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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와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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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심리스 Jul 26. 2021

육아엔 병가가 없다.(2)

나와 아기

내 몸이 아프니 아이를 볼 수가 없다. 주말 동안 누워서 허리를 쉬게 했다. 나는 안 참혹해지기 위해 성급하게 쫓기는 맘으로 동네 필라테스를 끊었다. 필라테스를 해서 내 노년이 참혹해지는 걸 막아볼 생각이다.


침대를 못 벗어나는 나 때문에 침대가 놀이터가 되었다.
애교로 허리 아픔을 2초간 잊게 해주는 딸랑구

며칠 간 침대와 내 몸은 하나가 되었다. 허리가 아파 핑핑 누워있는 내게 딸아이가 다가와 온갖 애교를 피운다. ‘엄마 뽀뽀’ 하면 입을 벌리고 내 볼에 입을 맞춘다. 내가 아프니 아이에게 기울일 수 있는 주의력이 흐릿해진다. 아이를 더 잘 돌보기 위해서라도 내 허리가 나았으면 좋겠다.

아니다! 그보다 내가 안 괴롭게 일단은 허리가 나았으면.


척추와 엉덩이 뼈가 그동안 혹사시켜서 미안하다는 나의 사과를 받아주길 간절히 빌어봤지만 한방 치료도 기도도 전부 먹히질 않았다.




다음으로는 정형외과에 갔다.

엑스레이를 찍고 허리를 보고 의사가 말했다.


"척추 측만이 있어요. 허리가 많이 경직되어 아픈겁니다. 당분간 무거운 거 들지마시고 수그리지마시고 앉아있지마시고 누워있으세요. 계속 드러누우세요."


"네? 저 애가 있는데 그럼 어떡하죠?"

나는 모르는 사람에게 울상을 지으며 나는 그럼 어떡하냐고 징징댔다... 진상...


"몇개월이요?"


"13개월이요"

"모유수유도 하고 있어요."


"하...쉽지않겠네요. "

처음보는 의사선생님도 어쩔수 없다는 듯 안쓰러움과 위로의 눈빛을 보내줬다. 울상이 된 나는 걱정에 잠겼다.


무거운 거= 우리아가, 그걸 나는 매일 들어야하고 몇번이나 허리와 다리를 수그려서 놀아야한다. 애가 밥을 먹을 때는 그 앞에 앉아있어야 하고 치대면 온몸으로 치댐을 당해줘야한다.


내가 누워있는게 가능한 시간은 고작 육퇴후 몇시간이 전부...일상의 모든 패턴을 바꿔야하는 일은 불가능이기에 내가 낫는게 쉽지않겠구나 싶었다.


어린이집을 보내기 시작했지만 코로나로 가정보육이 권유되었고 나의 허리는 그래서 더욱 쉬지못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나의 사정이나 일정을 봐주지않는 극한 노동의 결정체라는 걸 또 사무치게 깨달았다.

친정에서 도움을 받아 조금 봐주더라도 내가 혼자 아이를 돌볼 상황을 아예 회피할 수는 없었다.




특히 문제가 되는건 아기가 똥을 쌌을때였다. 똥냄새를 개코같이 잘 맡는 나는 그걸 맡을 때마다 좌절스러웠다.


똥냄새가 나면 아이를 눕히고 밑을 물티슈로 1차로 닦는다. 문제는 물티슈로 닦은 뒤에 2차로 아이를 안고 일어나 세면대로 데려간 뒤 거기에 아이를 들어올리고 똥묻은 귀여운 궁뎅이를 물로 닦아야한다. 욕조에 한 발을 지지한 채 아이의 무게를 견뎌보긴 하지만 점차 무거워지는 아이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똥을 닦는 2차의 과정이 허리질환자에게는 정말 고역이다...



으악 으악 소리가 절로 나오는 채로 아이를 세면대로 올리고 똥을 닦으니 아이는 영문을 모른채 빙긋이 웃는다. 그 천진함도 봐줄 겨를이 없이 너무도 아픈 나의 허리... 아. 그래도 병가나 연가는 쓸 수없다.


결국 낫지않는 허리를 안고 mri도 찍고 피검사도하고 xray도 다시 찍었다.


