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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떻게 나를 이런 곳에 데리고 올 수 있니?

by 보리차

미얀마 여행은 파고다 여행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여행 중 수없이 많은 파고다를 들르게 된다. 그리고 그때마다 맨발이 된다. 파고다 또는 파야로 불리기도 하는 수많은 불탑 및 사원들이 나라 전체를 덮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는 양곤에서 쉐다곤, 차욱타찌, 슐레 파고다를, 만달레이에서는 마하무니, 짜욱또지, 산다무니, 쿠토로 파고다를, 그리고 바간에서는 데자힛, 틸로민로, 우팔리 테인, 아난다, 탓빈뉴, 쉐구지, 낫라웅 따웅, 민예공, 담마얀지, 쉐샨도, 쉐렉투 파고다를 보았다. 파고다를 둘러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경건한 마음이 된다. 약하고 유한한 인간이 불심에 기대어 살아내 보려는 그 애잔한 간절함이 곳곳에 묻어있는 듯 해서일 것이다. 만달레이의 마하무니 파고다를 찾았을 때 뭉클함을 전해준 미얀마인들. 현재를 살아가는 그들이 그곳을 찾아와 절을 하고 기도를 하며 금박을 붙이던 모습. 자신들이 먹고 입을 것도 넉넉지 않을 텐데 힘들게 번 돈으로 금붙이를 사서 그곳에 붙일 때, 그들은 분명 무언가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IMG_3062.JPG 마하무니 파고다에서 금박을 붙이는 사람들


1년 전 바간에서 머물고 있을 때, 한국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거기서 뭐하고 지내?”

“해 뜨는 거 봐 그리고 해 지는거 봐.”

“그리고...?”

“글쎄... 그게 다야.”

정말 그랬다. 일출의 감동과 일몰의 장엄함 외에는 생각나는 게 없던 시간이었다. 사실 겨울이라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니 낮이 짧은 탓도 있었을 거다.


엄마에게도 미얀마의 일몰과 일출을 보여주고 싶다. 아침부터 바간의 파고다를 돌아다니다가 오후 4시 무렵 서둘러 쉐샨도 파고다로 이동을 한다.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오른다. 위를 쳐다보면 나에게로 쏟아질듯한 거대한 계단이다. 그곳을 엄마와 함께 오른다. 그리고 일몰을 보기 적당한 지점에 도착한다. 일몰을 보기 위해 올라온 사람들이 우리 외에도 상당히 있다. 자리를 잡고 기다리기로 한다. 그 때 옆에 앉은 엄마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귀에 꽂힌다.

“네가 어떻게 나를 이런 곳에 데리고 올 수 있니?”

“..................??”

“내가 높은 곳 무서워하는 거 모르니?”

아!! 나에게 벅찬 감격을 안겨준 쉐샨도 파야에서의 일몰을 엄마에게 보여주겠다는 생각이 있었을 뿐 그 좁고 가파른 수많은 계단을 올라와야 했던 엄마가 힘든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고소공포증이 있는 엄마에게 높고 비좁은 공간에서 해지는 것을 보기 위해 기다리자고 했으니... 엄마는 무서워서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런 엄마를 붙잡고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린다. 바로 다시 내려갈 엄두도 나지 않으니 달리 방법이 없다. 다음날 일출도 바로 이곳 쉐샨도에서 보자고 해 두었었다.

“내일 절대 여기 다시 안 온다. 일출 안 봐도 된다. 나 못 와!!”

어쩔 수 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최대한 안정감 있고 편안하게 앉아 멀리 바라보며 기다릴 수 밖에. 그리고 이내 스멀스멀 하강하던 태양이 스카이라인 너머로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뒤이어 붉은 기운이 하늘을 감싸더니 바간의 수많은 불탑들을 불타오르게 한다. 장엄한 일몰 후 고요함 속의 향연에 쉐샨도에 올라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의 탄성이 새어 나온다. 그리고 얼마 후 어둠이 짙어지는 것을 보며 쉐샨도에서 조심조심 내려온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 엄마가 침묵을 깬다.

“내일 아침 열기구 뜨는 것 보려면 여기 와야 되니?”

“응. 여기 와서 봐야 해. 다른데서는 안 보여.”

“그럼.. 내일 또 여기 와야겠구나.”

쉐샨도의 일몰이 엄마에게 고소고포증을 참아낼 용기를 주었구나.

DSC08379.JPG 무서움에 떨면서도 등 뒤로 고개를 돌려 엄마가 찍은 사진. 일몰을 기다리는 쉐샨도 파고다의 사람들.


다음 날 아침 5시 30분 택시로 쉐샨도 파고다 앞에 도착한다. 우뚝 서 있는 가파른 계단의 쉐샨도 파고다. 조심조심 다시 계단을 오른다. 그리고 떠오르는 태양을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지점을 찾는다. 어렵지 않다. 이미 세계의 카메라맨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우리가 서 있어야할 장소다. 어두운 푸른 하늘빛이 점점 옅어지며 일출 맞이할 채비를 한다. 세계에서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이 파고다에 다닥다닥 붙어있다. 6시 55분. 드디어 터져 나오는 탄성과 박수 그리고 카메라 셔터 소리... 모습을 드러내는 태양과 함께 떠오르는 수많은 바간의 열기구. 옆에 있던 엄마를 바라본다. 파고다에 등을 바싹 기대어 사진을 찍고 있는 엄마와 등 뒤의 파고다에 해돋이의 환상적인 빛이 물들어 있다. 파고다 위아래로 다닥다닥 붙어 일제히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모두 은은한 황금빛에 아름답게만 보인다.

DSC08617.JPG 일몰과 일출을 보러 두 번이나 오르락 내리락 했던 쉐샨도 파고다. 일출을 보고 내려온 후 엄마가 찍은 사진
DSC08568.JPG 고소공포증을 참아가며 쉐샨도 파고다에서 엄마가 찍은 바간의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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