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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희 May 21. 2021

세상의 모든 요가 스승들에게 감사하며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건 매일 하는 요가다. 2006년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어릴 때부터 건강해서 병원이라면 사랑니 빼러 치과에 가거나 출산하러 산부인과에 가는 것이 전부였고 입원 역시 교통사고로 한 번 입원했던 적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죽을 수도 있는 병이라고 하니 수술 후에도 그 공포감은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제까지의 삶이 모두 잘못되었다, 바꾸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병원에서는 즐겁게 살라고 했다. 내게 이 말은 정말 어려운 말이었다. 어떻게 즐겁게 사나? 하는 일을 그만두고 유흥에 빠져 살아야 하나, 아니면 스트레스를 피해 가족을 떠나 깊은 산속으로 출가를 해야 하나, 교과서 위주로 학교 공부에 충실하면서 명문대에 합격하였다는 모범생의 말처럼 정답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극소수만 실천할 수 있는 어려운 문제와 씨름해야 했다. 


사무실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서 놀아보기로 했는데 그 많은 시간을 감당할 길이 없었다. 나는 놀아본 적이 없어서 놀 줄을 몰랐다. 친구와 의미 없이 노닥거리는 것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친구라고 할 사람들이 모두 바쁜 사람들이라 놀아달라고 할 수도 없었고... 


고등학교 동창이 교회 성가대를 하는데 성악을 따로 배우고 싶어서 모 대학 평생교육원 성악교실을 간다고 했다. 기독교 계통 중학교에서 아침저녁으로 찬송가 부르던 실력으로 따라나섰다. 1주일에 1시간 하는 수업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빠지지 않고 1년간 참석했다. 하지만 모기만큼 소리가 약헀고 연습을 하지 않고 수업 시간에만 겨우 악보를 찾아서 시간 때우듯 끌려가는 수업이 재미있을 턱이 없었다. 수업 후 함께 하는 회원들과의 점심식사 때문에 그나마 지속할 수 있었다.


이 회원들과 교류하며 주부들도 발레를 배울 수 있다는 정보를 들었고 실제로 한 회원과 함께 압구정동으로 발레를, 답십리로는 성악 개인 레슨을 받으러 다니기도 했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한국 무용도 하는 등 나의 시간을 음악과 체육활동으로 빡빡하게 채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6개월쯤 이렇게 바쁘게 돌아가면서 나는 내가 활동의 대상을 바꾸었을 뿐 삶을 전혀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성악도 발레도 무용도 모두 처음에는 하고 싶어서 시작했지만 어느 틈에 어느 것도 차분히 즐기지 못하고 반드시 치러내야 하는 의무로 바꾸어 버리고 있음을... 나는 항상 무언가 틀을 만들고 그 틀에 맞추어 사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을...


이렇게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절감하면서 나의 의무(수업에 개근)를 이행하던 중 성악 레슨 선생님으로부터 성악은 호흡이 중요하고 요가를 하면 호흡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성악이 재미는 없었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고 당시 복용하던 약의 부작용으로 골반 뼈가 아팠던 터라 운동으로 요가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입구에 있는 요가원에 1주일에 5번 가는 것으로 호기 있게 등록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주당 2,3회 가는 생활을 6개월가량 했다. 몸이 막대기 같이 뻣뻣하고 식탐도 누구 못지않아 경도 비만인 상태여서 요가는 힘들고 재미없었다. 게다가 요가 동작이 느려 터져서 도대체 이게 무슨  운동효과가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10여 년의 우울한 고시생 생활 중 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책은 혼자 시장 돌아다니기였다. 아무도 나를 주시하지 않는 공간에서 사람들 속에 섞여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시장이 주는 생기를 느끼고 나면 끝이 날 것 같지 않던 고시 스트레스도 어느 정도 가라앉곤 했다. 이것이 사무실을 연 이후에는 시간적 제약 때문에 가까운 백화점 돌아다니기로 바뀌었다. 이렇게 백화점을 두세 시간 돌아다니고 나면 체력이 바닥 나 집에 와 쓰러져 몇 시간을 쉬어야 했다. 그런데 요가를 한 때문인지 백화점 순례 여행을 한 이후에도 이전처럼 피곤하지 않았다.  그래서 6개월 이후부터는 열 일 제쳐두고 주 요가 5일을 지키기 시작했다. 1년이 지난 다음에는 순서를 대충 외워서 혼자 매일 집에서 하기에 이르렀다. 


주부가 하는 가사는 육체노동으로 체력이 필요한 일이다. 체력이 바닥인데 해야 할 일이 눈 앞에 보이면 짜증만 날 뿐이다. 결국 일을 미루고 집안은 너저분해질 수밖에 없다. 요가는 이럴 때 바닥난 체력을 모아서 채워준다. 약 30분가량 누워서 이리저리 비틀다 보면 일어나 앉을 힘이 생기고 앉아서 다시 움직이면 서서할 만큼의 힘이 모인다. 이점이 여타의 운동과 다른 점이다. 내가 경험한 다른 운동들은 운동 후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상쾌한 기분이 들지만 힘은 소진되어 한참을 쉬어야 했다. 


요가로 체력이 좋아지는 걸 느끼면서 요가를 제대로 해보고 싶어 졌다. 3급 지도자 과정에 6개월간 다녔고 서점에 나와 있는 요가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유튜브로 외국 요가 영상을 보면서 따라 했다. 유튜브 초기에 국내 영상은 그다지 볼만한 것이 없었다. 지금은 국내 영상을 주로 볼 정도로 훌륭한 영상이 많다. 요즘 나는 유튜브 요가 스승들이 올려놓은 좋은 영상을 따라 매일 스승을 바꾸어 가며 요가를 한다. 좋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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