진료를 보시는 의사샘 왈,

“아기랑 생활하면 바닥에 수그리고 많이 앉으시죠? 그게 정~ 말 허리에 안 좋아요. 앉지 마시고 바닥생활 하지 마세요.”


나아보기위한 나의 몸부림들. 내 척추 기록이 담긴 cd와 복대컬렉션


하… 바닥생활도 안되는 거였다. 그림책 읽기, 장난감으로 놀기, 과일 먹이기, 기저귀 갈기 등등 바닥생활이 내 생활의 7할은 차지하는데. 아이와의 생활은 전부 허리에는 안좋은 행동의 연속이구나.


새로운 약물 치료 등등보다 휴식이 우선한다는 말에 맥이 빠진다.


“드라마틱한 변화로 나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전 어차피 못 쉬어요!!!”


이 난관을 어찌 헤쳐나갈지 고민이던 찰나, 너무 아파 눈물이 죽죽나고 서러움에 신경질이 날대로 나는데 나의 구세주 엄마가 불쑥 한마디 던진다.


“그럼 이틀간 단유할겸, 엄마가 봐줄게. 집에서 쉬어.”


아 감격적인 순간...

결국 나를 구출하는 건 엄마밖에 없는 것이다.



복싱을 하다가 엄청 얻어터졌는데 이제 못 버틸 만큼 맞고 맞고 또 맞았는데 겨우 버티다가 겨우겨우 감독이 백기를 들어준 느낌이다. 엄청 얻어터진 나를 흰 수건을 던져 구출해준 친정 엄마…


‘친정은 사랑입니다.’를 넘어 ‘친정느님은 나의 구세주입니다.’를 절로 외치고 싶었다.


엄마가 나의 병가를 허해주시고 ...그래서 나는 아기를 맡기고 우리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누웠는데 몸은 편하고 마음은 불편하다. 아기랑 부대끼면 몸은 불편하고 마음은 편했는데 참으로 새롭다.


카톡으로 지금 딸이 잘 놀고 있다는 연락이 딩동 왔다.

귀엽게 잘 놀고 있는 딸
친정에서 이모가 보내준 사진들.. 사랑둥이가 따로 없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참으로 와닿는다. 아무리 독립적인 사람이라도, 신세지는 걸 싫어하고 민폐끼치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육아에 있어서는 그 성향을 고집하기 참 어렵다.


혼자서는 육아의 이 다양한 변수의 홍수를 성공적으로 방어하기 힘들다. 봇물터지듯 몰려드는 육아의 변수 공격을 혼자 막는 건 옛날 어디선가 들었던 네덜란드 소년이 댐에 난 구멍을 한 팔로 막고 버티는 것이랑 비슷하다.  어쩔 수 없이 또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 육아다.

(물론, 나는 나약한 엄마이며 자기합리화와 정신승리에 일가견이 있다.)


엄마가 결재해주신 나의 병가이자 연가이자 연차를 치료와 휴식, 힐링으로 온전히 쓸 수 있길 빌며.


아픈 몸이 얼른 눈치 빠르게 나아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의 엄마와, 엄마없이 시간을 보낼 귀여운 딸에게 이번에도 신세를 지며 법적으로 보장되는 병가나 연가가 육아에도 존재하길 빌어본다!


못 쓴다면 ..수당으로 바꾸기라도 하면 좋지 않을까 상상도 해본다. 엄마 복지제도가 가정마다 법률로 정해져 있으면 참으로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일단, 오늘은 마음 불편한 자유다!!!

맘껏 누리자 cheers!!! 하며 맥주캔을 잡았다가 양심상 슬며시 내려놓았다. 내가 너무 즐거우면 양심상 엄마와 동생과 아기한테 미안한 것이므로.

그리고 또 웃으며 누워 폰을 열어 아이 사진을 돌려본다.


귀여워서 웃음이 나지만 아직까지는 보고 싶지는 않다.. 자유가 더 좋긴 좋다.


이 자유가 나의 허리를 구출하길 빌며,

그래서 그간 못썼던 글들을 맘껏 쓸 수 있길.

이전의 당연했던 일상들이 너무나도 그리워진 내 아픈 몸뚱이가 제 자리를 찾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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