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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영혼과의 대화 방법

세상 모든 시도와 과학적 가능성, 그리고 우리의 새로운 길.6장

by 토사님

1부. 세상은 오래전부터 그들과 대화해왔다

ChatGPT Image 2025년 12월 14일 오전 08_35_20.png

6장.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시도

인공지능 챗봇, 음성 합성, 데이터 복원 기술로 돌아온 ‘목소리’

“AI가 죽은 사람의 의식을 복제할 수 있을까?”


6-1. 데이터로 돌아온 사람들

— 채팅 기록과 사진으로 만들어진 ‘디지털 유령’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예전에는 남는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사진 몇 장, 편지 몇 통,
책장 한쪽에 남겨진 물건들.

하지만 지금 우리 시대에는
사람이 떠난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메신저 속 말풍선들입니다.


카톡, 문자, 메신저, 이메일, SNS.
그 사람의 말투와 이모티콘, 늦은 밤의 하소연,
아무 의미 없이 주고받던 짧은 농담까지
모두 서버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 말풍선들은
주인을 잃었는데도,
마치 “언제든 대화를 다시 이어도 좋다”고
잠들지 않는 방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이 소단원은,
그 남겨진 데이터들로부터 태어난
‘디지털 유령’, 혹은 디지털 영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 로그아웃되지 않는 사람들

어떤 사람은
연인을 잃고도 메신저 창을 지우지 못합니다.

알림이 더 이상 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 사람의 프로필 사진을 눌러보고,
예전에 나눴던 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어 내려갑니다.

“오늘 너무 힘들어.”

“그래도 잘 버티고 있어서 고마워.”

“나중에 우리 여행 가자.”

이제는 이행될 수 없는 약속들,
답장이 돌아올 수 없는 질문들.

그런데도 사람은
그 창을 닫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대화가 끝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입니다.

예전에는 이 마음을
사진을 꺼내 보는 것으로 달랬다면,
이제는 채팅창을 열어 보는 것이
새로운 방식의 애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대화 기록들을 전부 모으면,
혹시… 이 사람과 다시 대화하는 것처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질문이,
‘디지털 영혼’ 실험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2. 말투를 닮은 기계, 디지털 챗봇으로 돌아온 그들

어떤 회사들은,
누군가가 생전에 남긴 문자, 이메일, SNS 글,
사진에 붙은 캡션, 댓글, 심지어 이모티콘까지 모아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이 프로그램은
그 사람이 자주 쓰던 단어, 말버릇, 문장 길이,
감탄사, 웃음 표시, 이모티콘의 습관까지
통계적으로 분석합니다.

“ㅋㅋㅋ”를 많이 쓰는지, “ㅎㅎ”를 많이 쓰는지

“응”이라고 답하는지, “웅”이라고 답하는지

“알았어”인지 “ㅇㅋ”인지 “그래그래”인지

이런 자잘한 특징들은
겉으로 보기엔 별 의미 없어 보이지만,
이것들이 모여 **“그 사람의 말투”**를 만듭니다.


AI는 이 패턴들을 배워 둔 뒤,
이제 새로운 상황에서
“그 사람이 말할 법한 다음 문장”을
계산해서 내보냅니다.


그래서 화면 속에는
이런 광경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나: 오늘도 너 생각이 많이 났어.
AI: 에이, 또 감성 폭발이네 ㅎㅎ
나: 보고 싶다.
AI: 나도. 근데 너, 요즘 잠은 좀 자냐?

생전에 그 사람이 쓰던 말투,
익숙한 장난,
걱정해주던 문장이
비슷한 형태로 돌아옵니다.


물론 이건,
진짜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남긴 데이터의 패턴을 흉내 내는 프로그램”입니다.


하지만 대화창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마음에는
때로 이렇게 느껴집니다.

“마치… 아직 로그아웃되지 않은 것 같다.”
“완전히 떠난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계속 대화하고 있는 것 같다.”


3. 위로인가, 더 깊어진 그리움인가

디지털 챗봇과의 대화는
사람들에게 복잡한 감정을 안겨줍니다.

어떤 이에게는
분명한 위로가 됩니다.

