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차 대신 25년 지켜낸 소형차, 검소와 나눔의 상징
서울대교구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는 지난 6월 27일 선종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은 건 화려한 업적보다도 손때 묻은 낡은 자동차 한 대였다.
보좌주교에게는 보통 관용차가 주어진다. 하지만 그는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1980년대 후반 출시된 기아 프라이드를 직접 몰고 교구 곳곳을 다녔다.
문제는 단종된 지 오래된 차량이었다는 점이다. 정비사들은 필요한 부품을 구하기 위해 전국의 정비소와 폐차장을 헤매야 했다. 차량 가격보다 더 큰 수리비가 나왔어도 그는 새 차로 갈아타지 않았다.
차 안은 더욱 소박했다. 조수석에 놓인 묵주 외에는 꾸밈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자동차는 자기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신자들과 함께 걷는 길을 이어주는 도구였다.
오늘날 자동차는 부와 지위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대형 SUV와 전기차가 시대의 유행이지만, 유 주교의 프라이드는 그런 흐름에 맞서 존재했다. 화려한 겉모습보다 삶의 방향과 관계를 우선하는 그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낡은 차를 지켜낸 일은 단순한 검소함이 아니었다. 그는 ‘끝까지 쓰는 것’ 속에서 나눔과 절제를 실천했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작은 배려이자 자신을 다스리는 방식이었다.
세상은 빠름과 새로움을 좇지만, 그의 선택은 오래된 차 한 대로도 충분히 삶의 철학을 드러낼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래서 그 프라이드는 단순한 차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이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건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