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없이도 구원받는 법/시작하면
나는 한때 기도를 했다.
“주여, 제 마음을 평안케 하소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도는 읽씹을 당하고—카드 결제는 즉시 승인되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이 시대의 신은 응답 속도가 다르구나.
요즘 사람들은 “구원”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경제적 자유만 되면…”
“월 1천만 원만 벌면…”
“대출만 정리하면 숨 좀 쉬겠어…”
“이번 상승장만 타면 인생이 달라져…”
그리고 그 문장 끝에는 늘, 보이지 않는 아멘이 붙는다.
아멘. (그리고 결제.)
나는 매일 “돈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며 살았다.
그런데 내 하루의 첫 예배는 늘 같은 곳에서 시작됐다.
통장 앱.
증권 앱.
카드 앱.
거기서 나는 고개를 숙였다.
숫자가 조금 늘면 감사했고, 조금 줄면 죄책감을 느꼈다.
어떤 날은 숫자가 내 영혼의 날씨가 되었다.
맑음, 흐림, 폭우, 그리고… 태풍 경보.
그때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정말 돈을 ‘사용’하는 걸까?
아니면 돈이 우리를 ‘사용’하는 걸까?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이 시대가 이미 돈을 경배하는데,
차라리 그 경배의 문장을 그대로 적어 경전처럼 만들어버리자고.
하지만 이건 돈을 찬양하려는 책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돈이 찬양받고 있는 현장을
“아주 그럴듯한 종교 문장”으로 포장해 보여주는 책이다.
우리가 얼마나 경건하게,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숫자를 확인하는지,
‘불안’을 갚기 위해 ‘더 큰 불안’을 빌리는지,
비교를 끊지 못해 사랑을 잃는지,
휴식을 죄처럼 느끼는지,
사람을 ‘관계’가 아니라 ‘네트워크’로 환원하는지,
그 모든 것을 웃기게, 그러나 웃고 나면 심장이 조금 아픈 방식으로 기록해두고 싶었다.
웃음이란 게 그렇다.
처음엔 입꼬리가 올라가는데,
마지막엔 마음이 내려앉는다.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돈은 좋은 종이지만, 최악의 왕이다.
돈은 도구로 있을 때는 유능하다.
그러나 왕좌에 앉는 순간,
우리의 마음을 통치하기 시작한다.
왕좌에 앉은 돈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더 벌어야 살아.”
“너는 빨라야 가치 있어.”
“너는 남보다 위에 있어야 안전해.”
“너는 쉬면 도태돼.”
그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소리 없는 기도를 한다.
“제발… 불안이 멈추게 해주세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돈은 불안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
돈은 불안을 유지하는 법을 가르친다.
불안은 돈의 가장 충성스러운 전도사이기 때문이다.
그럼 예수는 어디에 있을까.
이 책의 뒤로 갈수록,
나는 조금씩 문장의 속도를 늦출 것이다.
처음엔 냉소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엔 웃음이 멈추는 지점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나는 아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말하고 싶다.
“너는 가격이 아니다.”
“너는 성과가 아니다.”
“너는 증명해야만 사랑받는 존재가 아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더 벌어라”가 아니라
“내게 오라”라고 말한다.
그 말이 너무 무상(無償)이라서,
우리는 처음엔 의심한다.
무료는 늘 수상하고, 은혜는 늘 사기 같아서.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그 말 앞에서만
내 마음의 계산기가 멈춘다.
“내가 얼마짜리인지”를 따지던 버릇이,
“내가 사랑받는지”를 묻는 질문으로 바뀐다.
그때 비로소 돈은 제자리로 내려간다.
왕좌가 아니라, 도구의 자리로.
나는 이 책을 ‘돈을 버리는 책’으로 쓰고 싶지 않다.
오히려 돈을 제대로 쓰기 위해 쓴다.
돈을 인간의 신앙으로 만들지 않고,
인간의 삶을 돕는 도구로 되돌리기 위해.
그러니까 이 책의 목적은 단 하나다.
“왕을 바꾸는 것.”
돈이 왕이던 자리에서
예수가 왕이 되는 것.
