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하기 싫은 일들을 마주할 때
살다 보면 해야 하는 걸 알고 있음에도 하기 싫은 일이 꼭 생긴다. 최근에 이런 난관에 봉착하는 이슈를 가져다준 것은 인턴 지원에 도와주신 분들께 불합격 결과를 알리는 일이었다. 추천서를 적어주신 학교 교수님과 대회 수상으로 안면을 튼 서울시 관계자분 그리고 합격 시 사실 여부 판단을 위해 봉사활동 경험을 증빙해주실 봉사활동 단장님까지 총 세 분에게 인턴에 떨어졌다는 소식을 전해야 했다. 인턴 선발 결과는 12월 중순에 나왔으나 당시에는 스스로에게 너무나도 실망해서 나의 감정을 추스르기조차 어려웠다.
고백하자면 이 시기에 2개의 인턴, 1개의 해외봉사 프로그램에 지원했는데 결론적으로 다 불합격했다. 비슷한 시기에 지원하여 3개 중에 제발 하나만이라도 됐으면 좋겠다고 빌고, 실제로 전부 최종면접까지 갔기에 하나는 되겠지 하는 생각에 주변에도 이야기하고 다녔으나 결과는 참혹했다.
인턴 1개는 내 기준 너무 대단한 곳이라 큰 뜻 없이 일단 지원하고 본 케이스인데 서류와 필기를 통과하고 패널 인터뷰를 거쳐 디렉터 인터뷰까지 순식간에 진행이 되었다. 디렉터 인터뷰에서 후보 3인 중 한 명이라는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 없던 기대가 생겨나고 '혹시 내가?' 하는 생각에 붙었을 경우를 대비해 다음 분기 일정을 들여다보았다.
그랬는데 합격은커녕 탈락 메일도 안 보내줄 줄이야. 인간적으로 불합격자에게도 결과는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상처받았다. 서류 탈락도 아니고 모든 전형을 거쳐 디렉터 인터뷰까지 진행한 최종 3인 중 합격하지 못한 2명인데 탈락 메일도 못 받다니.
심지어 패널 인터뷰 바로 다음날로 디렉터 인터뷰 일정을 잡을 만큼 급하게 구인이 진행되었는데 10일이 지나도 연락이 안 와서 인터뷰 시간 조율 때문에 몇 번이고 메일을 주고받았던 HR팀에게 메일을 보냈고, 그들에게서도 답장이 안 오자 인터뷰를 한 디렉터에게 직접 메일을 보냈지만 역시나 답장이 오지 않았다. 인터뷰 조정할 때에는 답장이 정말 빠르게 왔었는데 갑작스런 태도 변화가 당황스러웠고, 인생이란 원래 이런 것인가 싶었다. 필요로 될 때만 존중받고 더 이상 볼일이 없어지면 내팽개쳐지는 것인가 슬펐다. 한참 후에야 해당 조직 본부로부터 후보자 풀에 등록되었다는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메일을 받았다.
해외봉사 프로그램도 서류와 면접 절차를 거쳐 4차 전형인 신체검사와 신용조회까지 요구했기에 ‘됐다, 이거는 합격한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 신체검사를 받으며 엄마 아빠한테 ‘나 내년에 볼리비아 갈 것 같아~’ 자랑했다. 다음 분기 일정도 정리하고 다른 인턴이나 봉사 프로그램도 더 이상 신청하지 않았다. 근데도 최종결과, 예비 합격을 받았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추가로 합격할 가능성이 아주 낮은 것 같고, 추가 합격 유효기간이 5일 남은 지금까지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
인생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지만 작년 12월에는 정말 바랐던 것들이 하나씩 무산되자 마음이 안 좋았다. 스스로의 한계를 너무나 느꼈고 동시에 부족하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12월 중순부터 1월 초까지 다른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사라지고 사람이 무기력해졌다. 줬다 뺏으면 (실제로는 주지 않았다, 스스로 붙었다고 여긴 것이다) 더 욕먹는다는 말이 맞았다. 세상이 나를 싫어하는 것만 같고, 쓸모없는 무능력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고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겨 진로에 대해 다시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원한 인턴 2개는 국제기구 인턴이었는데 해외봉사도 그렇고 미래에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지원하였다. 그런데 이왕 탈락한 거 내가 정말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은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였다.
어렸을 때 국제기구에서 일하면 멋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줄곧 국제기구 쪽으로 진로를 희망해온 것은 아니고 대학 들어와서 교환학생과 여행을 통해 외국에서 생활하고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어렸을 때의 꿈을 다시 꾸었던 것이다. 국제기구에서 세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명감보다는 단순히 멋져 보여서, 외국생활을 하고 싶어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격식과 행정적인 절차, 서류 작업보다는 자유롭고 유연한 일을 하고 싶었다.
인턴에 떨어짐으로써 비로소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시간을 가졌다. 인턴에 합격했더라면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주어진 일들을 하며 앞으로 나아갔을 것 같다. 일을 하는 중에 배우고 느끼는 것이 생겼을 테고 어떤 환경에서든 잘 적응을 하는 사람으로서 국제기구 취업이라는 최종 목표를 향해 불도저처럼 직진했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인턴에 불합격한 것이 감사하다. 지금, 무언가를 이루어내지 않은 상태에서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다른 일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해주어서.
인턴 결과가 발표되고 한 달이 지나서야 메일 창을 열어 교수님께 메일을 써내려갔다, 솔직한 나의 심정을 담아. '추천서를 써주셨는 데에도 불구하고 인턴에 불합격했다, 죄송한 마음에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서야 연락을 드린다, 진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요즘 고민이 많다' 그런 내용의 메일이었다. 서울시 관계자분께도, 봉사활동 단장님께도 연락을 드렸다.
해야 하지만 그 순간이 아프기 때문에 미뤄왔던 것들을 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불합격인데 꼭 연락을 드려야 할까라는 마음도 솔직히 있었다. 좋은 소식도 아니고 괜히 번거롭게 해드렸다는 생각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해 불합격 소식을 그냥 묻어가면 안 되나 생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합격 소식을 전한 건 도움을 받은 사람의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으며, 앞으로 또 도움을 요청할지 인생 모르는 법이고, 무엇보다도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락을 돌리고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있었다. 나는 유쾌하지 답장이 올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면 휴대폰을 방해금지 모드로 바꾼다. 불편한 내용을 마음의 준비 없이 보기 싫어서이다. 어쨌든 탈락이라는 아픈 내용을 보냈기에 관련한 내용을 보거나 생각하면 역시 아직은, 마음이 좋지 않기 때문에 답장을 기다리면서 휴대폰의 방해금지 모드를 켜놓았다.
그리고 그분들의 답장은 예상보다도 훨씬 더 따뜻하고 감동적이었다. 나의 자기 방어가 무색할 만큼 어느 한 분도 제외 없이 '고생했다, 연락 줘서 고맙다, 도전했다는 것 자체로 많을 것을 배웠을 거다, 응원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나는 무엇을 걱정했던 것인가.
불합격이라는 소식을 전함으로써 언젠가는 이야기해야 한다는 마음 한 구석의 짐을 덜어냈다. 그 무엇보다도 마음이 편해졌다. 답장을 받고서는 오히려 무엇을 걱정했나 의문이 들었을 정도이다. 살면서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누구나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할 때가 온다.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이 닥친다면, 그리고 그것이 나를 고통스럽게 만든다면,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별 것 아닐 수 있으니, 스스로를 고문하지 말고 최대한 빨리 해치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