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차와 의안: 배신이 나를 괴물로 만들던 날

by 문단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기 직전, 우리 가족은 동수가 딱 두 개뿐인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단지가 워낙 작다 보니 아이들은 금세 얼굴을 익혔다.


그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모두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고, 1학년이 되는 아이들 역시 같은 학교로 배정됐다.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게 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한 아이를 만났다. 우리 동 옆 라인에 살던, 나와 동갑인 예쁜 친구였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4학년과 5학년에도 다시 같은 반이 됐다.

반이 달랐던 해에도 우리는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늘 함께였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6년의 시간을 나란히 쌓아온 그때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다.



6학년이 되고 반에서 왕따가 되었을 때도,

그 친구만큼은 곁에 있었다.

나는 그 애가 내 편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다. 굳이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점심시간, 다른 반이었던 그 친구가 잠깐 나와보라며 나를 불러냈다.


반가운 마음에 웃으면서 교실 밖으로 나가보니, 그 애 곁에는 낯선 아이들과 얼굴만 어렴풋이 아는 아이들이 섞여 있었다.


네다섯 명쯤 됐던 것 같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틈도 없이 아이들이 내 양팔을 붙잡았다.
뒤에서 밀리고 앞에서 끌려가듯, 그대로 화장실로 몰렸다.

문이 닫히자마자 여러 손이 동시에 몸을 눌렀다.

뒷목이 눌렸고, 등이며 옆구리며 아무 데나 손이 날아왔다.



“아, 아파. 왜 그래!”
“하지 마. 진짜 아프다고!”


그 말에도 아이들은 계속 웃고 있었고, 손은 더 거칠어졌다.

참다못해 아이들의 손을 세게 뿌리쳤다.


“장난이잖아. 왜 이렇게 정색해?”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아프다고 말한 쪽이, 분위기를 망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는 그 애들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교실로 돌아왔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친구가 왜 그런 자리에 나를 불렀는지,
왜 말리지 않았는지, 왜 웃고 있었는지

때리던 손길에 친구도 보탠 것은 아닌지..

그날 이후로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5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시작됐을 때였다.


우리 반 아이가 쪽지를 전해주며 말했다.

“쟤가 주래.”


교실 앞 창문 너머에는 점심시간에 나를 붙잡았던

아이 중 한 명이 서 있었다.


쪽지를 펼쳤다.

“학교 끝나고 쓰레기 소각장으로 나와.”


종이를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여전히 그 친구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못한 상태였기에 마음이 불안했다.

방과 후, 아이들이 하나둘 교실을 빠져나가고 복도가 조용해졌을 때, 쪽지에 적힌 곳으로 향했다.
학교 뒤편,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자리였다.


그곳에는 내 뒷목을 눌렀던 아이들, 등을 때리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장난이었잖아.”
“근데 너 진짜 분위기 깨더라.”



“너네가 먼저 그랬잖아. 난 그냥 불려 나온 건데,

갑자기 끌고 가서 때린 건 너네잖아.”



말이 끝나자마자 뺨이 돌아갔다.


“왕따 주제에, 진짜 재수 없어!”


그 순간 억눌러두었던 분노가 터졌다.


나도 그 아이의 뺨을 세게 쳤다.

그 한 대가 거의 마지막이었다.


나는 여름날의 뜨거운 지열 위에서 무참히 짓밟혔다.
몇 대를 맞았는지, 어디가 어떻게 아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숨이 한 번에 들어오지 않았고
‘왜?’라는 말만 목 안에서 맴돌았다.



아이들은 흩어졌고,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겨우 몸을 추슬러 교문을 나섰다.



언덕길을 내려가다 찻길 앞에서 고개를 들었을 때
제일 친했던 그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너무 원망스러웠다.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네가 나를 불렀잖아.
걔네랑 같이 있었잖아.
웃고 있었잖아.


찻길을 건너자 그 아이의 손에 든 것이 보였다.
집에서 막 가져온 듯한 플라스틱 물통.

얼린 보리차가 녹으며 겉면에 맺힌 물방울을
손수건으로 정성스럽게 감싼 채였다.


그 애는 물통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이거... 마셔.”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미안해...


그 말이 진짜였는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얼굴을 보는 순간, 그 애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던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무서워서 빠졌던 걸까?
뒤늦게 미안해서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아무 말 없이 물통을 받아 들고 먼저 걸었다.


집은 같은 아파트였다.

애는 뒤에서 터덜터덜 발소리를 내며 따라왔다.
끝까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내 안에서 ‘제일 친한 친구’라는 말은
아주 오랫동안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나는 1남 2녀 중 장녀다. 우리 남매는 모두 세 살 터울이다. 내 밑으로 여동생이 있고, 그 아래에 막내 남동생이 있다.