그 순간 우리가 잃는 건 ‘수익률’이 아니라
사실은 ‘불안’이다.
그리고 우리가 얻는 건
‘돈’이 아니라
잊고 있던 평안이다.
혹시 이 책을 읽다가
자꾸 웃음이 나면 좋겠다.
아주 솔직하게, 배꼽 잡고 웃어도 좋다.
다만 한 번쯤은
웃다가 멈추게 되길 바란다.
그 멈춤에서—
당신이 조용히 물어보게 되길 바란다.
“내가 진짜로 경배하는 건 뭐지?”
“나는 무엇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지?”
그리고 그 질문 끝에,
작게라도 이런 문장이 생겨나면 좋겠다.
“주여, 돈이 아니라 당신을 믿고 싶습니다.”
“주여, 나의 불안을 왕으로 두지 않게 하소서.”
“주여, 내 삶을 다시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이 책은 그렇게,
우리 각자의 마음 안에 있는 작은 성전 하나를
조용히 무너뜨리려 한다.
소란스럽지 않게.
그러나 확실하게.
현대인을 위한 돈 성경은
돈을 미워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돈을, 왕좌에서 내려오게 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그 왕좌에,
다시 예수를 앉히자고—
조용히, 끝까지 제안한다.
독자 서약문: “나는 돈을 사랑하지 않는다. 단지 매일 확인할 뿐이다.”
0-1. 편집자 주(가짜): 본서는 ‘돈의 말씀’으로 위장한 구조 비판서이며, 마지막에 다른 왕이 등장한다.
창세기: 태초에 결제가 있었고, 결제는 즉시였다
출애굽기: 가난에서 탈출하라—단, 대출로
레위기: 정결 규례—가난을 숨기고 성공을 드러내라
민수기: 비교의 인구조사—남의 인생을 세어 너의 가치를 매겨라
신명기: 축복과 저주—상승장은 축복, 하락장은 네 탓
시편: 주여, 내 카드 한도를 넓히소서
잠언: 현명한 자는 투자하고, 미련한 자는 휴식한다
전도서: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구독이로다
아가: 사랑은 길고, 할부는 더 길다
애가: 영수증 위에 울다—내가 산 것은 물건이 아니라 무감각이었다
이사야서: 너희가 쌓은 성은 모래로 지은 성이다
예레미야서: 알고도 무릎 꿇는 자들의 시대
에스겔서: 마른 통장뼈들이 살아나려면? 더 벌어라
다니엘서: 사자굴보다 무서운 것은 연체 문자
호세아서: 너는 돈을 사랑한다 말하나, 돈은 너를 모른다
요나서: 도망치는 자의 재테크—죄책감에서 도망쳐 수익률로 숨다
하박국서: 어찌하여 악인이 번영하나이까—아, 알고리즘 때문이로다
말라기서: 너희는 십일조를 바치되, 마음은 남겨두지 않았다
마태투자복음: 복이 있나니 레버리지 사용하는 자여
마가속도복음: 즉시, 즉시, 즉시—생각은 지연의 죄
누가비교복음: 남의 소득을 보고 내 영혼이 흔들렸다
요한자기계발복음: 말씀이 ‘루틴’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시매
사도행전: 카페에 모여 서로의 상승을 간증하다
로마서: 의인은 신용으로 말미암아 산다
고린도전서: 사랑은 오래 참고… 그러나 카드값은 더 오래 참고
고린도후서: 헌금과 후원의 신학—선함의 브랜딩
갈라디아서: 은혜로 구원? 아니, 패키지로 구원
에베소서: 너희의 정체성은 ‘직함’으로 새겨졌도다
빌립보서: 기쁨은 성과 보고서에서 오나니
골로새서: 보이지 않는 자본의 형상과 권세들
데살로니가전서: 주의 재림을 기다리되, 상승장을 더 기다리라
디모데전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그러나 사랑하지 않는다 말하라
야고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행함은 곧 실적
베드로전서: 고난을 견디라—단, 성과로 증명하라
요한일서: 사랑이라 부르라—구매 버튼을 누르며
계시록: 최후의 결제—영수증이 펼쳐지고, 시간이 심판한다
수난기: 너의 영혼은 어떻게 팔렸는가—웃음이 멈추는 장
무상(無償)의 복음: 예수 없이 구원받는 법의 파산 선언
왕의 교체: 돈의 왕좌에서 내려오다—구원은 결제가 아니었다
부활 이후의 경제: 돈을 도구로 되돌리는 7일의 작은 반역(실천서)
A. 돈 십계명(완전판) + 각 계명별 자가진단 질문
B. 돈의 팔복(역설의 팔복)
C. 영수증 기도문 30편 (짧고 서늘하게)
D. ‘가짜 복음’ 용어 사전: 레버리지, 루틴, 브랜딩, 경제적 자유, 자동수익 등
나는 돈을 사랑하지 않는다.
