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 대단해?’ 그 말에도 끝까지 밀어붙였다
“웃기던 사람이 페트병 하나로 세상을 바꿀 줄이야”
장동민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웃긴 사람’이라는 인상이 먼저 떠오를지도 모른다. 날카로운 입담, 독설 개그, 그리고 전략 예능에서 보여준 브레인 플레이.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불러야 할 것 같다. ‘페트병을 바꾼 사람’.
그가 개발한 ‘세로형 원터치 라벨 분리 기술’이 본격 상용화된다는 소식은, 기술력 그 자체보다도 그 뒤에 깔린 이야기가 더 인상 깊다. 뚜껑을 돌리면 라벨이 자동으로 함께 분리되는 이 기술은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인다. “그래, 왜 지금까지 아무도 이걸 안 했지?”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 단순함 뒤에는 너무나 많은 질문과 무시, 그리고 회의적인 시선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 그는 꽤 오래 전부터 이 기술을 고안하고 실현해왔다.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작은 불편함에서였다. “밖에서 음료 마시고 버릴 때, 라벨 안 떼잖아요.” 맞다. 그 귀찮음. 환경을 생각해야지 하면서도 바쁠 때, 귀찮을 때, 라벨은 그냥 붙은 채 버려진다. 그게 현실이다.
그런 현실에서 나온 아이디어.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단다. “요즘은 투명 페트병도 많은데 굳이 이걸?” “라벨을 떼는 게 뭐가 어렵다고?” 기술 자체보다, 그런 태도가 더 무서운 법이다. '천재'보다 어려운 건, 남들이 보기엔 시시해 보일 수 있는 그 생각 하나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일이다.
게다가 페트병의 라벨은 단순한 플라스틱 조각이 아니다. 기업에게는 브랜드의 얼굴이다. 당연히 쉽게 포기할 수 없다. 환경을 위해 라벨을 없애자고 하면, 듣는 입장에서 “그러면 우리 로고는 어디다 붙이냐”는 말이 먼저 나올 수밖에. 그걸 단순히 ‘환경 vs 이익’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 실제 산업과 소비의 접점을 고민한 흔적이 장동민의 발명에는 있다.
그는 이 기술로 환경부 주최 환경창업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광동제약과 삼양패키징 같은 기업들과 손잡고 진짜로 제품을 만들어낸다. ‘푸른 하늘’이라는 스타트업을 직접 세워 실현 가능성을 확보한 것도 그렇다. 그냥 한때 스쳐 지나간 발명가가 아니라, 기술과 사업, 환경과 소비자 사이의 접점을 현실로 바꾸는 사람으로 변신한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천재성보다는 집요함을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롱과 무시 속에서도 자기 확신을 잃지 않는 용기를 본다. 어쩌면 진짜 천재란, 남들이 “그게 뭐 대단하냐”고 말할 때조차 ‘나는 이게 대단하다고 믿는다’는 믿음을 놓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그 믿음으로 세상을 조금 더 나은 쪽으로 밀어내는 사람.
장동민의 페트병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술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라는 걸 다시 느낀다. 웃기던 사람이 페트병 하나로 세상을 바꾸고 있다. 그게 기적처럼 느껴지는 건,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천재를 ‘거창한 무엇’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시대에 진짜 필요한 건, 거창한 생각보다 작고 불편한 현실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끈기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끈기를 가진 누군가가, 지금 페트병을 돌려 라벨을 빼내고 있다.
기술은 언제나 그랬다. 별것 아닌 것처럼 시작해, 결국 모두를 바꿔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