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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르기니 보다 귀한 유경촌 주교의 낡은 애마

관용차 대신 25년 지켜낸 소형차, 검소와 나눔의 상징

by Gun

서울대교구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는 지난 6월 27일 선종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은 건 화려한 업적보다도 손때 묻은 낡은 자동차 한 대였다.


보좌주교에게는 보통 관용차가 주어진다. 하지만 그는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1980년대 후반 출시된 기아 프라이드를 직접 몰고 교구 곳곳을 다녔다.

12300_18634_5157.png 프라이드 [사진 = 기아자동차]


문제는 단종된 지 오래된 차량이었다는 점이다. 정비사들은 필요한 부품을 구하기 위해 전국의 정비소와 폐차장을 헤매야 했다. 차량 가격보다 더 큰 수리비가 나왔어도 그는 새 차로 갈아타지 않았다.


차 안은 더욱 소박했다. 조수석에 놓인 묵주 외에는 꾸밈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자동차는 자기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신자들과 함께 걷는 길을 이어주는 도구였다.

12300_18637_5159.png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의 프라이드 [사진 = 유튜브 'CPBC뉴스']


오늘날 자동차는 부와 지위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대형 SUV와 전기차가 시대의 유행이지만, 유 주교의 프라이드는 그런 흐름에 맞서 존재했다. 화려한 겉모습보다 삶의 방향과 관계를 우선하는 그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12300_18639_521.png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의 프라이드 [사진 = 유튜브 'CPBC뉴스']


낡은 차를 지켜낸 일은 단순한 검소함이 아니었다. 그는 ‘끝까지 쓰는 것’ 속에서 나눔과 절제를 실천했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작은 배려이자 자신을 다스리는 방식이었다.

12300_18635_5158.png 프라이드 EV 컨셉카 [사진 = 기아자동차]


세상은 빠름과 새로움을 좇지만, 그의 선택은 오래된 차 한 대로도 충분히 삶의 철학을 드러낼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래서 그 프라이드는 단순한 차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이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건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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