정말이다.
나는 돈을 사랑하지 않는다. 단지… 매일 확인할 뿐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물 한 잔보다 먼저 손이 가는 곳이 있다.
그곳은 부엌도 아니고, 창문도 아니고,
통장 앱이다.
거기서 나는 조용히 예배를 드린다.
아멘도 없고 찬송도 없지만,
알림음 하나면 마음이 흔들린다.
잔고가 조금 늘면 “감사합니다”가 저절로 나오고,
조금 줄면 “제가 뭘 잘못했죠?” 같은 기도가 튀어나온다.
이건 사랑이 아니다.
그저… 확인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사랑하지 않는데, 이렇게 자주 확인하는 관계는 대체 뭘까.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됐다.
사랑하지 않는데 매일 확인하는 것들—
그것들이 우리 삶의 왕좌에 앉아 있는지를,
한번 제대로 확인해보고 싶어서.
“나는 돈을 사랑하지 않는다. 단지 매일 확인할 뿐이다.”
이 문장을 읽고 당신이 웃었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이미 이 책의 자격을 갖추었다.
왜냐하면 이 시대의 신앙은
대개 엄숙함에서 시작하지 않고,
자기 풍자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자, 우리 이렇게 서약하자.
나는 돈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돈을 확인한다.
나는 돈을 확인하면서 마음이 달라지는 존재임을 인정한다.
나는 돈이 늘어날 때 나의 하루가 “복”처럼 느껴지고,
돈이 줄어들 때 나의 하루가 “벌”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음을 고백한다.
나는 돈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돈이 나를 필요로 하게 만들 때,
그 관계가 비틀린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누군가를 비난하기보다 먼저 나를 들여다볼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돈의 시대를 욕하기 전에,
이미 그 시대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서약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나는 왕좌를 점검할 것이다.”
내 마음의 왕좌에 누가 앉아 있는지.
돈인지, 불안인지, 비교인지, 혹은…
내가 잊고 있던 다른 왕인지.
※ 본서는 “현대인을 위한 돈 성경”이다.
단, 오해하지 말 것.
이 책은 돈을 찬양하는 경전이 아니다.
오히려 돈이 경전이 되어버린 시대를,
경전의 어조로 “그럴듯하게” 따라 하다가
결국 독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장치가 포함되어 있다.
돈의 말씀처럼 들리는 문장들
— 읽을수록 어딘가 익숙하고, 그래서 더 무섭다.
현대인의 예배 의식
— 통장 확인, 투자 간증, 소비로 하는 위로, 비교로 하는 자존감…
위로처럼 보이는 칼
— “너 잘못 아니야”라고 말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너, 지금 무릎 꿇고 있잖아”를 들이민다.
특히 주의할 점이 있다.
본서는 중반까지 꽤 웃기다.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을 것이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웃음은 천천히 줄어든다.
이유는 간단하다.
웃음이 멈추는 지점에 진짜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본서는 마지막에 “다른 왕”이 등장한다.
이 왕은 독자를 모집하지 않는다.
강요하지 않는다.
세미나를 열지도 않는다.
구독 버튼을 누르라고 하지도 않는다.
이 왕은 다만 묻는다.
“너는 왜 그렇게 불안하니?”
“너는 왜 그렇게 증명하려 하니?”
“너는 왜 사랑을 ‘가격표’로 확인하니?”
