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몸이 이상했다.
열이 나는 것 같았고 속이 울렁거렸다.
“엄마, 나 진짜 몸이 안 좋아. 속도 안 좋고…
학교 못 갈 것 같아. 오늘 학교 안 가면 안 돼?”
하지만 엄마의 대답은 단호했다.
“무슨 소리야? 학교는 가야지.
아프더라도 학교는 가.
너무 아프면 조퇴하고 와서 병원 가면 되잖아.”
엄마가 준 소화제 한 알을 먹고 학교에 갔다.
그 시절 부모님들에게 학교는,
아파도 가야 하는 곳이었다.
나는 1학년부터 6학년이 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학교를 빠진 적이 없었다.
개근상을 받는 게 당연한 일이었고,
아파도 학교는 가는 거였다.
수업이 시작되자 속은 점점 더 안 좋아졌다.
울렁거림이 가라앉지 않았고, 배는 칼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마치 불덩이가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참다못해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저 화장실 좀요. 속이 너무 안 좋아서요."
“그래, 다녀와.”
허락을 받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했다.
잠깐 나아지는 것 같았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결국 다음 교시가 시작되기 전, 양호실로 보내졌다.
양호 선생님은 어제 뭘 먹었는지 물었다.
그제야 전날 밤 만두가 떠올랐다.
조금 매운 김치만두였다.
엄마, 아빠는 맵다며 먹지 말라고 했고 동생들은 아예 손도 대지 않았다.
나는 하나도 안 맵다며 몇 개를 먹었는데, 아마 그게 탈이 난 것 같았다.
아침에 소화제를 먹고 왔다고 말하자,
선생님은 일단 누워 있으라며 이불을 덮어주었다.
많이 아프면 조퇴해서 병원에 가라고 했지만
누워 있으면 괜찮아질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4교시가 끝날 때까지 양호실에 누워 있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교실로 돌아왔다.
도시락을 먹던 친구들이 물었다.
“이제 괜찮아? 밥 안 먹어?”
“못 먹겠어. 니네끼리 먹어.”
먹을 수 없었다.
음식 냄새가 코를 찌르자 속이 다시 울렁거렸다.
양호실에 그냥 있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이제 남은 건 두 교시뿐이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집에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6교시 수업 중에도 다시 화장실에 가야 했다.
배는 계속 꼬르륵거렸고,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상에 엎드린 채로, 주문처럼 같은 말을 되뇌었다.
[제발 무사히 집까지만 가게 해주세요.]
종례가 끝나고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챙기며 일어났는데 배가 심하게 아파왔다.
이대로 집까지 가는 건 안 될 것 같았다.
교실에 두루마리 휴지가 걸려 있었지만, 뜯어 챙길 정신도 없었다. 나는 가방과 신발주머니를 들고 휴지를 통째로 쥔 채 까치발로 화장실을 향해 걸었다.
문을 밀고 화장실 칸으로 들어가는 찰나, 뒤에서 가방이 세게 잡아당겨졌다.
뒤돌아보니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이 서 있었다.
“곰팡이, 표정이 왜 그래? 너 똥 마려?”
아이들은 낄낄거리며 내 앞을 단단히 막아섰다. 자존심이고 뭐고 이미 한계였다.
“제발.. 비켜줘. 나 진짜 급해. 몸이 너무 안 좋아.”
그럴수록 아이들은 더 즐거운 듯 나를 놀려댔다.
“곰팡이가 뭘 주워 먹어서 이 난리야?”
둘러싸인 채 밀리고 당겨지는 사이, 실랑이는 길어졌다.
그 순간, 내 안에서 짐승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아악! 비키라고! 내가 죽어야 끝나는 거야?
내가 여기서 죽어버려야 너네 속이 시원하겠냐고!”
나는 내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를 질렀다. 화장실 안이 울릴 만큼 숨이 찢어질 듯한 소리였다.
아이들은 흠칫 놀란 표정으로 물러섰지만 반성은 없었다.
“저거 미쳤네. 더럽다, 진짜.”
그 말만 남기고 아이들은 흩어졌다.
칸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몸에 남아 있던 것들을 전부 쏟아냈다. 눈물도.. 숨도 함께였다.
비닐봉지는 없었다, 젖어버린 속옷을 벗어 휴지로 간단히 감싸 신발주머니 가장 깊숙한 곳에 밀어 넣었다.
문제는 바지였다.
뒤에 배어 나온 흔적을 어떻게든 가려야 했다.
등에 맨 책가방을 엉덩이 쪽으로 끌어내려 겨우 가렸다.
끈은 양팔에 걸친 채였고, 가방은 몸에 어색하게 매달려 있었다.
그 자세로 울음을 삼킨 채 집까지 걸어왔다.
현관문 앞에 섰을 때 안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위로 향했다.
아파트 옥상이었다.
평소 고소공포증이 심했지만,
그날은 난간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여기서 떨어지면 이 지옥이 끝날까?
바람에 흔들리는 몸을 느끼며 수만 가지 생각이 밀려왔다.
"아토피가 있는 게 내 죄는 아니잖아."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억울함이 가슴을 치고 올라왔다.
터진 눈물 사이로 부모님의 얼굴과 동생들 얼굴이
차례로 스쳤다.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죽더라도 누가 나를 괴롭혔는지,
걔네가 한 짓은 전부 써놓고 죽어야 하는데…
유서라도 남기고 죽어야 하는데…
그만큼 버거웠고
그만큼 벼랑 끝에 서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건, 사실은 살고 싶었던 걸 수도 있고, 누군가 내 어깨를 잡아주길,
아니라고 말해주길 간절히 바랐던 걸 수도 있었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서 뭐 하니?”
윗집 아줌마였다.
옥상에 널린 이불을 거두러 온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바람 좀 쐬고 있었어요.”
아줌마는 이불을 들며 말했다.
“거기 위험하니까, 얼른 내려가.”
나는 난간에서 물러나 조용히 내려왔다.
다행히 집엔 엄마가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에서 바지와 속옷을 빨기 시작했다. 문을 잠그는 걸 깜빡한 채였다.
얼마쯤 지났을까.
엄마가 집에 들어왔나 보다.
그대로 화장실 문이 열렸다.
“너 뭐 해? 빨래를 왜 네가 해?”
“오다가 넘어져서 진흙이 다 묻었어. 내가 빨 수 있어.”
까만 치욕을 비누 거품으로 씻어내며 거짓말을 했다.
왜 그런 걸 혼자 하냐고 했지만 더 묻진 않았다.
동생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부루마블 게임을 하자고 졸라댔다.
속은 여전히 뒤틀렸지만 웃어 보였다.
“엄마, 오늘은 몸이 안 좋아. 학원 안 가면 안 돼?”
“그래, 오늘은 가지 말고 쉬어.”
그날 밤 고열에 시달리며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엄마는 내 손을 따주고 약을 챙겨 먹였다.
몸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고 다음 날도 상태는 같았다.
결국 엄마가 학교에 전화를 하고 병원에 데려갔다.
장염이었다.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았다.
아픈 건 분명 고통스러웠지만
조금만 덜 아프고,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영원히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학교를 빠졌다.
6년 내내 지켜왔던 나의 성실함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