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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희 May 20. 2021

나도 예쁘고 싶었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이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다. 뛰어난 외모 때문에 배우가 된 사람들 조차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다분히 상대적인 것이지만,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미모의 기준은 분명히 있다. 


뚜렷한 이목구비, 작은 얼굴 , 8등신에 가까운 전신 비율 등 평균적인 한국인은 그 기준을 채우기 어렵다. 이런 기준에 맞추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다수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흔한 것이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평균적인 한국인이다. 넓고 큰 얼굴과 당당한 어깨, 굵은 뼈대... 어릴 때부터 예쁘다는 얘기를 우리 엄마 외에 누구로부터도 들은 바 없다. 오히려 작은 얼굴과 쌍꺼풀 눈, 오뚝한 콧날을 가진 아버지와 아버지를 닮은 오빠와 남동생 때문에 항상 비교당하면서 자랐다. 심지어 어떤 친척은 내가 가장 예민한 나이인 사춘기 때 내가 보는 앞에서 오빠와 외모가 바뀌어야 하는데 아쉽다고까지 할 정도였다. 


기본 바탕이 이렇다면 꾸미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평생 꾸미기와는 담을 쌓고 산 친정 엄마 덕분에 그 방면도 빵점이다. 남들 다 있는 이모, 고모도 없고 언니도 없으니 보고 배울 곳도 마땅치 않았다. 


외모와 관련해서 잊을 수 없는 수치스럽지만 지금 와 생각하면 코믹한 기억들...


5살쯤으로 기억된다. 설날 엄마가 담임하고 있는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라 불렀다) 반 아이들이 우리 집에 세배를 하러 왔다.  모두들 예쁜 한복을 입고 왔는데, 특별히 여학생들은 색동저고리에 털이 달린 한복 조끼와 모자까지 쓰고 왔다. 나는 그들과 함께 노는 게 너무 행복했지만 나만 한복이 아니라는 게 불편했다. 엄마에게 한복을 입혀달라고 졸랐지만 한복이 없었던 모양이다. 엄마는 옷장 속에서 아주 작은 한복 치마를 꺼내 내게 입혀 주었다. 아마 돌 무렵에 산 한복 치마인 것 같은데 길이는 짧지만 그런대로 둘러 입힐 수는 있었다. 문제는 저고린데 작아서 입힐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가 그냥 앞이 막힌 스웨터를 입히고 예쁜 한복이라고 우겼는데 내가 어렸어도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염없이 울었었다. 


그 시절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1학년들이 학교에 가지고 가는 가방은 등에 메는 비닐 가방이었는데, 남자는 검은색 여자는 빨간색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알뜰한 우리 엄마는 2살 위 오빠가 쓰던 검은 가방을 내게 주고 3학년이 된 오빠에게는 파란색의 들고 다니는 가방을 사 주었다. 우리 반 짓궂은 남자 애가 내 가방을 보고 놀렸던 것 같은데 그 놀림이 아니더라도 학교에서 내내 다른 여자애들과 가방 색이 다르다는 것에 신경이 쓰여 불편했다.  2학년이 되어서는 여름 장마에 장화를 사러 갔는데 장마 통에 빨간 장화가 동이 나서 검은 장화를 살 수밖에 없었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왜 이러는지 한심했다. 


3학년 신체검사 시간.  그때는 학교 교실에서 신체검사를 했다. 주로 키와 체중, 시력검사 등을 했던 것 같은데 겉옷을 벗고 러닝과 팬티만 입혀 체중을 측정했다. 문제는 하필 그날 내가 오빠 팬티를 입고 학교에 왔다는 거였다. 꽃무늬 팬티를 입은 우리 반 여자애들 속에 파란색 줄무늬 남자 팬티를 입은 내 모습을 본 담임 선생님은 아차 싶었던 듯, 아이들에게 모두 눈을 감으라고 했다.  모든 아이들이 선생님 말을 듣지는 않는 게 만고불변의 진리다. 지금도 그때를 떠 올리면 수치스럽다. 아이들도 프라이버시가 엄연히 있는데 그 시절  우리가 얼마나 무지하게 살았는지..


성인이 된 후에도 미장원에 가서 서비스를 제대로 못 받는 등( 미용사들도 외모가 어느 정도 되는 손님 머리에 손을 대야 자신들의 솜씨가 더욱 빛이 나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웃어 넘기기 힘든 여러 경우가 있었지만 나는 더 이상 상처 받지 않았다. 그냥 어떤 이는 복이 많아 그러려니 하고 산다. 그런데 요가에 심취해서 세월을 보내고 보니 요즘은 내 바른 자세나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외모를 보고 놀라는 사람들이 생긴다. 인생은 살수록 여러 페이지가 펼쳐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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