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사람들에게 북유럽 소수 민족 축제를 안내하는 한국인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3일 정도 여행을 하고 워크어웨이 호스트 지미가 보내 준 장소인 알브스빈 (Alvsbyn)으로 이동했다. 밤 10시에 스톡홀름 센트럴 기차역에서 출발하여 다음 날 오전 10시 반에 알브스빈에 도착하는 장장 12시간 반이 걸리는 긴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설렜다.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언제 스웨덴 북쪽을 가보나 하는 생각에 잠을 설쳤다. 아니, 날이 밝아 잠을 설쳤던가? 7월의 스웨덴은 스톡홀름에서 밤 9시 반쯤 멋진 노을을 감상했을 정도로 해가 늦게 지고, 해가 진 이후에도 완전히 깜깜해지지 않는다. 약간의 여명이 남아있는 느낌이랄까? 새벽 4시에 눈이 떠져 밖을 바라보니 이미 밝았던 하늘에 해가 뜨고 있었다.
예정된 시간대로 알브스빈역에 도착해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지미가 보낸 자르코가 왔다. 알브스빈에서 축제 현장까지는 차로 약 30분 거리, 축제가 열리는 스토르포센(Storforsen) 폭포까지 가는 대중교통이 없기 때문에 자르코가 차로 데리러 온 것이다. 자르코 역시 축제에서 참여하는 봉사자였다. 60세 정도 되었을까 본인을 유고슬라비아 출신이라고 소개하는 이 남성과 특별한 우정을 쌓게 될 줄은 이때만 해도 알지 못했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지는 않았지만 세르비아어와 스웨덴어를 능숙하게 하는 자르코에게 차로 이동하며 스웨덴어로 자기소개하는 법을 배웠다.
축제가 열리는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스토르포센 폭포가 아주 잘 보이는 호텔에서 운영하는 오두막 형식의 캐빈에서 축제가 열리는 주말을 포함한 4일을 머물렀다.
축제에 공연을 하는 아티스트와 자원봉사자끼리 방의 개수에 따라 1명에서 5명까지 한 캐빈을 공유하고 캐빈끼리도 붙어있어 마치 작은 마을을 이루는 것 같았다.
작은 마을에 산다는 건 이런 기분이겠구나 느껴보았다. 모두 서로의 얼굴을 알고, 매일 저녁 시 낭송이든, 바비큐이든, 사우나든 함께 하는 활동이 있다는 것, 그게 참 좋았다.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인 데에도, 어렸을 때는 옆집에 놀러 가기도 하고 가족끼리 저녁도 같이 먹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지금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른다.
신경 쓸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편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일상에서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있는 이웃이 있다면, 지역사회에 주민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문화 활동도 하고, 공동식당에서 당번을 정해 식사 준비를 하고, 아이 역시 나눔 돌봄이 된다면 조금 더 삶의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스카이데(Skajdde) 축제는 금, 토, 일 주말 동안 진행되는 연례행사로 인비저블 피플(Invisible People)이라는 댄스 제작사가 주관하는 사미 문화 축제이다. 사미란 스웨덴과 노르웨이, 핀란드, 러시아에서도 북부에 걸쳐 사는 사는 소수 민족을 지칭한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북유럽 국가들은 남부에서 왕조를 세워 왕국에서 국가로 변해왔다. 쉽게 스칸디나비아어를 사용하는 스칸디나비아인들의 왕조였다고 이해하면 된다. (핀란드와 러시아는 스칸디나비아 국가가 아니지만 이야기가 길어지니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설명하겠다.)
18세기 이전만 해도 사미와 스킨디나비아 왕국 간의 교류가 없다시피 했는데 19세기부터 국가 차원에서 사미 사람들이 살던 지역에 통치권을 주장하고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원시적인 것으로 취급하여 억압하고 주류 문화에 동화시키고자 하는 정책을 펼쳤다. 스카이데 축제에서 사미 사람들을 여럿 만났는데 실제로 그들의 조부모님은 학교에서 사미 언어 사용을 금지당하고 문화가 억압되는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사미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가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취급을 당했다는 점에서 제작자는 ‘인비저플 피플(Invisible People)’ 즉,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을 달고 이제는 사미 문화를 ‘보이는 문화’로 만들고자 사미인들의 춤과 노래, 그림을 대중에게 소개한다.
나를 호스팅 해준 지미의 여자친구인 리브가 제작사 대표를 맡고 있고 리브 역시 사미 사람이다. 후에 축제가 끝나고 인비저블 피플이 시작된 곳이자 리브와 지미가 살고 있는 요크목(Jokkmokk)에서 사미 예술인들을 위한 공연장 리모델링 봉사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다른 봉사자들은 축제날보다 며칠 일찍 도착하여 무대 세팅과 관람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축제 당일인 금요일에 도착하여 이 축제가 어떤 축제이고 어떤 임무들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바로 현장에 투입되었다. 이 날 담당한 업무는 주차장에서 관람객에게 주차요금을 걷는 일이었다.
관람객은 대부분 스웨덴과 핀란드 사람들로, 간혹 가다가 스웨덴어를 하는 봉사자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북유럽 국가 사람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영어를 잘하기 때문에 스웨덴어를 하지 못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변수였던 것은 스웨덴은 현금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카드나 애플페이, QR 코드를 활용한 웹샵으로 거래를 하는데 카드 단말기가 하나밖에 없어 웹샵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중년층 이상에게서 주차비를 걷을 때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주차장 대기 줄이 길어졌다.
길어지는 줄만큼 마음이 다급해지기도 했지만 그것 외에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다만 조금이라도 스웨덴어를 할 줄 알았더라면 사람들과 더 많은 접점을 만들어 더 재밌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기는 했다. 자르코에게 배운 헤이(Hej, 안녕하세요)와 탁사미겟(Tack sa mycket, 고맙습니다)만을 아주 유용하게 써먹었다.
-다음 편에 이어서
인비저블 피플(Invisible People) 웹사이트- https://www.invisiblepeople.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