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흉터는 무늬가 됐고, 나는 어른이 됐다

by 문단

지옥 같던 6학년의 사계절도 시간이라는 무심한 흐름 앞에서는 끝이 났다.


나를 괴롭히고 비웃던 교실을 벗어나던 날, 드디어 거기서 빠져나왔다는 안도감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 시간이 중학교까지 따라오지는 않을지, 또다시 같은 이름으로 불리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중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섞여 있었지만 다행히 1학년 때 같은 반이 된 남학생은 내 과거의 별명을 들춰내지 않았다.


그리고 2학년, 내 인생의 은사님을 만났다. 그분을 통해 다시 사람을 믿는 법을 배웠고, 상처 속에 가려져 있던 내 본연의 모습을 조금씩 되찾아 갔다.


어느새 내 곁에도 친구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고, 누군가와 자연스럽게 웃고 이유 없이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그렇게 고통은 서서히 옅어져 갔다.







고등학교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여고로 진학했다.

어느 날 친구들이 모여 각자 살던 동네 이야기, 다니던 학교 이야기를 하다가 한 친구가 물었다.


“너 어디 살았어?”

“나? ○○동.”

“그럼 ○○국민학교 나왔어?”

“어, ○○국민학교.”

“진짜? 그럼 이○○ 알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이○○. 6학년 때 나를 가장 앞장서서 괴롭히던 아이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잘 모르겠는데?”

“아 그래? 걔 나 중학교 때 제일 친한 친구였거든.”

“그래? 그럼... 연락은 해?”

“아니. 중학교 때 가출 밥 먹듯이 하더니 결국 고등학교 못 갔어. 지금은 연락 안 돼.”


그 말을 듣는 동안 심장은 계속 빠르게 뛰고 있었다. 통쾌하다거나 속이 시원한 감정은 아니었다.

여러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때의 일들, 그 교실, 그 아이. 교실 한쪽에서 혼자 울고 있던 내 모습까지 떠올랐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앉아 있었지만, 참으려 해도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 반에는 얼굴에 화상을 입은 친구가 있었다. 아이들은 은근히 그 애를 피했고, 그 아이는 늘 혼자 점심을 먹었다.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어 그 친구에게 다가갔다.

“같이 먹을래?”


밥을 다 먹고 나자 친구들이 물었다.

“왜 쟤랑 먹어?”

“그냥 좋은 친구 같아서. 화상 입은 게 쟤 잘못은 아니잖아.”


처음에 그 아이는 나를 경계했다. 말도 많지 않았고 쉽게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래도 나는 매일 그 자리로 가 도시락을 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말이 오가기 시작했고, 어색했던 분위기도 조금씩 풀렸다. 내 주변 친구들도 하나둘 그 자리에 함께 앉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정말 좋은 아이였다. 생각이 깊었고 잘하는 것도 많았다. 우리는 졸업 후에도 연락을 이어왔고, 지금까지도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했던 건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 시간을 겪어봤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 같다.







스무 살 중반,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남사친이 고등학교 동창이라며 친구 한 명을 데리고 나왔다. 약속 자리에 함께 나온 그 얼굴을 나는 한눈에 알아봤다.


겨울에 눈 속에 돌을 넣어 내 머리를 맞췄던 아이.

내가 괴롭힘을 당할 때 옆에서 웃으며 동조하던 그 녀석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피부과치료를 받았고 어른이 되면서 얼굴에 아토피도 사라졌다. 처음에는 그가 나를 알아보지 못한 듯했다.


남사친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와, 너 진짜 예뻐졌다. 나 너 못 알아봤잖아. 성형했어? 내가 너랑 이렇게 노는 날도 오네?”


웃고 있었지만 말끝에는 여전히 깔보는 기색이 묻어 있었다.
곧 남사친이 돌아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손이 떨렸지만 나는 피하지 않았다.


“너 기억 안 나? 6학년 때 나를 곰팡이라고 부르면서 괴롭힌 거. 너도 같이 했잖아. 그게 그렇게 괴롭힐 일이었어? 지금도 네 생각은 똑같아?”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었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남사친 역시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나도 인성 덜 된 사람이랑은 어울리고 싶지 않아.”


그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사친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수없이 미안하다고 했고, 다시는 그를 부르지 않겠다고 말했다.







만날 일도 없을 거다. 그래도 가끔 가해자들에게

묻고 싶다. 수십 년이 지났으니, 어쩌면 너희도 부모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교실에서 컵라면을 먹던 시간, 뜨거운 물을 일부러 내 옷에 쏟던 일, 별것 아니라는 듯 옥상으로 불러 올려 무자비하게 때리던 날들. 너희는 그걸 지금도 ‘어릴 때 철없어서 그랬던 장난’이라고 기억하니?


그렇다면 묻고 싶다. 만약 너희 가족이 신체적인 이유 하나로 조롱을 당하고, 따돌림을 당하고, 폭력을 겪는다면 너희는 그걸 웃으며 넘길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때서야 그게 장난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게 될까?


너희는 정말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지난 일인데 왜 아직도 그러냐”라고, “그때는 애들이라 그랬다”라고.


피해자에게 지난 일은 없다. 아이들의 학폭은 결코 장난으로 치부될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그 일이 삶을 바꿔버리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한 인간의 영혼을 도려내는 살인과도 같다.







작가의 말


아픈 기록을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십 년 전의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위로의 댓글로

저를 안아주신 어른들 덕분에, 저는 비로소 이 연재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지금도 학폭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잔인함은 어른들을 능가합니다. 피해자들이 용기 내어 목소리를 내는 시대가 되었지만, 끝내 그 시간을 다 견디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도 어쩌면 거기에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와 비슷한 일을 겪으며 살아온 분들이 있다면,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잘 견뎌오셨습니다. 그 시간을 버텨낸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대단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