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견딜 수 없는 날이었다.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기에
학교 건물 안 공중전화박스로 달려갔다.
엄마에게 내 상황을 알리는 것.
그것이 열세 살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이자 SOS였다.
엄마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꺽꺽 울음이 터졌다.
“엄마…
애들이 나보고 곰팡이래…
나 왕따야… 너무 힘들어…”
수화기 너머의 엄마는 울지 않으셨다.
내가 울음을 쏟아내는 동안 엄마는 딸의 무거운 슬픔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그 침묵이 오히려 엄마가 얼마나 아팠는지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조용히 말했다.
“그럼… 친구들을 한 번 초대해 볼래?”
며칠 뒤, 나는 반 친구들을 집으로 불렀다.
식탁 위에는 치킨과 정성껏 차린 음식들이
가득 올려져 있었다.
내 딸과 제발 사이좋게 지내달라는
엄마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대접이었다.
그날은 모두 웃으며 먹고 떠났지만,
다음 날 교실의 분위기는 여전히 차갑고 건조했다.
친구들을 초대했다고 해서 이름표가 지워지는 건 아니었다.
[나비핀이 풀리고 숨이 멎던 오후]
옥상으로 불려 가는 길에는 거창한 명분이 없었다.
그저 내가 그들 곁을 스쳤다는 것.
그 사소한 접촉이 폭력의 도화선이 되었다.
한때는 제법 친했었고, 불과 얼마 전까지
서로 이름을 불러도 어색함이 없던 사이였다.
하지만 내가 ‘곰팡이’로 명명된 이후 그 아이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매일 아침 교실에서 얼굴을 마주하던 그 익숙한 아이가
옥상 위에서는 냉정한 사냥꾼의 눈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따귀가 먼저였을까, 머리채가 먼저였을까?
시야가 번쩍이는 것과 동시에,
억센 손길이 내 머리카락을 낚아챘다.
정수리부터 강하게 내리누르는 힘에
고개는 바닥을 향해 처박혔다.
시선이 시멘트 바닥의 먼지에 고정되던 그때였다.
무리 중 누군가 다가와 내 머리망을 고정하고 있던 나비핀을 툭, 하고 풀어냈다.
“이게 있으면 잡기 불편하잖아.”
고개가 숙여진 내 뒷덜미 위로 무심하게 뱉어진 말. 머리채를 쥔 손에 더 확실하게 힘이 실리도록
방해물을 치워주는 조력자의 손길이었다.
그 순간 단정하게 묶여 있던 내 마지막 방어선은 허물어졌고, 머리칼은 헝클어진 채
짐승의 갈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직후 명치에 묵직한 타격이 박혔다.
생애 처음 겪어보는 급소의 충격이었다.
인간은 진짜 고통 앞에서 비명을 지르지 못한다.
폐 속의 산소가 한꺼번에 압착되어 빠져나가는 소리만이 옥상의 공기를 갈랐다.
무릎은 의지와 상관없이 바닥으로 꺾였고,
들이마시지 못한 숨이 목구멍에 걸려 꺽꺽거리는 소리를 냈다.
숨을 쉴 권리를 박탈당한 채 바닥에 고꾸라진
나를 향해, 4학년 때부터 줄곧 곁에 있었던
그 아이의 무자비한 손길이 이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정적만이 남았다.
아이들이 사라진 옥상에서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두피를 쓸어보았다.
통증은 이미 한계를 넘어 비현실적인
무감각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두피 전체에 두꺼운 마취 연고를 발라놓은 것처럼
내 머리가죽은 얼얼하고 낯설었다.
손가락 사이로 뿌리를 잃은 머리카락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나는 바닥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잠시 바라보다,
구석에 떨어진 나비핀을 주워 들었다.
흐트러진 머리를 다시 한데 모으고, 핀을 꽂아 단정하게 고정했다.
붉게 달아오른 뺨 위로는 앞머리를 길게 늘어뜨렸다.
[문 앞에 남겨진 얼굴]
엄마는 이제 내가 잘 지내고 있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 믿음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두피가 벗겨져 나가는 통증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될 엄마의 얼굴이었다.
엄마에게 더 이상의 상처를 주지 않는 것.
연습이 필요했다.
현관문을 열며 나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딸의 얼굴을
정밀하게 조립해 냈다.
그렇게 엄마를 마주한 순간
나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