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장 안전한 자리였다

by 문단

가을 소풍이었다.



“6학년만 갔는지, 다른 학년들과 섞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디로 갔는지도 또렷하지 않다.

하지만 그날 소풍에서 있었던 일들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소풍 가서 제일 먼저 한 건 보물 찾기였다.
선생님이 미리 숨겨둔 쪽지를 찾는 게임이었다.

쪽지들은 나무 사이에 끼워져 있거나 풀숲 깊숙한 곳, 돌 뒤나 벤치 아래처럼 한 번 더 눈을 낮춰야 보이는 자리에 숨겨져 있었다.


아이들은 잔디를 가로질러 뛰어다녔고, 누군가 종이를 발견할 때마다 짧은 환호성이 터졌다.
쪽지를 손에 쥔 아이들은 종이를 펼쳐 확인한 뒤 앞으로 나가 선물을 받아 들었다.


몇 등이었는진 기억나지 않지만 연필 한 다스를 받았다.
다른 아이들처럼, 나도 선물을 하나 손에 쥐었다.


웃음이 여기저기서 터졌고,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들이 잔디 위를 튕기듯 스쳐갔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소풍은 그 자체로 기분이 좋아지는 날이었다.


소풍은 원래 그런 날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우리 반을 불러 모았다.

“자, 이제 무슨 게임할까?”

누군가 외쳤다.

“수건 돌리기요!”


아이들은 둥글게 자리를 잡았다.
남자와 여자가 섞여 앉았고 오십 명이 넘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둘러앉자 원은 생각보다 커졌다.


나는 그 원 안쪽 어딘가에 있었다.
늘 그렇듯 중심도 끝도 아닌 애매한 자리였다.



수건 돌리기


술래가 원 바깥을 돌며 수건을 누군가의 등 뒤에 툭 내려놓는다.

앉아 있는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돌아보지 않은 채, 등 뒤를 슬쩍 확인한다.

수건을 눈치챈 사람은 수건을 들고 술래를 쫓아간다.

잡으면 술래가 바뀌고, 잡지 못하면 수건을 든 사람이 술래가 된다.




남자애는 여자애 뒤에, 여자애는 남자애 뒤에 수건을 놓기로 했다.

규칙은 분명했고, 게임은 간단했다.


나는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남자애도 내 등 뒤에 수건을 놓고 지나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고, 그게 오히려 편했다.


노래가 시작되고 술래가 돌기 시작했다.
내 뒤에 수건이 올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손으로 등 뒤를 더듬지도 않았다.


한 바퀴가 끝날 무렵, 누군가가 내 등을 툭 쳤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등 뒤에 수건이 놓여 있었다.

“걸렸다.”


벌칙을 받아야 해서 원 가운데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떠들어댔다.

“엉덩이로 이름 써!”


잔디 위에 등을 돌리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글자를 썼다.
키득거림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부끄러웠지만 잠깐 설레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벌칙이었고 웃음의 대상이었는데도
그 순간만큼은 내가 그 게임 안에 포함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모순을 알고 있었고,
알면서도 그 모순에 기대고 싶었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는 조금 긴장했다.
노랫소리와 바람 소리 사이에서
두 손을 조심스럽게 등 뒤로 가져가 보기도 했다.
손끝이 허공을 더듬다
아무것도 닿지 않으면 다시 내려놓았다.

그 짧은 순간마다, 심장이 작게 요동쳤다.


수건이 다시 내 뒤에 놓였다.
이번에는 눈치를 챘다.

수건을 움켜쥐고 벌떡 일어나 술래를 쫓아갔다.


하지만 그 뒤로도 수건은 자꾸 내 등 뒤에 놓였다.
한 번 건너뛰는 것 같다가도, 결국은 다시 내 뒤였다.
마치 자석에 끌리듯, 거의 모든 남자애들이 나에게 수건을 놓고 지나갔다.

긴장감이 사라졌고, 아이들의 집중도 흐트러졌다.
누가 걸릴지 아는 게임은 재미가 없었다.



그들은 나를 게임에 끼워준 게 아니었다.
열세 살은 이미 이성에 예민한 나이였고, 나에게 수건을 놓으면 오해가 생기지 않았다.

좋아해서도 아니고, 특별한 의미도 없고, 괜한 뒷말이 따라붙을 일도 없었다.


나는 가장 안전한 자리였다.








소풍날이면 엄마의 아침은 유난히 일찍 시작됐다.


엄마는 음식 솜씨가 좋은 편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당근을 볶고, 시금치를 무치고, 계란 지단을 부친다.
단무지를 썰고 맛살까지 준비했다.

밥에는 참기름과 깨소금이 넉넉히 들어가 있었다.
김 위에 밥을 펴고 재료를 올려

한 줄 한 줄 말아내는 일.


김밥에는 엄마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나는 조원들과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왕따라고 해서 완전히 혼자인 건 아니었다.
눈에 띄지 않는 아이들 몇 명과, 우리는 늘 그렇게 조용한 쪽으로 묶였다.
도시락을 펼쳐보니 김밥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때였다.
여자애들 몇 명이 다가왔다.
내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얼굴들.
나를 괴롭히는 일에 늘 앞장서던 아이가 있었고,
그 옆에서 따라 웃던 아이들도 있었다.


“야, 김밥 하나 바꿔 먹어보자!”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난 괜찮아.”


정말 괜찮아서가 아니었다.
바꾸기 싫다는 말이 그 애들 앞에서는 곧바로 거절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절은 표적이 된다. 이미 충분히 힘들었기에
더는 이유를 보태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말은 나를 향해 있었지만, 결정은 이미 끝나 있었다.

“야, 얘 거 하나 먹어보자.”
“하나만.”


그중 한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난 못 먹겠어. 좀 이상할 것 같아.”

“그래도 먹어보자.”
“하나, 둘, 셋 하면 먹는 거야.”

“하나~두울~ 셋!”


셋에 맞춰 내 김밥이 동시에 집혔다.
제대로 씹기도 전에 반응이 먼저 튀어나왔다.


“우웩!”
“야, 이게 뭐야. 왜 이렇게 비려?”
“이거 상한 거 아니야?”


그러자 아까 먹기를 망설이던 아이가 말했다.
“난 처음부터 안 먹겠다고 했잖아! 이상할 것 같다고.”

누군가는 웃으며 말을 얹었고,
누군가는 일부러 얼굴을 더 크게 찡그렸다.


엄마가 말아준 김밥이 그 애들의 입에서 뱉어져 나와 돗자리 근처에 떨어졌다.
당근도, 시금치도, 계란 지단도—
한 줄 한 줄 붙어 있던 모양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 아이들이 떠난 뒤에야 곁에 있던 친구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괜찮을 리가 없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김밥을 바라보다가 눈물이 올라올 것 같아서, 남아 있는 김밥을 집어 입에 꾹꾹 넣어 먹었다.


그 자리에서 엄마의 손길을
부끄러운 것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폭력은 반드시 주먹으로만 오지 않는다.



수건 돌리기에서 나는 누구에게도 선택되지 않은 사람이었고,
김밥 앞에서도 나는 내 것조차 지킬 수 없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