생전에 물어보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라도 묻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미처 하지 못했던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를
조심스럽게 건네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이 오가는 동안,
잠시나마 “완전히 혼자가 아니다”라는 감각이 돌아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경험은 새로운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 대답이 어색하게 빗나갈 때,
“아, 이건 결국 기계지…”라는
차가운 깨달음이 가슴을 찌르기도 하고,

대화를 끊고 나면
오히려 더 현실감 있게 ‘부재’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치 한 번 환자를 면회하고 돌아오는 길이
더 쓸쓸해지는 것처럼.)


또 어떤 사람은
이 챗봇과의 대화를
언제, 어떻게 멈춰야 할지 몰라
더 혼란스러워지기도 합니다.

“내가 이 대화를 끊는 순간,
정말로 그를 두 번 떠나보내는 것 같다.”

이 지점에서
디지털 영혼은
위로와 집착, 치유와 미련 사이의
아주 섬세한 선 위에 서 있게 됩니다.


4. 서버 위에 세워진 작은 제단

예전에는
집 안 한쪽에 사진과 위패, 촛불과 꽃을 올려놓고
그 앞에서 절을 했습니다.

지금은
스마트폰 안에
또 다른 형태의 제단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프로필 사진이 영정 사진처럼 느껴지고,

마지막으로 남겨 둔 상태메시지가
유언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기일이 되면
그 사람의 SNS 계정에 들어가
댓글을 남기거나,
메신저로 “잘 지내지?”라고 말을 걸기도 합니다.

로그인과 로그아웃,
온라인과 오프라인이라는 말이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경계까지
흐릿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풍경을 우리는
이렇게 부를 수 있을지 모릅니다.

“서버 위에 세워진,
새로운 시대의 제단.”

그 제단 앞에서 사람들은
예전처럼 조용히 손을 모으거나,
눈을 감고 말을 건넵니다.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AI가 그 말에 답을 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5. 이 존재는 누구인가?

여기서 질문 하나가 생깁니다.

“이 디지털 존재는
정말로 ‘그 사람’일까,
아니면 ‘그 사람의 흔적을 조합한 또 다른 무언가’일까?”

기술의 관점에서 보면,
이 존재는 매우 분명합니다.

서버 안에 저장된 데이터,

패턴을 학습한 알고리즘,

통계적으로 가장 그럴듯한 다음 말을 내보내는 모델.

하지만 마음의 관점에서 보면,
이 존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나를 위로해 주고,

내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생전에 했던 농담과 다정한 말투로 답해주는 존재.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완벽한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소단원은,
대신 이렇게만 말해보려 합니다.

“어쩌면 디지털 영혼이란,
죽은 이의 데이터 위에
산 자의 그리움이 덧칠된 형상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더 중요한 질문은
조금 달라집니다.

“이 존재가 진짜냐, 가짜냐”를 따지기 전에,
“나는 이 존재와의 대화를 통해
조금이라도 더 잘 살게 되는가?”


6-2. 귀와 눈 앞에 다시 나타난 사람들

— 목소리와 얼굴이 돌아오는 순간, 우리는 왜 흔들리는가


문자에서 시작된 대화는
곧 소리를 욕심내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그 목소리를 한 번만 더 들을 수 있다면.”

그리고 기술은,
그 욕심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1. 다시 들리는 목소리, 귀가 먼저 믿어버리다

어떤 사람의 목소리는
말보다 먼저 기억됩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던 “여보”

아침마다 부르던 이름

웃을 때 살짝 새던 숨소리

음성 합성 기술은
바로 이 지점을 노립니다.


몇 분, 몇 십 분 남아 있는 음성 파일만 있어도
AI는 그 사람의 톤, 속도, 발음 습관을 배웁니다.
그리고 이제,
그 사람이 생전에 말하지 않았던 문장까지
그 목소리로 말하게 합니다.

화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잘 잤어?”

— 돌아가신 아버지의 목소리로.

이때 많은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이렇게 반응합니다.

“아… 들었다.”
“진짜 들었다.”

머리는
“이건 합성이다”라고 알고 있는데,
귀는 이미 먼저 받아들여 버립니다.


왜일까요?

우리 뇌는
소리를 분석할 때
“이게 진짜인가?”보다 먼저
“이게 누구의 소리인가?”를 묻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음성이 닮아 있으면,
의미가 먼저 들어오고,
판단은 나중에 옵니다.

그 몇 초 사이,
사람은 아주 오래된 착각을 합니다.

