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에서 도려내고 싶은 기록

by 문단

우리 담임 선생님은 좋은 분이었다.


음악 실기 시험에서 내 노래를 듣고 만점을 주셨고
조가를 만들었을 때도 내 창의성을 칭찬해 주셨다.



“적어도 어른 한 명은 내 편에 서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던 일을
‘아이들끼리의 사소한 갈등’ 정도로만 여겼다.


그 조롱이 누구를 향한 집단 공격이었는지
누가 이미 충분히 부서져 있었는지
끝내 보지 못했다.



학기 말, 손에 쥐어진 생활통지표에는
성실하게 학교생활에 임하고,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한다는
무난한 문장들이 먼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시선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문장이 있었다.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여
교우 관계가 원만하지 못함.
사회성 기르기가 요구됨.”



그 한 줄이, 아이들의 폭력보다 훨씬 더 잔인했다.

열세 살의 나는 분명 피해자였는데, 선생님의 펜 끝은 나를 ‘지도 대상’으로 정리해 버렸다.



내가 살아남겠다고 겨우겨우 내뱉었던 모든 저항은,

그 문장 안에서 '예민함’으로 번역되었다.


왕따를 당하고 있었던 것보다 더 숨이 막혔던 건
내가 믿고 있던 어른이 아이들의 해석을
아무런 의심 없이 공식 기록으로 남겨버렸다는 사실이었다.



그 순간
내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애써왔던
모든 것들이

철저하게 무너져 내렸다.








수십 년이 흘렀다.


얼굴 위의 아토피는 사라졌지만
면역력이 떨어질 때면 팔 안쪽과 무릎 뒤 접히는 곳에
알레르기가 올라온다.



피부가 붉게 달아오를 때마다
지하실 곰팡이 냄새 같던 6학년 교실의 장면들도

함께 밀려온다.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견딜 수 있는 밀도로 변할 뿐이다.

지워내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가 약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고들 말한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기억 앞에서만큼은
나에게 그보다 절실한 선물은 없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내 영혼에 새겨진, 생활통지표의 문장과
“6학년의 시간을 통째로 도려내 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런 선물을 받지 못한 나는
오늘도 불쑥 올라오는 오래된 흉터를
손끝으로 천천히 쓸어내리며
그때의 나를 뒤늦게 안아주는 일을
혼자서 반복하고 있다.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기록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