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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희 May 20. 2021

삼풍백화점의 기억 속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자리에 세워진 오피스텔에 내 사무실이 있다. 북쪽으로 창이 나 있는데 창 건너편에는 재건축 고층 아파트가 입주를 코앞에 두고 있다. 28년 전 나는 이 재건 축 이전 아파트에 살았다. 나의 30대 추억이 어린 딸 둘과 함께 그곳에 있다. 그때의 놀이터 자리 그 언저리에 너무나 환상적으로 예쁜 새 놀이터가 생겼다. 손자를 당장 보내고 싶을 정도로 깨끗하고 큰 어린이집도 함께.


그때 나는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 그 속을 알기 힘든 가사도우미 아줌마의 인품에 내 소중한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맡긴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내 엄마가 초등학교 교사여서 어린 시절 낯선 어른 들에 맡겨져 자랐다. 나는 내 옆에 있는 어른들이 항상 나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고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눈치를 봐야 했다. 모르는 것이 더 좋았을 불편한 진실이라고 할까? 어차피 딸들을 위해 집에 있을 것도 아니었다. 나는 30대였고 5수 끝에 겨우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막 변호사 개업을 했던 것이다. 사건이 없어도 사무실을 지켜야 했고 마음은 항상 불안했다. 매 순간 내 직업의 포기를 요구하는 소리가 내 안에서 들렸지만 투자한 돈이 아까워 수익도 없는 가게를 계속하는 것처럼 특별한 열정 없이 어정쩡한 상태로 사무실을 지켰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는 순간 그 안에서 탈출하고 5분 거리의 집에 돌고 돌아 1시간이 넘어 먼지를 가득 뒤집어쓰고 도착하던 일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친정 엄마는 학교에서 퇴근하고 손녀와 함께 삼풍백화점에 매일 들러 데이트를 했다. 친정엄마와 큰 딸의 안부를 우선 확인해야 했다. 공중전화에는 이미 긴 줄이 서 있었다. 길가 부동산으로 그냥 들어가 전화를 사용하고 싶다고 했다. 부동산 사장은 내 몰골을 보고 바로 전화를 내주었다. 친정엄마가 다행히 이 날만 다른 일정이 있어서 백화점에 가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리고 1주일을 긴장으로 온몸이 굳어서인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때 사망했던 삼풍백화점 직원들 얼굴이 지금도 떠오른다. 자주 가던 웬디스 자매들...


그리고 나를 포함한 20여 명의 탈출을 도왔던 용감한 젊은 남자 직원들에게 감사한다.  우리가 탈출한 그곳은 붕괴한 곳의 건너편이어서 결과적으로 살 수 있었지만 당시 우리는 엄청난 굉음과 먼지 속에서 무너진 곳으로부터 피를 흘리며 뛰어 오는 사람들로부터 천정이 무너지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고 비상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여기서 죽는구나 하는 절박한 순간이었다. 이때 우리를 비상구로 안내하고 1층 비상구 창을 그곳에 있던 긴 의자를 들어 깨고 한 사람씩 밖으로 나가도록 양 옆에서 부축해 주었던 젊은 직원들의 용기와 직업정신을 칭찬하고 싶다. 


기억과 추억은 유행했던 음식, 음악과 함께 하지만 땅과 건물과도 함께 한다. 재건축 주기가 30년 정도 되니까 추억도 30년마다 바뀌는 건물과 함께 새로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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