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내가 사는 아파트 옆 주상복합에 있는 로비를 걷는다. 식후 산책 겸 운동이라는 명목으로... 파리 크로와 쌍과 투썸 플레이스, 옷가게 3개 , 와인가게 패밀리 레스토랑이 2개, 아이스크림, 화랑 3개, 소아가, 성형외과, 약국, 미장원, 안경점, 귀금속 가게 2개, 대형 한정식집 2개, PT를 하는 운동점 2개 등 제법 규모가 큰 상점가다. 한 바퀴 걷는데 약 5분 정도가 걸린다.
매일 아침 걸으면서 부딪치는 얼굴들이 낯익다. 코로나 사태로 헬스클럽을 갈 수 없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 이곳을 걷기 때문이다. PT운동점 앞을 지나면서 누군가 이른 아침 시간 운동을 하면서 끙끙대는 신음 소리를 듣는다. 저렇게 힘겹게 해야 운동이 되는 걸까? 자기 몸에 대한 지배권을 트레이너에게 맡기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자신의 몸으로 받아야 할 텐데... 그것이 건강한 몸이면 좋겠지만 통증과 부상일 수도 있을 텐데... 전문가를 믿고 지도를 받는 것이라는 시스템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이른 시간이라 조명이 아직 다 켜져 있지 않다. 상점 준비 시간이 달라 어느 곳은 불이 켜져 있고 어느 곳은 불 켜는 시간이 늦다. 일찍 여는 곳이 종업원 수도 많고 영업도 잘되는 곳이다. 빵집 젊은 종업원들이 함께 그날 판매할 빵과 재료들을 옮기고 진열하는 것을 보면서 나에게 저 일을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직업이란 돈을 받고 내 시간을 투입하는 것이므로 그 일이 단순하든 지루하든 무조건 해야 한다. 29년의 변호사 업무를 상반기는 절박함과 투지로 버텼고 하반기는 전의를 상실한 휴업 상태로 해 왔다. 어느 쪽이든 돈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건 아니다고 열심히 나를 설득한 건 돈벌이에 실패한 내 알량한 자존심이 아닌가 한다. 또한 직업에 대한 치열한 고민 없이 밀리듯이 살아왔고 직업정신이 투철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반성한다. 난 너무 생각이 많고 솔직하지 못했다.
레스토랑 두 곳은 "콜키지 프리"라는 문구를 크게 인쇄한 배너를 걸고 있다. 함께 걷는 남편이 레스토랑에서 밖에서 가지고 온 와인을 와인 잔에 따라주는 서비스를 해 주는 거라고 설명해 준다. 술이라면 와인 조차 마시지 않을 뿐 아니라 도무지 레스토랑에서 누굴 만나지도 않는 나의 일상에 "콜키지 프리"는 이해하기 힘든 외래어일 뿐이다. 이렇게 나는 세상에서 멀어지고 있다.
상가 안을 걷는 것은 실외가 춥고, 더울 때 , 비나 눈이 올 때 유용하다. 날씨가 좋을 때는 우면 산이나 법원 뒷산으로 간다. 가벼운 경사지만 그래도 등산이어서 산책보다는 운동에 가깝다. 우면산 내리막 길 대성사에서 보는 시내 경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 개의 경치 중 하나다. 나머지 하나는 설악산 울산 바위다. 황사나 미세먼지가 없고 비가 온 다음날 깨끗한 상태에서 보는 남산과 남산타워를 정점으로 펼쳐지는 전경은 40년을 살았지만 내 고향이 아니니까 정도 없다고 지금껏 생각해 온 서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라고, 이곳을 좋아하지 않느냐고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