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깍, 마음이 닫히는 소리

by 문단

아빠는 일본 출장을 자주 갔다. 일본어를 전공했고 무역회사를 다녔기 때문에 바다를 건너는 일이 많았다. 아빠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은 늘 기대가 됐다.



여행 가방이 열리는 순간을 기다리는 일은, 그 무렵의 나에게 중요한 의식이었다.

아빠는 색조 화장품 팔레트를 꺼내 엄마에게 내밀곤 했다. 립스틱과 섀도, 팩트가 한꺼번에 들어 있는, 보기엔 화려하지만 쓸모는 애매한 물건이었다.


“당신, 이런 걸 왜 사 와요!!”


엄마가 아빠에게 눈을 흘기며 혼을 냈던 게 기억난다.

아빠는 카메라를 좋아했다. 예전에 한 번 사 온 적도 있었는데, 일본에서 유명하다는 브랜드 카메라를

또 사 왔다. 어떻게 들고 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빠는 아주 자연스럽게 옷더미 사이에서 꺼내 보였다.



그냥 그런 일이 가능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아빠는 카메라를 손에 들고, 어린 내가 보기에도 알 수 있을 만큼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것엔 관심이 없었다. 내가 기다린 건

내 선물들이었다. 일본 과자들, 낯선 포장의 화과자, 달고 끈적한 간식들. 그것들을 하나씩 꺼내놓을 때의 설렘은 지금까지 생생한 기억이다.







아빠의 가방 안에는 나를 위한 마법들이 더 숨겨져 있었다. 그 시절 한국에서는 아직 흔하지 않던 학용품들, 스카치테이프처럼 바르듯 붙였다가 쓱 밀어 지우는 수정 테이프용 화이트, 딸깍 소리마저 경쾌한 샤프, 만년필처럼 생긴 펜들과 색이 예쁘고 모양이 신기한 것들이 가득했다.


새것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은 이유 없이 부풀어 올랐다.


학교에 가는 날이면 내 책상 위에는 그런 새로운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나와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이 먼저 관심을 보였다.


“이거 뭐야? 되게 신기하다.”

“그치? 신기하지?”


나는 간식도 나눠줬고, 학용품을 몇 가지 건네며

선심을 쓰기도 했다. 집에 학용품이 넉넉했던 탓이다.

하지만 다수의 아이들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쪽바리 물건 쓰네?”


“야, 너 매국노야?”


아이들은 일본 거라는 말에 묘한 힘을 실어 던졌고, 마치 갖고 있으면 안 되는 물건인 양 비난을 쏟아냈다.




체육 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왔을 때였다.

땀이 채 식기도 전에 자리에 앉아 필통을 열었다.

비어 있었다. 아침에 새로 가져온 것들,

아빠가 먼 데서 사다 주며 내 손에 쥐여준 것들이 깡그리 없어졌다. 가방과 책상 주변을 다시 훑어봤지만 없었다. 정말로, 통째로 사라졌다.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곧 반 전체를 세우고 책상 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으라고 했다.



“전부 눈 감아!”


반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으니, 가져간 사람이 있으면 조용히 손을 들라고 했다.

딱딱한 나무 책상 위에서 무릎이 서서히 저려왔다. 눈은 감고 있었지만 사방에서 아이들의 거친 숨소리와 눌러 담은 짜증이 그대로 전해졌다. 손을 들라는 말이 몇 번이나 반복됐지만 아무도 들지 않았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나는 범인을 찾고 싶지 않았다. 그저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결국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고 우리는 단체로 벌을 받았다. 교실을 나설 때 불만이 터져 나왔다.



“너 때문에 왜 다 같이 벌을 받아야 해?”


“진짜 짜증 나!”


“그깟 쪽바리 물건이 뭐라고!!”



도둑맞은 사람은 나였는데, 나는 어느새 모두를 괴롭힌 주범이 되어 있었다. 그날 이후로 아빠가 사다 준 학용품은 학교에 가져가지 않았다. 손에 쥐는 순간, 또다시 나를 고립시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







4학년 때부터 6학년까지 속셈학원에 다녔다.

그곳에 유난히 나를 편하게 대해준 남자애가 있었다. 같은 학교였고 반은 달랐지만, 학원에서는 늘 같이 수업을 들었다. 그 애는 내게 꾸준히 친절했고,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집에 놀러 간 적도 있었고, 그 애가 우리 집에 놀러 온 적도 있었다. 그 애 엄마는 나를 볼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예의 바르기도 하지. 공부도 잘한다며?”


그런 말들은 그 무렵의 나를 지탱해 주는 말이었다. 무엇보다 그 애는 내가 피아노를 잘 치고 노래를 잘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너 진짜 노래 잘하더라.”


그 애는 무너져 있던 나를 조용히 일으켜 세워줬고, 이성이라는 이유로 느끼는 설렘도 내 안에 남겨두었다.



어느 일요일 오후, 동생과 함께 엄마 심부름을 가던 길에 그 애를 만났다. 인사를 나누고 서 있는데 반대편에서 우리 반 남자애 하나가 길을 건너왔다.

알고 보니 둘은 아는 사이였다.



“너 쟤랑 친해?”


“어, 같은 학원 다녀.”


“너 쟤 우리 반에서 뭐라고 불리는 줄 알아?”



그 애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어... 알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동생의 손을 꽉 잡고 달렸다.

백 미터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숨이 찢어질 듯 달렸다.


그 애가 모르고 있기를 바랐던 거였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더라도 그 사실을 내가 모른 채로 남겨두고 싶었던 거였다. 내가 들키고 싶지 않았던 건 ‘왕따’라는 말 자체가 아니었다.


그 애 앞에서만큼은 조금이라도 괜찮은 아이이고 싶었고, 평범하고 사랑받는 아이이고 싶었다.


뒤에서 무슨 말이 오가는지는 끝내 듣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자물쇠가 달린 비밀 일기장을 꺼냈다.

일기장 속에, 처음으로 내 안의 악마를 불러냈다.


아빠가 사다 준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게 써지던 일본제 샤프를 쥐고, 써서는 안 되는 말들을 쓰기 시작했다.



키도 작고 얼굴도 새까만 새끼

집도 가난하고 공부도 못하는 주제에,

얼굴에 버짐까지 핀 새끼가 뭔데 나를 평가해!!.



문장을 따라 눈물이 떨어졌고 글씨는 번져갔다.

나는 단 한 번도 누군가의 외모나 형편을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밤, 내 일기장은 저주와 증오로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나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를 난도질해야 했던 밤,

아빠가 사랑으로 사다 준 그 예쁜 학용품으로

세상에서 가장 추한 문장들을 적어 내려갔다.




글을 마치고 자물쇠를 채우자 딸깍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내 마음이 닫히는 소리처럼 오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