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긋지 않으면 관계는 무너진다

다시 돌아가지 않기 위한 복기③

by 성장노트

시어머니의 나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을 때였다. 그날도 영문도 모른 채 "가서 시어머니 좀 달래라"는 시아버지의 오더를 수행하기 위해,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남편과 시댁으로 향했었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부터 나는 비난을 받아내는 쓰레기통이 되어 있었다. “너희 연애결혼 했잖아. 그럼 결혼했으면 주말에는 가족들이랑 시간을 보내야지. 가족이 되려는 노력을 해야지. 너는 꼭 마지못해 하는 사람처럼 이름 있는 날만 챙기더라?”


시어머니는 나에게 집안을 둘러보게 했다.

"이 집 어디를 봐도 너는 없어."


남편의 본가에는 벽 한 켠에 남편과 시누이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사진들이 액자로 빼곡히 채워져있다. 그 명예의 전당에는 남편의 어린시절을 똑 닮은 첫째 아이의 백일잔치 사진도 있었다.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내 사진만 없었다. 우리의 결혼식 사진도 없었다. 이것조차 내가 바로 잡아야 하는 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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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은 반박할 가치도 없는 문장이었다. “어머님이 저를 그렇게 생각하시나 보네요.” 한마디면 충분했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이미 어두운 터널 깊숙히 들어가있는 상태였다. 그래서였는지, 그 이후로 나는 더 노력 했다. 더 자주 찾아갔고, 더 많이 맞췄다. 적어도 2주에 한 번씩은 주말을 함께 보냈고, 식사는 외식으로 모셨다. 서로 입맛이 달라 뷔페를 찾아야 했고, 식사 후에는 데이트 코스까지 준비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자, 큰 소란 없이 시간이 흘렀다.


겉으로는 조용했다. 문제는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의 노력은 고마움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 되었고, 돌아온 건 “이제 좀 말귀를 알아듣네”라는 반응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애써 유지하고 있던 것은 관계가 아니라 이미 균형이 무너진 상태였다는 것을. 나는 계속해서 터지는 낙하산을 붙잡고 있었다. 터질 때마다 기우고, 또 터지면 다시 기우면서 언젠가는 안정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번아웃으로 내가 손을 놓는 순간, 그 낙하산은 펑 하고 그대로 사라졌다.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의 모습도, 서로를 다정하고 편안하게 바라보는 부부의 눈빛도, 세상 어디에서도 당당하던 나 자신도 더이상 없었다. 남은 것은 서로를 안쓰러워하며 눈치를 보는 부부, 그리고 ‘부모님’이라는 단어를 금기어처럼 조심스럽게 꺼내야만 하는 삶이었다.


선을 긋지 않으면 관계는 무너진다. 이 말은 관계를 끊으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관계를 끊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다. 시부모님은 늘 더 자주 보고, 더 가까이 지내고, 더 살갑게 굴어야 가족이라고 말했다. 부딪치고 깨지면서 배우는 거라고 했다. 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적어도 건강한 관계라면 말이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에서는 다르다. 가까워질수록 관계가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계가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다른 방법을 배워야 했다. 끊을 수 없다면 버틸 수 있는 거리를 찾아야 한다. 너무 가까우면 부딪치고, 너무 멀어지면 끊어진다. 결국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은 적당한 거리였다. 서로를 밀어내지도, 집어삼키지도 않는 최소한의 거리.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도 그 지점이 필요했다.




[안전 거리 유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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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을 방문하는 일은 더 이상 의무가 아니다. 예전에는 시부모님이 원하는 단란한 가족의 분위기 연출을 위해 두 분이 모두 만족할 만큼 찾아가서 머물렀다. 그 시간동안은 배가 다 젖도록 부엌에서 아무 말 없이, 씽크대와 벽을 마주보고 서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방문하지 않는 것이 디폴트 값이 되었다. 우리 가족은 우리 가족의 공간에 머무르고 우리만의 일상을 보낸다. 지금쯤 기다리고 계시지 않을까 눈치볼 일이 아니다.


연락 역시 마찬가지다. 며느리라는 이유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일 때 선택하는 일이 되었다. 연락이 적다고 지적받으면 빈도를 늘리고, 말투가 어두워 마지못해 하는 것 같다 하시면 운동 후에 텐션을 끌어올려 '솔'톤을 찾아 전화를 드리곤 했다. 하지만 연락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다. 마음이 움직일 때 서로 할 일이다.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억지로 이어가는 관계는 결국 오래 가지 못한다.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요구를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예전에는 집안의 일이라는 말 하나로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며느리의 몫이 되었다. 시누이 가족의 생일, 시조카의 행사, 각종 이벤트들까지 하나라도 놓치면 나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건 시어머니의 기준일 뿐이고, 그 기준을 따를지 말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그건 어머님 생각이시고, 제 생각은 다릅니다.” 그 한 문장을 마음속에 두고 나니,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설득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선을 긋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런 나의 행동을 두고 그동안의 갈등과 분노의 명분으로 삼으며 "너의 본모습을 이제야 드러내는구나." "너가 우리 집에 시집을 왔으면 우리 규정을 따르는 것이 도리지!" 한다면 짧고 차분하게 선을 그어준다.

"어머니, 저는 시집 간 게 아니라 결혼했습니다. 저희는 각자 원가족에서 독립한 성인이고, 저희 기준은 저희가 정합니다." 하고 그 선을 다시 한 번 명확하게 해준다.




예전에는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 자신을 줄였다. 하지만 지금은 나를 지키면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선을 긋는다는 건 관계를 포기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었다.


나는 이제 안다. 관계를 무너뜨리는 건 거리가 아니라, 경계가 없는 상태라는 것을.




내가 더 이상 손을 뻗지 않자 어느새 5년의 단절이 시작되었다.

그 시간은 우리 부부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것을 가르쳐준 시간이기도 했다.


그 시간을 지나오며 나는 배웠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디까지를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그 5년은, 나와 그들을 완전히 다른 관계로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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