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반려동물과 영적으로 소통하는 법.1장
– 그리움이 영적 소통의 문을 두드리는 순간
반려동물이 떠난 후에도 발소리, 기척, 습관을 느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짧은 에피소드 모음.
“영적 소통”의 문이 열리는 초기 경험들을 보여줌.
처음으로 이상한 소리를 들은 건,
장례식이 끝나고 사흘째 되던 밤이었다.
집 안은 어색할 만큼 조용했다.
늘 누군가의 숨소리, 꼬리치는 소리,
바닥을 긁는 발톱 소리가 섞여 있던 공간인데
이제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만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그녀는 소파 끝에 몸을 말고 앉아 있었다.
잘 접어둔 목줄이 테이블 위에 있었다.
보지 않으려고 몇 번이나 시선을 돌렸지만
눈동자는 자꾸만 그곳을 찾아갔다.
그때였다.
거실 한쪽, 복도에서
짧은 소리가 났다.
탁, 탁, 탁—
마치 손가락으로 나무 바닥을 세 번 두드린 것처럼,
그러나 그녀의 귀는
그 음을 아주 정확하게 알아보았다.
발톱 소리다.
그 강아지가, 밥 시간이 되었을 때
복도 끝에서부터 뛰어오던 속도와
거의 똑같았다.
그녀는 숨을 멈춘 채 귀를 기울였다.
두 번째 소리는 나지 않았다.
집 안은 다시, 처음부터 조용했던 것처럼 돌아갔다.
잠시 후에야,
그녀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또 시작이네… 나도 결국 환청을 듣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눈에서는
그렇게 많이 울었던 장례식 때와는
조금 다른 눈물이 흘렀다.
이번 눈물은,
슬픔만이 아니라
조금은 안도에 가까웠다.
그래, 너 없이 사는 첫 번째 밤이
이렇게까지 완전히 비어 있지는 않구나.
그녀는 그날 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알았어. 듣고 있어. 또 오면… 괜찮아, 와도 돼.”
다음 이야기는,
열세 살 노견을 떠나보낸 지 일주일 된
또 다른 보호자의 목소리에서 시작된다.
그는 매일 새벽 다섯 시 반이면
강아지에게 밥을 주었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복도 저 끝에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그의 모닝콜이었다.
또각, 또각, 또각—
한 번 속도가 붙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고 현관까지 뛰어와
꼬리를 흔들며 그를 올려다보던 아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 시간만 되면 그는
잠에서 대충 눈을 떴다.
몇 날 며칠,
몸은 그대로 그 시간에 맞춰 깨어났다.
그리고 어느 새벽,
알람을 끄기 직전
그는 아주 미세한 소리를 들었다.
복도 어딘가에서
‘툭’ 하고 부딪히는 작은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두세 번의 발자국.
또각, 또각—
그는 숨을 죽였다.
이불 위로 두 손이 살짝 떨렸다.
문을 열어 나가면
아무도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방문 손잡이를 잡는 손이
천천히 떨렸다.
예상대로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 길고 좁은 공간의 공기에서
이상할 만큼 익숙한 기운을 맡았다.
산책을 다녀온 날,
씻기고 말려도 사라지지 않던
햇빛과 흙, 바람의 냄새 같은 것.
그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인사했다.
“그래, 일어나라고 했지?
알았어, 오늘도 밥 줄게.
그러니까… 조금만 더 놀다가 가.”
그날 이후,
그는 새벽마다 들려오는 작은 소리를
더 이상 ‘환청’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놓치지 못한 인사”**라고 불렀다.
서로 미처 다 끝내지 못한 인사들이
새벽마다 복도를 지나가는 것이라고.
이번엔,
고양이와 살던 한 대학생의 이야기다.
그의 고양이는
세상 어느 곳보다
침대 밑을 사랑했다.
낮에도, 밤에도,
낯선 손님이 오면 더더욱
그곳으로 쏙 들어가
꼬리만 살짝 보이게 눕곤 했다.
병으로 고양이를 보내고 난 뒤,
침대 밑은 비워졌다.
먼지가 천천히 쌓였다.
그는 하염없이 그 틈을 바라보다가
결국 청소기를 들이밀었다.
“이제 여기도, 현실로 돌려놔야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밤이 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졌다.
어느 날 밤,
그는 책을 읽다가
습관처럼 옆으로 돌아누웠다.
그 순간,
침대 한쪽이 아주 약간
툭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누군가가 조심스레 올라타고
몸을 말고 눕는 것처럼.