여동생은 피부가 하얗고 예쁜 아이였지만 왼쪽 눈이 보통 사람들과 달랐다.


검은 눈동자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작고 흐릿한 눈이었다. 태어날 때부터였는지,

어떤 이유에서였는지는 모른다. 나는 지금까지도 동생의 정확한 병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 당시에도 부모님에게 묻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이상하게도, '이건 물어보면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동생이 일곱 살이 되던 해였다.

어느 날 엄마는 여동생만 데리고 외출을 다녀왔고, 집에 돌아온 동생의 손에는 미미 인형의 집이 들려 있었다. 당시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 하던 것이었다. 솔직히 많이 속상했다. 왜 동생만 사주냐고 투덜거렸고, 나도 사달라며 떼를 썼다.


몇 시간쯤 지났을까? 집에 어떤 아저씨가 커다란 천 가방을 들고 찾아왔다. 여행 가방처럼 큰 가방이었다.


가방을 열자 작은 렌즈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눈알 모양의 딱딱한 하드 렌즈였다. 어린 내 눈에는 그냥 ''처럼 보였다. 진짜 눈 같았다. 나중에야 그것이 의안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아저씨는 엄마에게 렌즈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직접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었고, 동생의 작은 눈에 렌즈를 조심스럽게 대며 끼웠다 뺐다를 반복했다.

나는 문틈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작은 눈에 인공 눈알을 대는 장면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아파 보였다. 렌즈를 껴도 그쪽 눈에 시력이 생기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인형의 집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엄마가 왜 그걸 동생에게만 사줬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동생을 사팔뜨기라 놀리는 몇몇 남자애들이 있었다.
애들은 렌즈를 모른다.
한쪽 눈으로만 사물을 보려다 보면 시선이 옆으로 쏠릴 때가 있었고, 아이들은 그걸 흉내 내며 놀려댔다.

내가 가만둘 리가 없었다.

“다시 그러면 진짜 가만 안 둔다!!”



동생을 괴롭히는 애들을 귀신처럼 찾아내 혼내줬다.
내가 6학년 교실에서 지옥을 맛보고 있을 때도 동생만큼은 그 지옥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철저히 막았다.


어릴 때 세 살 차이는 컸다.
6학년과 3학년의 차이는 충분했고, 효과도 분명했다.



어느 주말 오후, 동생이 보이지 않았다.
없어진 줄 알고 한참을 찾아다녔다.
나중에야 동네 애들 무리 속에 섞여 있는 걸 봤다.

내가 다가가자 아이들은 슬쩍 흩어졌고,
동생은 쭈뼛쭈뼛 서 있었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너 아까 어디 있었어?
언니가 그렇게 찾았는데.”

“언니랑 같이 있으면 나까지 못 놀아.”

“뭐?”


“애들이 언니 피부가 그래서…
언니 데려오면 안 논대.
나도 안 끼워준대.”


그 말에, 내가 그렇게 지켜주던 동생이
나를 밀어내는 것처럼 느껴졌고
동시에 배신감이 치밀었다.

너무 화가 나서 동생 머리에 꿀밤을 쥐어박았다.

그러자 동생은 나를 똑바로 보며
따박따박 대들었다.


“언니 피부가 그래서
애들이 안 놀아주는 거 아니야!”


지금 생각하면, 열 살짜리 아이가 자기 방식으로 살아남으려고 내놓은 말이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당하고 있던 일이, 동생에게까지 번졌다는 사실이 너무 끔찍했고, 그 끔찍함이 그대로 분노가 되어 튀어나왔다.
그리고.. 동생 앞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눈도 병신인 게!!”


그 순간의 눈빛을, 동생의 그 표정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열 살짜리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말을 뱉는 순간
하지 말아야 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너무 늦었고, 너무 깊게 찔러버렸다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동생의 가장 아픈 상처를, 내가 직접 도려내버렸다.




그날 밤 같은 방에서 잠든 동생의 얼굴을 보며 소리 없이 오열했다.
불을 끈 방은 어둠뿐이었는데 동생 얼굴만은 또렷하게 보였다.

아이의 머리맡에서 속으로만 수십 번 말했다.


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지만 그 말은 동생이 깨어 있었을 때는 차마 전하지 못했다.

나는 그 밤을, 나 자신조차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밤으로 기억한다.


평생 후회되는 말이 있다면, 바로 그 말이다.


지켜줘야 했고 더 잘해줘야 했던 동생에게 내가 가장 아픈 말을 꽂아버렸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아팠다.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보다도, 그 독기에 젖어 가장 사랑하는 동생을 괴물처럼 물어뜯어버린 나 자신이 너무나 혐오스러웠다.




결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사람처럼, 잠든 동생의 손을 붙잡고 밤이 새도록 울고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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