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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희 Jun 12. 2021

하미(할머니) 리스크

요 며칠 사이 허리 통증으로 우울했다. 간혹 감기 몸살을 앓긴 했어도 관절과 근육은 튼튼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이를 잊은 오해와 과신이었다. 큰 손자가 22킬로 작은 손녀가 11킬로로 둘 다 심히 우량해서 본격적으로 안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안 기어올라도 되는 아니 안 올라갔으면 좋을 의자나 높은 곳을 굳이 오르려고 낑낑대며 도와 달라는 표시를 할 때나 목욕을 시키려고 욕조에 넣을 때는 불가피하게 힘 과시를 해야 했다. 허리의 어느 부분이 고장 나는지 순간적으로 알아챌 만큼 통증이 컸다. 요가로 단련된 몸이라고 자만이 하늘로 올라갈 정도였는데 하미(할머니의 애칭인 듯 두 녀석이 날 그렇게 부른다) 리스크를 고려하지 못했다.  2,3일은 파스로 버티다가 단골 한의원( 10년 동안 3회에 걸쳐 약 3일씩 9일 치료받아 단골이라고 표현하면 그 한의원 원장이 섭섭하겠지만)에 가서 역시 3일 동안 침과 물리치료를 받고 왔다. 원장님께 내가 원래 튼튼한 사람이지만 손주들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설명했으나 튼튼한 허리라면 그 정도로 아프지 않다, 평소에 운동이 과했던 것이라는 슬픈 답변이 돌아왔다. 아직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통증이 사라지자 나 스스로 고치겠다는 오기 어린 오만이 다시 올라왔다. 


오늘 아침 협회 워크숍에 참석하느라 집을 비운 남편 덕분에 모처럼 나만의 시간이 생기자 평소에는 가지 않던 길로 운동 겸 산책을 나섰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 남쪽으로 30분 가면 우면산, 북쪽으로 30분 가면 한강이다. 한강은 자전거를 타는 남편과 차로 가 보았고 직선거리로 걸어가 본 적은 없다. 주로 우면산 쪽으로 걸어 다녔지만 오늘은 한강 쪽으로 가보고 싶었다. 가는 길에는 재건축 아파트들이 줄을 지어 있고 공개공지에 작은 공원들이 보였다. 걷다가 힘들면 잠깐 앉아 쉴 수 있는 공간들이다. 북쪽 끝 아파트촌 뒤쪽으로 올림픽대로를 따라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그 길을 따라 300미터 정도 가자 잠원 토끼굴로 연결되어 있었다. 한강 변에서 자전거 족들의 화려한 패션과 산책 나온 중년 부부들을 보면서 이렇게 여유로운 장면에 함께 출연하고 있는 내가 대견스러운 건 오늘 아침의 모험이 성공적으로 느껴져서다.


돌아오는 길은 반포 토끼굴로 나오니 아까 들어간 잠원 쪽 보다 거리가 더 짧았다. 다음번에는 이쪽으로 가기로 마음먹고 킴스 클럽을 지나는데 시장을 본 아줌마들이 보인다. 오전 8시를 조금 지났을 뿐인데 의아해서 둘러보니 8시부터 개장한다고 되어 있다.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는 참새가 되어 들어가 보니 킴스 클럽 안은 성업 중이다. 아침 산책 겸 시장보기로 딱 적합한 곳을 찾아낸 기분이다. 역시 도전은 할 만한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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