그는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잠깐 눈을 크게 떴다.
방 안에는 그 혼자였다.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무서움과 그리움이
한꺼번에 가슴에 올라왔다.
몇 초 뒤,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래, 네 자리 맞지.
침대 밑에서 올라와 봤구나.
그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말하고 나서야
겨우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그는 침대가 살짝 내려앉을 때마다
공포 대신
조심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거기 있구나.
나도 여기 있어.”
침대는 여전히 같은 나무 침대였고,
무게도 변하지 않았고,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그저 스프링이 삐걱거린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 느낌이 분명하게
한 존재의 “몸짓”처럼 다가왔다.
세상에 없는 몸이
여전히
그의 침대 가장자리를 눌러주는 것처럼.
마지막 이야기는,
은퇴한 뒤 혼자 사는
한 남자의 집 앞에서 시작된다.
그의 강아지는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그보다 늦게 현관으로 나온 적이 없었다.
문 열리는 소리만 나면
부엌에서, 방에서, 마당에서
어디에 있든
쿵쿵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달려나와
신발장 앞에 서서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늦었어요. 어디 갔다 이제 와요.”
눈빛이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가 강아지를 떠나보낸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길었다.
현관까지 이어진 골목길이
낯선 나라의 거리처럼 느껴졌다.
문을 열기 직전,
그는 아무도 없는 집 안을 떠올렸다.
현관 앞에
아무도 서 있지 않을 것을 생각하니
문손잡이를 돌리는 손이 멈췄다.
그래도 언젠가는
들어가야 했다.
철컥—
문이 열리자마자,
그는 아주 약한 바람을 느꼈다.
안에서 밖으로
누군가 한 번 스쳐 지나가는 것 같은 기척.
그리고
발밑에서 아주 희미한 냄새가 올라왔다.
흙냄새, 햇빛냄새,
여름날 뜨거운 시멘트를 밟고 돌아오던
발바닥의 냄새.
현관에는
그가 아침에 정리해둔 그대로
신발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강아지의 리드줄은
벽에 걸려 있었고,
바닥에는 닳은 발자국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남자는 문간에서 한동안
신발장 옆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평생 매일 저녁마다
강아지가 차지하던 그 자리.
그는 마치
그 자리에 누군가가 서 있기라도 한 것처럼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다녀왔어.
오늘은… 네가 먼저 나왔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단단하게 굳어 있던 얼음 같은 것이
조금 녹아내리는 느낌만이
천천히 번져갔다.
그날 밤,
그는 오래간만에
불을 끄고 누워서도
현관을 생각하지 않고
잠이 들었다.
이 세 사람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도시,
서로 다른 계절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다.
첫째,
그 소리와 기척은
언제나 전처럼 반복되던 습관의 자리에서 들려온다.
새벽의 복도,
잠들기 직전의 침대,
퇴근 후의 현관.
둘째,
처음에는 모두가
“내가 이상해진 건 아닐까”라고 생각하지만,
잠시 후에는
이상하게도 공포보다 안도가 더 크다.
셋째,
그들은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 말을 건다.
“와도 돼.”
“거기 있구나.”
“다녀왔어.”
아무도 듣지 못할 것 같은 인사들.
그러나 어쩌면
그 인사를 가장 절실히 듣고 싶었던 건
떠난 존재가 아니라,
남겨진 그들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소리와 기척은
어쩌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는 아직 혼자가 아니다.”
어느 날,
우리는 이 조용한 경험들을
단지 ‘환청’이라 부르지 않고
다른 이름으로 불러 보기로 한다.
그 이름은
“영적 소통”일 수도 있고,
“마음의 잔향”일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불러 보기로 한다.
마지막 날 이후에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인사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말한다.
그 인사들이야말로,
무지개 다리 너머에서 건너온
_아주 처음의 노크 소리_였다고.
다음 장에서 우리는,
이 노크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려 한다.
반려동물이 떠나고 나면,
우리는 먼저 사진을 본다.
장난감, 옷, 목줄을 정리한다.
하지만 가장 먼저
우리를 붙잡는 건
사진도, 물건도 아니다.
습관이다.
몸이 먼저 기억해내는 자리들.
손이 저절로 향하는 공간들.
아직도 두 개의 그릇을 떠올리는 아침,
무릎이 먼저 일어나는 산책 시간,
누구도 앉지 않는 소파 한 칸.
어쩌면 영적 소통은
이 빈자리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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