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어둠 속의 빛

by 코모레비

그저 밝게 웃는다. 아무렇지 않은 척, 숨은 상처 따윈 없는 사람처럼 무리 속에 묻혀 그들과 함께 웃는다. 타인에게 드러나는 나의 겉모습, 밝음으로 포장된 나의 얼굴이다. 하지만 그 밝음은 오랜 시간 내게 머물러 있지 않는다. 연극 같은 순간이 끝나고 나만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돌아와 홀로 설 때면,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허와 외로움이 어디선가 밀려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로등 불빛이 조용히 나를 비춘다. 그리고 그 빛에 화답이라도 하듯 까만 그림자 하나가 나를 따라온다.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그림자를 쳐다본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내가 보인다.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결핍, 슬픔과 분노, 두려움과 욕망이 짙은 어둠 속에 갇혀 있다. ‘왜 나에겐 저게 없지? 왜 난 이것밖에 안 될까?’ 다른 이들에게는 있는데 나에게만 없는 것 같다. 다들 쉬워 보이는데 나에게만 어려운 일처럼 느껴진다.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끊임없이 저울질하며 더욱 매몰차게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나, 또 다른 나의 얼굴을 본다.

사람들 앞에선 밝음으로 어느 정도 가릴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나의 자리로 돌아와 보면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 그림자는 그대로 머물러 있었고, 감추려 하면 할수록 더 짙어져만 갔다. 밝음과 어둠, 그 괴리 속에서 나는 괴로워했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나 자신이었다. 두려웠다. 내 안에 있는 짙은 그림자의 존재를 확인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내가 어둠을 마주하고 인정해 버리는 순간, 그동안 내가 만들어 둔 밝음의 영역이 가짜가 되어버리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건지, 답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림자를 직면할 용기가 필요했다. 조금씩 나의 내면을 들여다봐야 했다. 내가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마음속에 스며든 두려움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불완전한 나의 모습을 확인하고 인정해야 했다. 자꾸만 움츠러들고 숨으려고만 하는 나를 밖으로 불러내는 과정이 필요했다. 결국 그림자를 마주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내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어둠의 조각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의 글이 되기도 했고 말로 표현되기도 했으며, 때로는 눈물로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나에게 진실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그림자들이 빛을 만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빛과 어둠의 경계는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렇다. 빛과 어둠은 내 안에서 ‘나’라는 존재로 공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의 내면은 점차 성장하고 있었다.

나의 그림자를 이해할수록 나는 조금 더 넓고 깊은 존재가 될 수 있다. 나의 어둠을 품어 본 사람만이 타인의 어둠도 끌어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 밝음’만을 고집하며 살아가는 이에게는 찾아올 수 없는 이해의 영역이다. 어쩌면 진정한 성장은 밝아지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어둠을 직면하고 알아차리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그림자를 안다는 것은 나의 약함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이해하며, 그것으로부터 오는 고통을 덜어내고 조율하는 치유의 과정과도 같다. 약함을 인정함으로써 나는 더욱 단단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안에 있던 어둠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쯤이면 어느 정도 해결되었겠지 생각했던 부분이, 어느 순간 불쑥 얼굴을 내밀며 나를 당황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 또한 ‘내 모습’의 일부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내가 움직일 때 함께 움직이는 그림자처럼, 인생의 불안과 염려, 상처와 갈등 역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고 성장한다. 어떤 것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림자를 없애려는 나의 몸부림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배워가는 것에 있다.

지나온 시간 동안 나와 함께한 그림자를 되돌아본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그림자는 나를 작고 어둡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더욱 빛나게 하려고 함께 걸어와 준 또 하나의 ‘나’라는 것을. 그것은 나의 부족함이 아니라, 오히려 온전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통로가 되어 주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둠을 통과한 진정한 밝음 속에서 한 뼘 더 성숙해 있는 나, 조금 더 ‘나다워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나의 빛'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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