그리고 이 왕은 이상한 방식으로 말한다.
“내게 와도 된다.”
“너는 이미 사랑받는다.”
“너는 값으로만 계산되는 존재가 아니다.”
독자들은 대개 여기서 두 부류로 갈린다.
어떤 이는 “이게 너무 공짜라서” 화를 낸다.
어떤 이는 “이게 너무 공짜라서” 운다.
편집자로서의 권고는 한 줄이다.
끝까지 읽어라.
특히 당신이 이 책을 “재미로만” 읽고 있다면 더더욱.
왜냐하면 이 책은 재미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당신의 왕좌를 향해 조용히 걸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서—
당신이 무엇을 하든,
그건 당신의 선택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당신이 이 책을 덮는 순간,
당신의 통장 앱은 여전히 당신을 부를 것이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예전처럼 완전히 무릎 꿇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그게 이 책이 노리는 작은 기적이다.
이 책을 읽는 법을 알려드리겠다.
주의: 이 안내문은 매우 친절하게 쓰여 있지만, 읽다 보면 기분이 조금 나빠질 수 있다.
그게 정상이다.
기분이 나빠졌다는 건—당신 안의 무엇인가가 살아 있다는 뜻이니까.
처음엔 가볍게 웃게 된다.
“맞아, 나도…”
“아니, 이건 너무 내 얘기잖아…”
그렇게 웃다가, 당신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할 것이다.
“저 사람(세상)이 문제야.”
좋다.
그렇게 시작해도 된다.
다만 37페이지쯤 지나면(혹은 57페이지쯤),
이 책은 슬쩍 방향을 튼다.
“저 사람”이 아니라
“나” 쪽으로.
이 책은 매 장이 세 겹으로 되어 있다.
케이크가 아니라 양파다.
그래서 잘못 까면 눈물이 난다.
여기서는 마음껏 웃어라.
웃음은 방어가 아니라 시작이다.
단, 웃다가 “오, 이거 통쾌하다!”에서 멈추면
당신은 이 책의 표지만 읽은 것이다.
여기서부터 조금 찔린다.
“아… 이게 구조였구나.”
“내가 잘못이라기보다, 내가 익숙해진 문법이었구나.”
이쯤 되면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를 한다.
책을 덮는다.
아니면, 폰을 켠다. (통장 앱을 확인한다.)
둘 다 이해한다.
하지만 가능하면 책을 먼저 덮지 말고, 폰도 나중에 켜라.
여기가 핵심이다.
여기서 이 책은 당신을 놀리지 않는다.
놀림은 끝났고, 이제는 묻는다.
“너는 무엇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니?”
각 장을 읽고 나면, 아래 네 줄을 반드시 해보라.
딱 30초면 된다.
30초는 요즘 사람들의 신앙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다.
오늘 내가 확인한 것 한 가지 (잔고, 주가, 카드값, 남의 인생)
그 확인이 내 마음을 어떻게 바꿨는지 한 가지 (불안, 우쭐, 초조, 열등감)
그 마음이 내 행동을 어떻게 밀었는지 한 가지 (구매, 비교, 과로, 회피)
마지막으로 한 문장 기도 “주여, 내가 지금 섬기는 것을 보여주소서.” “주여, 내 왕좌를 점검하게 하소서.” “주여, 돈을 도구로, 사랑을 중심으로 되돌리게 하소서.”
당신은 이 네 줄을 적는 순간,
돈의 시대에 아주 작은 반역자가 된다.
그 말은 대개 해당 있을 때 나온다.
특히 “나는 돈에 관심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돈에 관심이 많다.
관심이 없는데 왜 그렇게 자주 확인하는가.
“우리 남편이 봐야 하는데.”
“우리 아들이 이래서 문제야.”
“우리 팀장에게 꼭 읽히고 싶다.”
좋다.
다만 그 생각은 마지막에 하라.
먼저 당신 차례다.
이 책은 ‘남을 고치는 책’이 아니라
‘내 무릎의 방향을 확인하는 책’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다른 왕이 나온다.
하지만 결말만 먼저 보면
당신은 그 왕을 값싼 결론으로 오해할 수 있다.