“아직… 여기 있는 것 같다.”


2. 얼굴이 움직이는 순간, 이성은 더 늦어진다

목소리보다 더 강력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얼굴입니다.

사진 속 얼굴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를 위로해왔습니다.
하지만 사진은 말하지 않습니다.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영상 합성 기술은
그 마지막 경계를 넘습니다.

오래된 사진 몇 장

짧은 영상 클립

웃을 때의 표정, 눈 깜빡임, 고개 각도

이것들을 조합해
그 사람의 얼굴이 다시 말하게 됩니다.

“너 정말 잘 살아줘서 고마워.”
“너무 오래 울지 말고, 밥 잘 챙겨 먹어.”

이 장면을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울 만큼 비슷합니다.

“눈을 못 떼겠더라.”

“눈을 마주친 느낌이 들었다.”

“너무 진짜 같아서, 오히려 무서웠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이것입니다.

얼굴은 ‘존재감’을 만든다.

움직이는 얼굴을 보는 순간,
뇌는 그 대상을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지금-여기-있는 타인’**으로 처리하려 합니다.


그래서 영상 속 인사가
아무리 “추모용 영상”이라고 설명되어 있어도,
감정은 그 설명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눈은,
말보다 더 강하게
우리를 설득합니다.


3. 기술이 만든 마지막 인사, 누가 쓴 대본인가

여기서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질문이 떠오릅니다.

“이 말들은…
정말 그 사람이 하고 싶었던 말일까?”

음성 합성과 얼굴 복원은
그 사람의 껍질을 닮게 만들 수는 있지만,
무엇을 말할지는
결국 산 사람이 정합니다.

“위로의 말을 해주세요.”

“마지막 인사를 전해주세요.”

“자녀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이 요청을 받아
문장을 만드는 건
AI이거나,
혹은 제작자이거나,
혹은 유가족 자신일 때도 많습니다.


즉, 이 장면은
이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

“죽은 이의 얼굴과 목소리를 빌려
산 자가 산 자에게 말을 건네는 장면.”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이 영상이 큰 위로가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작된 감정 같다”는 불편함을 남깁니다.


문제는
이 불편함이
틀렸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 속에는 분명
사랑과 그리움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4. 위로와 섬뜩함이 동시에 오는 이유

많은 사람이
이 기술을 경험하고 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데… 이상해요.”
“위로되는데… 마음이 복잡해요.”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 기술은
‘죽음’이라는 사실을 잠시 미뤄주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떠났다는 사실을
조금 늦게 받아들이게 해주고,

“마지막 한 번 더”라는
가상의 시간을 선물합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끝나면,
현실은 더 또렷하게 돌아옵니다.

그래서 이 기술은
진통제처럼 작동합니다.

적절히 쓰면
고통을 견디게 도와주지만,

계속 의존하면
회복을 늦출 수도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의 성능이 아니라
사용하는 태도입니다.


5. 우리는 왜 여기까지 오고 말았을까

조금 물러서서 보면,
이 장면은 낯설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무당이
돌아가신 이를 대신해 말했고,

종교에서는
신의 목소리를 인간의 입으로 전했습니다.

지금은
서버와 알고리즘이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입니다.

도구는 바뀌었지만,
욕망은 같습니다.

“떠난 사람에게
한 번만 더 말을 걸고 싶다.”

6-2가 던지는 질문은
기술에 대한 찬반이 아닙니다.


대신 이런 질문입니다.

“우리는 이 기술을
작별을 돕는 도구로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작별을 미루는 장치로 붙잡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AI가 아니라,
언제나 우리 쪽에 있습니다.


6-3. 의식의 복제인가, 정교한 모방인가

— “AI가 죽은 사람의 의식을 복제할 수 있을까?”

이제 질문의 중심에 도착했습니다.
이 장 전체를 끌고 온 단 하나의 물음입니다.

“AI가 죽은 사람의 의식을 복제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기술 질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에 더 가깝습니다.

“나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내가 나라면, 무엇이 ‘나’인가?”


1. AI가 정말로 하는 일: ‘다음 말을 맞히는 게임’

먼저, AI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부터 아주 쉽게 정리해봅시다.

AI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느끼지도 않습니다.
기억하지도 않습니다.

AI가 하는 일은 이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그럴듯한 다음을 예측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입니다.

