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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희 May 23. 2021

내가 기억하는 편리한 세상


세상은 발전하기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분명 예전보다 불편한데 아무도 불편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난 솔직히 불편하다. 늙은이의 넋두리라고 하기에는 내가 아직 덜 익은 상태라 그냥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정도로 받아주면 좋겠다.


아이들이 어릴 때 의약분업이 시작되었다. 의사회와 약사회의 집단행동이 이어졌고 언론은 물론 온 나라가 난리법석이었다. 그 이전에는 아이들이 아프면 아침 8시경에 소아과에 가 대기했다가 의사의 진료를 받고 그곳에서 약을 받아 집에 돌아왔다. 나는 9시까지 출근하면 되니까 큰 부담이 없었다. 의약분업이 되자 거쳐야 할 단계가 한 단계 늘었다. 의사의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 가 약을 따로 받아야 했다. 아이를 둘러업고 약국까지 가야 하는 신체적 부담 외에도 여자 약사들이 많은 현실에서 그녀들도 아이들 등교를 도운 후 출근해야 하므로 9시에 문을 여는 약국 앞에 서서 대기하는 시간까지 더해져 내 삶의 질은 더욱 떨어졌지만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아이는 특별히 건강한 아이라면 모를까 1년에 10회 이상 소아과를 드나들어야 성장하는데 그때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이 벌어지니 아무리 멘털이 강해도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쓰레기 분리수거 역시 나의 삶을 피폐하게 했다. 이전에는 아파트의 경우 각 집에 쓰레기 투기함이 있어 모든 쓰레기를 그곳에 넣어 던지면 끝이었다. 분리수거로 환경이 얼마나 깨끗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인류가 쓰는 쓰레기로 지구는 계속 오염되고 있다는 얘기를 변함없이 여전히 듣고 있으니... 쓰레기 수거해 가는 업체나 직원들이 예전보다 일이 수월해졌다는 얘기도 들은 바 없는데 나는 오늘도 쓰레기 분리수거를 강박적으로 열심히 한다. 


또 예전에는 백화점 셔틀버스가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주변에는 변변한 마트가 없었다. 임대료가 비싼 곳이라 마트를 하기에는 수지가 맞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주말에 아파트 안으로 들어오는 백화점 셔틀버스를 타고 백화점에 가서 아이쇼핑을 한 다음 식품매장에 들러 시장을 보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고 훌륭한 스트레스 해소책이었다.  언제라도 쇼핑이 편했기에 물건도 소량으로 구입했다. 어느 순간 동네 마트를 보호하기 위해 백화점 셔틀이 금지되었고 주말이면 시장을 보기 위해 승용차를 운전해 초 대형 마트에 가서 대량으로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삶은 편리해졌다기보다 고달파졌다.


마트에 가서 계산을 할 때 예전에는 현금을 내거나 카드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절차가 간단했다. 지금은 계산에 걸리는 시간이 2배는 길어졌다. 무슨 회원 카드가 있는지 확인하고 그 카드를 지참하지 않은 경우 핸드폰 번호까지 입력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나이  든 할머니들이 그 번호를 단 번에 입력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뒤에 서서 몇 번씩 입력에 실패하는 사례를 지켜보고 있자면 인내심이 한계에 달할 때가 많다. 현금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슬리퍼 신고 나가 몇 개의 물건을 집어 집으로 편하게 돌아오던 동네 구멍가게는 이제 가능한 시대가 아니지만 모든 사람을 회원으로 하는 카드라면 그냥 가격을 내리고 계산절차를 간편하게 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1990년대 내가 편리한 생활을 누리던 그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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