이 왕은 결론이 아니다.
교체다.
교체는 과정 없이 오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 다음과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결제 전에 2초 멈춘다.
남의 소비를 봐도 덜 흔들린다.
“경제적 자유”라는 말을 들으면 웃음이 난다(쓴웃음 포함).
휴식할 때 죄책감이 조금 줄어든다.
통장 앱을 켜다가 문득 “내가 왜 이걸…” 하고 멈춘다.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 예수가 떠오른다.
특히 마지막 증상은 놀라울 수 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그분은 광고처럼 들이밀지 않는다.
알고리즘처럼 집요하게 따라오지도 않는다.
그분은—이상하게도—
늘 당신이 가장 지친 자리에서
조용히 묻는 방식으로 온다.
“너, 왜 그렇게 무거운 걸 들고 있니?”
이 책을 읽는 동안
당신은 계속 돈을 필요로 할 것이다.
괜찮다.
우리는 수도원에 들어가는 책을 쓰는 게 아니다.
우리는 장바구니를 들고 사는 사람들이다.
다만 이 책이 바라는 것은 하나다.
돈이 왕이 되지 않게 하라.
돈이 좋을수록 더더욱.
돈이 필요할수록 더더욱.
그리고 혹시—정말 혹시—
이 책을 덮는 어느 날 밤,
당신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런 말을 하게 된다면,
“주여, 제가 다시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그때는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읽은 건 ‘돈 성경’이 아니라
돈의 왕좌를 비추는 거울이었고,
그 거울 너머에서
당신이 잊고 있던 왕이
조용히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아래 항목 중 3개 이상 체크되면, 당신은 이미 ‘돈의 교회’에서 꽤 오래 예배드린 사람이다.
7개 이상이면… 축하한다. 당신은 성가대다.
(걱정 마라. 성가대도 회복될 수 있다.)
□ 나는 사람에게 안부를 묻기 전에 잔고/주가/카드값에게 먼저 안부를 묻는다.
(“잘 잤니?” — 통장에게.)
□ 숫자가 오르면 인격이 좋아지고, 숫자가 내리면 인격이 사라진다.
(오를 때: 성자 / 내릴 때: 폭군)
□ “구원”이란 말이 이제는 빚 청산을 의미한다.
(“주여, 오늘도 탕감하소서.”)
□ 나는 물건을 산 게 아니라 불안을 잠깐 잊는 권리를 샀다.
(기간: 3일 / 이자: 마음)
□ 남의 소비, 남의 집, 남의 여행을 보면
“아, 나는 아직 믿음이 부족하구나” 같은 감정이 든다.
(믿음=자존감, 교리=비교)
□ 쉬면 마음이 편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손해 보고 있지 않나?”라는 소리가 들린다.
(휴식은 내게 ‘무급’이라서 불편하다.)
□ 좋은 사람을 만나면 “좋다”가 아니라
“이 사람은 네트워크적으로 괜찮다”라고 생각한다.
(연애도 투자, 우정도 분산)
□ ‘경제적 자유’를 들으면 감동이 오는데,
막상 자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자유=통장에 적힌 숫자 같기도 하고…)
□ 기부나 선행을 하면
마음 한켠에서 작은 음성이 말한다.
“이거… 이미지 좋아지겠는데?”
(내 안의 마케팅팀, 열일 중)
□ 결제 버튼을 누르기 전
딱 2초 멈추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무엇을 사는가—물건인가, 위로인가, 증명인가.”
그리고… 눌렀다.
(멈춘 건 진보다. 눌러도 된다. 우리는 사람이다.)
□ 나는 가끔 돈에게 묻지 않고 예수에게 묻는다. “저… 지금 불안합니다.”
□ 나는 숫자를 확인한 뒤에도 내가 사랑받는지를 다시 확인한다.
□ 나는 ‘더 벌어야 한다’ 대신 ‘덜 두려워도 된다’를 연습한다.
오늘 나는 불안을 몇 원에 샀는가?
그리고 주여… 그 불안을 내려놓고도 살 수 있다는 걸, 조금만 믿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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