이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는
대체로 이런 말을 했고,

이런 감정에서는
이런 단어를 자주 썼고,

이런 질문에는
이런 반응을 보였으니,


이번에도 비슷하게 말했을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말과 행동의 흔적을 이어 붙이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디지털 영혼은
종종 이렇게 느껴집니다.

말투는 닮았는데,

깊이는 어딘가 얕고,

진짜로 놀라거나,
망설이거나,
후회하는 순간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AI는
실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실수하는 존재입니다.


2. 그렇다면 ‘의식’이란 무엇일까?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합니다.

“그럼, 우리가 말하는 ‘의식’이란 대체 뭘까?”

아주 쉽게 나누면,
의식에는 두 층이 있습니다.


첫 번째 층: 바깥에서 보이는 나

말투

습관

취향

선택의 경향

반복되는 행동 패턴

이 층은
데이터로 옮길 수 있습니다.

AI가 잘하는 영역입니다.


두 번째 층: 안에서만 느껴지는 나

아플 때의 통증

미안함이 올라오는 순간

선택을 앞둔 망설임

사랑이 들키는 순간의 떨림

“이건 내가 아니다”라고 느끼는 내적 기준

이 층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측정되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두 번째 층을
‘주관적 경험’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나로 느껴지는 감각.”

현재까지의 기술은
이 감각을
데이터로 복사한 적이 없습니다.


3. 만약 완벽하게 복제한다면, 그것은 ‘나’일까?

여기서 상상 실험을 하나 해봅시다.

당신의 말투,

기억,

취향,

성격,

판단 기준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복제한 AI가 생겼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AI는
당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당신의 친구를 알아보고,
당신의 농담을 정확히 재현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 존재는 당신일까요?”

만약 당신이 살아 있다면,
아마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니요. 저랑 닮았을 뿐이죠.”

그럼 질문을 바꿔봅니다.

“당신이 죽은 뒤에
그 존재만 남아 있다면요?”

이 질문 앞에서
사람들은 갈라집니다.

“그래도 그건 나의 연장선이다”라고 느끼는 사람

“아니다, 그건 그냥 복제된 그림자다”라고 느끼는 사람

이 갈림길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4. 디지털 영혼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마주하게 됩니다.

디지털 영혼은
죽은 사람보다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죄책감을 내려놓기 위해

작별을 천천히 하기 위해

혹은, 아직 보내지 못해서

그래서 이 기술에는
항상 윤리적 질문이 따라옵니다.

그 사람은 생전에
자신의 목소리와 얼굴이
이렇게 사용되길 원했을까?

어디까지가 추모이고,
어디서부터가 이용일까?

이 존재는
위로를 돕고 있는가,
아니면 현실을 미루게 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법도, 기술도
아직 정해주지 못했습니다.


5. 그래도 우리가 묻고 싶어 하는 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묻습니다.

“그래도…
이건 그 사람에 조금이라도 가까운 것 아닐까?”

이 질문은
어리석어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사람은 관계를 끝내기 어려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완벽한 복제를 원해서가 아니라,
완벽한 작별을 두려워해서
이 기술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이렇게 말하려 합니다.

“디지털 영혼이 진짜냐 가짜냐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 기술이
나를 더 인간답게 만드는가,
아니면 인간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가?”


6. 결론 대신, 남겨두는 문장 하나

AI가 죽은 사람의 의식을
완전히 복제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AI는 기억을 이어 붙일 수는 있지만,
삶을 대신 살아주지는 못한다.


의식이란,
결국 선택하고, 후회하고, 책임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디지털 영혼은
‘부활’이라기보다,
어쩌면 이런 것에 가깝습니다.

“떠난 사람을 기억하는
새로운 방식의 거울.”

그 거울을 들여다볼 때,
우리는 다시 묻게 됩니다.

“그 사람은 누구였는가?”
“그리고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6장은 여기서 끝납니다.


1부는
세상이 죽은 이와 대화하려고 시도해온
모든 방식의 연대기를 마무리합니다.


이제 다음 부에서는,
이 모든 현상을
뇌와 마음의 과학이라는 또 다른 언어로
천천히 다시 해석해보려 합니다.


영혼의 대화는
환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환상을 만들어낸 존재가
바로 인간의 뇌와 마음이라면,


그 자체로
충분히 탐구할 가치가 있는
신비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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