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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육체 노동자로 산다는 것

오늘 마주한 사회 문제

by 장윤서

겨울 방학, 유동인구가 적은 틈을 타 학교는 정문에서부터 시각 장애인용 점자 보도블록을 설치하는 공사를 진행시키고 있었다. 방학에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계절학기를 신청한 나는 등하교마다 진행 중인 공사 현장을 마주하였고 공사 노동자는 어김없이 연세 지긋한 노인 분들이었다.


특히 오늘 마주한 광경은 마무리 단계로, 원래 있던 석재와 새로 놓은 블록 간의 틈을 메우는 작업이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묽은 진흙 질감의 점토로 틈을 채우면, 할머니 한 분이 깔끔하게 보이도록 주변부를 손걸레로 닦고 평평하게 만들고 계셨다. 예상컨대 노부부가 함께 일하는 것 같았다.


오늘 낮 기온은 3도, 근래에 영하 10도까지 내려갔던 것 치고는 비교적 온화한 날씨, 그러나 미세먼지 나쁨이라는 변수가 있었고 특히 손걸레를 이용하여 차가운 돌바닥을 닦는 일을 하기에는 역시나 추운 날씨였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바닥을 손으로 닦는다는 것은 쭈그려 앉아 오리걸음으로 이동하며 허리를 굽혀서 차가운 걸레를 손에 들고 일한다는 것이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 모든 직업은 필요에 의해 생겨난 일이고 그걸로 먹고 살 수 있다면, 본인이 만족한다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 주장은 사람들에게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에만 합당한 주장이다.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나 남들과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 졸업 후 공사 현장에서 일할래요, 청소 노동자로 살래요 한다면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이다. 한국처럼 노인 빈곤율이 높은 사회에서 은퇴 후 고정적인 수입이 사라지자 특별한 기술도 직함도 없는 노인들이 한겨울에 공사장으로 뛰어들고, 이미 성하지 않은 관절에 무리를 주면서 쭈그려 청소를 하는 현상은 정상적인 직업 선택의 결과라고 볼 수 없다.


오늘 그들의 작업을 목격하면서 든 생각과 감정은, 힘든 일을 대신해주어 고맙다거나 연세도 있으신 분들이 고생하고 계셔 불쌍하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그들을 이곳으로 오게 만들었나 하는 의문과 일말의 분노였다.


첫 번째 원인으로, 한국의 노인 빈곤율을 지적할 수 있다. 2024년 통계청의 고령자통계에 의하면 ‘22년 66세 이상 은퇴연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39.7%’이다. 상대적 빈곤율이란 중위소득의 50% 이하 소득을 가진 인구비율로 빈곤 위험에 처한 인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OECD 회원국 중 2위에 해당하는 높은 수치이다.


상대적빈곤율.jpg 출처: 2024 고령자통계, 통계청, 2024.09.26
OECD 빈곤율1.jpg 자료: OECD, 「Social and Welfare Statistics」, 출처: 2024 고령자통계, 통계청, 2024.09.26


OECD 빈곤율2.jpg 자료: OECD, 「Social and Welfare Statistics」, 출처: 2024 고령자통계, 통계청, 2024.09.26


그렇다면 왜 한국의 노인들은 빈곤할까. 서구세계와 비교하여 한국의 연금 제도 도입이 늦어진 것이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1988년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국민연금을 수급하려면 최소 10년 이상 납부해야 했기에 적어도 2000년도 직전까지 일을 하고 있어야 해당이 되었다. 계산을 해보면 65세까지 일한다고 가정했을 때 2000년에 65세가 되는 1935년생 이후 출생자들, 2025년 현재 기준으로 90세 이하만 국민연금 제도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90세라고 하면, 현재 생존하고 있는 대부분의 노인이 해당할 것 같지만, 많은 수의 농촌 지역 인구, 자영업자 및 비정규직은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국민연금 가입률은 90년대 초반 20~30%, 95년 이후 50% 수준으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남성에 비해 경제활동이 적었던 여성의 경우, 연금 수급률과 금액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2022년 기준, 65세 이상 남성 연금 수급률은 95.1%인 데에 반하여 여성 연금 수급률은 86.8%이고 수급 금액은 한 달에 남성 84만 2천 원, 여성 48만 6천 원으로 여성 노인의 경우 경제적 빈곤에 더욱 취약한 위치에 놓여있다.


연금 수급률 및 성별 연금 수급금액.jpg 출처: 2024 고령자통계, 통계청, 2024.09.26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을 가입했다 하더라도 초기의 가입자들은 노동 생애의 후반부에서야 연금을 납부하였고 당시 임금 수준은 매우 낮았기 때문에 가입 기간과 납부 금액에 따라 결정되는 국민연금 수령액은 적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의 노인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국민연금에 기대지 못하고 노동을 선택한다.


통계청의 같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65세 이상 고령자의 고용률은 37.3%로 36.2%였던 전년 대비 1.1%p 상승'하였다. 2024년 취업을 희망하는 이유로 일하는 즐거움이라는 응답도 37.7%로 높았지만 생활비에 보태고자 하기 위함이라는 답변이 52%로 가장 많았다.


고령자 고용 현황.jpg 출처: 2024 고령자통계, 통계청, 2024.09.26
취업을 원하는 이유.jpg 출처: 2024 고령자통계, 통계청, 2024.09.26



두 번째로, 한겨울에 노인들을 공사판에 내몬 것은 노인 빈곤에 이어 육체노동의 가치를 얕잡아 보는 사회이다. 한국에서 성공이란, 소위 명문대라고 하는 대학을 나와 안정적인 대기업에 사무직으로 취직하여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본인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공부시켜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고, 더울 때 시원하게 일하며 추울 때 따뜻하게 일하는 직장에 보내는 것이다. 성공에 대한 이러한 믿음과 무한한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육체 노동자는 ‘머리가 나빠 힘들게 몸을 쓰는 하등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만약 여행에서 보고 느낀 다른 여러 국가들처럼 육체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쁘지 않다면, 그들을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존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여긴다면, 그들의 보수는 올라갈 것이고 노동 여건은 개선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힘이 팔팔한 젊은이들이 육체노동 시장에 저절로 유입될 것이다. 기피하는 일을 노년층, 외국인 근로자 등의 사회적 소수자에게 떠넘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기피하는 요인을 제거하고 노동력을 유입하는 요소를 추가해야 한다.



참고자료


2024 고령자통계, 통계청, 2024.09.26,

https://kostat.go.kr/board.es?mid=a10301010000&bid=10820&act=view&list_no=432917

韓, 내년 초고령사회 진입하는데… 은퇴 노인 10명 중 4명 '빈곤', 복지타임스, 2024.09.26,

https://www.bokji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38365

심윤지, 제일 많이 일하고 가장 가난한 ‘한국 노인’, 경향신문, 2025.01.13,

https://www.khan.co.kr/article/2025011307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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