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1일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합니다.
어제와 이어진 숨결 위에,
그러나 분명히 새로 놓인
하얀 여백 하나를 덧붙이며.
아직 말해지지 않은 마음과
시작되지 않은 선택들이
오늘의 아침을
조용히 밝힙니다.
하루는 늘
처음처럼 서 보라고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
1937년 12월 21일 — 세계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가 세상에 공개되다
이날,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이건 불가능하다”는 수많은 말들을 지나
관객 앞에 섰습니다.
손으로 그린 그림이
두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이끌 수 있을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던 시절,
누군가는 끝까지 만들어 냈습니다.
이 사건은 말해 줍니다.
새로운 형식은 늘
의심 속에서 태어나지만,
끝까지 밀고 간 마음 하나가
기준을 바꾼다는 것을.
아이와 함께 색연필을 고르러 갔습니다.
아이는 한참을 망설이다
아무도 고르지 않는 색,
조금 애매한 회색을 집었습니다.
“왜 이거야?” 하고 묻자
아이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습니다.
“이 색도
어디엔가는 필요할 것 같아.”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눈에 띄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 보여도
자기만의 자리가 있다는 믿음.
우리는 그렇게
작은 선택 하나로
세상을 조금 넓혔습니다.
오늘,
처음의 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잠시
숨을 쉽니다.
미숙해 보일까 두려워
시작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과,
비웃음이 먼저 떠올라
가슴속에만 남겨 둔 말들을
부드럽게 꺼낼 수 있게 하소서.
가라앉은 마음은
실패를 과장하지 않게 하시고,
맑아진 마음은
처음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충분히 의미 있음을
알아보게 하소서.
오늘의 한 걸음이
누군가의 박수를 받지 못해도,
내 안에서는
정직한 전진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하게 하소서.
나는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계속 그려지는 선 위에
서 있는 존재임을
잊지 않게 하시고,
지워질까 봐 떨리는 선도
결국은
그림의 일부가 되게 하소서.
이 하루의 끝에서
나는
시작했음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잘했는지보다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을
조용히 안고 싶습니다.
가라앉아
두려움이 바닥에 닿고,
맑아져
다시 색을 고를 수 있도록,
오늘의 나에게
다음 한 칸의 용기를
은은히 건네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