지 이해하게 된다면,
당신은 더 이상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고 자신을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대신,
“아, 이러니 내가 힘들 수밖에 없었구나” 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드러워진 눈빛이야말로,
당신 안의 치유 스위치에
첫 번째로 닿는 따뜻한 손길입니다.
어떤 사람은 폭풍이 지나간 뒤
금세 집을 다시 세우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은 같은 폭풍을 겪고도
한동안, 무너진 잔해 사이에 멍하니 서서
손을 어디부터 움직여야 할지 몰라 서 있지요.
우리는 흔히 이 차이를
“근성”이나 “의지”라는 단어로 너무 쉽게 축소해 버립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회복에는 훨씬 더 섬세한 요소들이 얽혀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당신 안에도, 나만의 회복을 설계해 온
아주 정교한 숨은 프로필이 있습니다.
이제 그 프로필에 적힌 항목들을
하나씩 불러내 볼 시간입니다.
“이번 치료로… 조금은 나아지겠죠?”
병실에서 나지막이 건네는 이 한 마디 속에는
놀랍도록 많은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목소리에는
지친 기색 속에서도
“그래도 한 번 해보자”라는 작은 불씨가 살아 있고,
또 어떤 사람의 목소리에는
“사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형식적으로 묻는 거예요”라는 포기가 묻어납니다.
몸은 이 미세한 차이를 모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대와 믿음은,
마치 콘서트의 지휘자처럼
몸 안의 여러 시스템에
“지금은 버틸 가치가 있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물론,
무작정 ‘잘 될 거야’라고 세뇌한다고 해서
모든 병이 순식간에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건 이 책이 말하고 싶은 세계가 아닙니다.
다만,
전면적인 절망과,
조심스러운 기대 사이에는
몸 안에 전혀 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는 것,
완전한 믿음이 아니어도 괜찮지만
**“그래도, 어쩌면”**이라는 작은 여지가
이미 회복을 향한 문고리를 조금은 돌려 놓는다는 것을
기억해 두면 좋겠습니다.
당신 안의 기대는 지금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나요?
같은 병명을 듣고도
사람들은 전혀 다른 문장을 마음속에 씁니다.
“역시 나는 벌을 받고 있는 거야.”
“이제 내 인생은 끝났다.”
“이제라도 멈춰서라는 신호일지도 몰라.”
“살아 있는 동안, 더 나답게 살라는 기회일 수 있어.”
병은 사건이고,
의미는 해석입니다.
우리가 병을 어떤 단어로 부르는지에 따라
몸 안의 긴장과 태도는 크게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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