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몰라요

by 문단

6학년이 되어서야 원하던 갈색 단복을 입을 수 있었다.

그 시절의 걸스카우트는 4학년부터 6학년까지, 고학년들만 할 수 있는 활동으로 기억한다.


친구 중에 걸스카우트를 하는 애가 있었고, 학교에서 갈색 단복을 입고 다니는 단원들을 보면 너무 부러웠다.


하얀 스타킹에 갈색 단복, 그 위에 걸치는 어깨띠.


어깨띠에는 다녀온 곳마다 받는 배지들이 하나씩 달려 있었다. 배지가 많은 애들은 오래 활동한 애들이었고, 그 배지들은 훈장처럼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5학년 때부터 엄마를 졸랐다.

친구도 하고 있고, 나도 하고 싶다고.

하지만 엄마는 들어주지 않았다.


“단복도 사야 하고 돈도 많이 들어서 안돼.”

“너 학원도 몇 개나 다니잖아!”







6학년이 되었을 때 다시 걸스카우트 신청서가 나왔다.


걸스카우트는 단복을 포함해 모든 활동에 경비가 들었기에 부모의 허락과 사인이 꼭 필요했다.

나는 신청서를 엄마 앞에 내밀었다.


그리고 다시 엄마를 졸랐다.


“엄마, 나 진짜 이번 한 번만!!”

“6학년이잖아. 지금 아니면 못 해!”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동생들도 더 잘 돌볼게.”

“엄마가 시키는 심부름도 다 잘할게.”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얘가 왜 이래? 들어가서 공부나 해!”


나는 거의 울면서 말했다.

나 진짜 하고 싶어, 진짜야...”


절대 안 된다던 엄마는 신청서를 다시 들여다봤다.

“너, 니가 한 말 꼭 지켜.”


그리고 사인을 해줬다.


어떤 애들은 갈색 단복이라며 ‘똥스카우트’라고 놀려댔지만 상관없었다.
한참을 졸라 겨우 신청서를 받아낸 그날,



난 정말로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봄에서 여름 사이였던 것 같다.


걸스카우트와 보이스카우트가 함께하는 야영이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1박 2일을 보내는 일정이었다.


그 밤에는 캠프파이어가 예정돼 있었고, 걸스카우트는 그때 할 율동을 맞추기 위해 연습을 하게 됐다.


율동을 가르쳐주는 아이는 6학년 단장이었다.

키가 컸고 덩치도 상당했다. 원래 춤을 잘 추는

애였던 것 같다. 음악을 틀어놓고 동작을 짚어주는데, 말투나 태도에서 기세가 느껴졌다.


연습 도중 단장이 한 아이를 지목했다. 부단장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야, 엎드려뻗쳐.”


주변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같은 6학년이었다.

그 아이는 정말로 엎드려뻗쳐를 했다. 땡볕 아래에서 몸이 떨릴 만큼 힘들어 보였다.


나는 옆에 있던 친구를 봤다. 친구는 말없이 내 옆구리를 찔렀다. 조용히 하라는 신호였다.

단장이 일어나라고 했고 이번엔 자기가 마시던 음료수 뚜껑을 아이 머리를 겨냥해 던졌다.


“가져와.”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달려가 뚜껑을 주워왔다.
그 일은 몇 번이나 반복됐다.


이후 연습이 이어졌고 우리는 찍히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율동을 따라 했다.


단장 옆에는 연습에 참여하지 않고 벤치에 앉아 있는 여자애가 있었다. 똑 단발에 안경을 썼고 키는 컸지만 마른 체형이었다. 단장은 그 애에게만 유난히 친절했다. 우리를 대할 때와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집에 가는 길에 물었다.



“쟤는 뭔데? 단장이 왜 쟤한테는 저래?”


“너 쟤한테 찍히면 죽어. 쟤네 부모님, 우리 학교 육성회장이야. 집도 엄청 부자고 공부도 잘해.”



연습은 거의 매일 이어졌다. 그 덕에 야영 날,

〈어른들은 몰라요〉 율동은 완벽했고 캠프파이어는 정말 재미있었다. 불꽃은 높이 올라갔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기합을 받던 그 아이는 여전히 단장의 눈치를 보며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친구의 말 때문이었는지, 그 자리에 깔려 있던 숨 막히는 분위기 때문이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 순간에 나는 선택했다는 것이다.

내가 교실에서 당할 때 나를 지켜주지 못했던 친구들처럼....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방관자의 길을 택했다.





여름 방학 전, 육성회장 딸이 자기 생일에 걸스카우트 전원을 뷔페로 초대하겠다고 했다.

그 아이의 생일은 여름 방학 중이었기 때문에 미리 한 말이었다.


나는 뷔페라는 곳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선물은 가져오지 말라고 했지만 집에 있던 학용품을 미리 포장해 두었다.
아빠가 일본에서 사다 준 것들이었다.


집에서 밥을 먹으려다 문득 파티 생각이 났다.
이미 약속 시간은 삼십 분이나 지나 있었다.
거리가 꽤 됐지만 포장한 선물을 들고 그대로 뛰기 시작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뷔페에 이번엔 꼭 가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도착했을 때 식당은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음식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앞에는 삼단짜리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그렇게 큰 케이크는 처음 봤다.

친구를 찾아 자리를 잡고 접시에 이것저것 담아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잠시 후 마이크 소리가 들렸다.
학교에서는 공포의 대상이던 단장이 마이크를 잡고
육성회장 딸을 향해 정성스럽게 쓴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편지를 다 읽고는 선물을 건네며 웃는 그 아이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주인공은 당연히 육성회장 딸이었다.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으면서도,
그 장면이 계속 눈에 밟혔다.


싸움 잘하는 애가, 저렇게까지 하는구나.



어린 내가 생각해도, 그건 분명한 아이러니였다.







2학기가 시작됐다. 4교시가 체육시간이었던 날이었다.


우리 반과 다른 반이 함께 체육을 했는데, 그 반에 걸스카우트 단장이 있었다.

여자애들은 반대항으로 피구를 했고 남자애들은 다른 운동을 했던 것 같다.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 종이 울렸다.

단장이 우리 반에서 나를 괴롭히던 여자애 하나를 부르며 따라오라고 했다.
그 애는 단장을 따라 학교 뒤쪽으로 갔고, 나를 포함한 많은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뒤따라갔다.



학교 뒤편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피구를 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 싸움이었지만 누가 봐도 단장이 훨씬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 틈에 섞여 그 장면을 보다 아무 말 없이 교실로 돌아왔다.



점심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애가 교실로 들어왔다.
모습은 엉망이었고, 자리에 앉자마자 책상에 엎드려 서럽게 울어댔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니 속이 시원하기까지 했다.


내 안에서는 같은 말이 반복되고 있었다.


니가 당해보니까 어때?

그렇게 나를 괴롭히더니, 넌 당해도 싸!!!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순간의 나는
강자에게 짓눌린 약자의 슬픔을 외면한 또 하나의 방관자였다.



나는 운동장에서《어른들은 몰라요》라는 노래에 맞춰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율동을 했지만,


사실은 그보다 먼저



어른들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몸으로 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