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아침, 그리고 밤이 내게 주는 것들

by 코모레비

5월의 이른 아침, 가벼운 옷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선다. 조금만 걸어 나오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자연 속 작은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적당히 따사로운 햇볕,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게 얼굴에 와 닿는다. 풀벌레 소리, 새들의 노랫소리가 아침의 고요를 뚫고 귓가에 들려온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찾아갈 수 있고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결혼 전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며 회사에 출퇴근하던 시절을 떠올려 보면,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 당시 내가 볼 수 있었던 자연이라고는 지하철역에서 회사 건물까지 걸어가는 길에 심긴 가로수들이 전부였다. 자연을 보며 사는 것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살던 때였다. 그저 아침 일찍 눈 떠 지하철에 몸을 싣고 회사로 향하기 바빴고, 그날그날 주어진 업무를 해내는 것에 내 모든 힘과 에너지를 쏟을 때였다. 그땐 그게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나의 일상이었다.

20년 가까운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짧지 않은 시간 속에 분명 수많은 일들이 지나갔을 테지만, 늘 그렇듯이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는 순간에는 그 모든 사건들이 마치 짧게 편집된 영상처럼 머릿속에서 압축되어 버리곤 한다. 눈 깜짝할 사이. 너무 흔한 표현이라 할지 모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보다 적절한 표현은 없을 듯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어느새 나에게도 ‘나이 듦’의 때가 찾아왔음을 몸으로 느끼는 요즘이다. 꽃과 나무가 좋아지면 나이가 드는 거라는데, 언제부턴가 길가에 자라나는 풀들, 새롭게 피어나는 꽃들에 눈이 간다.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에서 말하는 것처럼, 조금 더 자세히 보게 되고 오래 보게 된다. 주변을 돌아보고 자세히 살피는 여유를 갖는 것, 나 자신만을 향해 있던 시선이 조금씩 밖을 향하기 시작하는 것. 그러고 보면 나이가 든다는 건, 내 마음의 공간이 조금 더 넓어지고 여유가 생긴다는 의미가 아닐까. 눈으로 보는 것은 곧 마음으로 연결된다. 탁 트인 하늘을 한 번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살랑이는 바람에 잎을 나부끼는 한 그루의 나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작은 충족감이 밀려온다.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본다. 이 공간과 시간을 오롯이 누리고 있는 나를 느낀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은 어제도, 이전에도 있었던 길이다. 처음 걷는 길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어제와 다른 ‘오늘의’ 풍경이며, 오늘의 세상이다. 높고 푸른 하늘도,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의 모양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을 지닌다. 연둣빛에서 초록빛으로 옷을 바꿔입으려는 나뭇잎과 풀들, 돌과 나무 틈새로 피어난 이름 모를 작은 꽃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맞이하고 있다. 계절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때를 따라 ‘변화하고 있는’ 자신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당장 눈에 보이진 않지만, 자연은 매 순간 쉼 없는 변화를 거듭하며 ‘변함없는’ 계절을 선물해준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는 자연의 성실함을 따라 풀과 나무들도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햇살을 먹고, 빗물을 머금고, 때론 세찬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면서 자신을 지켜내려 애를 쓴다.

나 역시 늘 변화를 꿈꾼다. 동시에 늘 변함없는 사람이고 싶다. 이 두 모순된 바람을 가질 수 있는 이유를 나는 자연에서 배운다. 변화를 거듭하면서도 변함없는 자연. 어쩌면 변함없다는 건 늘 변화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살아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나도 그러고 싶다. 살아있고 싶다. ‘남에게 보이는 죽은 나’가 아닌 ‘진정한 나’로 살아있고 싶다. 동시에 과거의 나를 부정하는 수준을 넘어 그런 나도 넉넉히 끌어안는 현재의 나로 살아가리라. 똑같은 나이지만 다른 나. 변화를 늘 꿈꾸면서도 변함없는 나. 비로소 살아있는 나. 산책이 내게 가르쳐준 깨달음이다.

‘아침 산책’이 하루를 시작하는 상쾌함, 맑고 밝은 싱그러움을 떠올리게 한다면, ‘밤 산책’은 아침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낮 동안 빛을 발하던 숲과 나무들이 어둠 속으로 얼굴을 숨기고, 조금은 차가워진 공기에 꽃과 풀들도 몸을 움츠린다. 땅에 몸을 담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에게 주어지는 쉼의 시간이다. 가로등 불빛 하나 의지한 채 밤길을 걷는다. 여기에 내가 좋아하는 잔잔한 음악이나 노래까지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혼자 걷는 밤길, 누군가와 함께 걷고 있음이 힘이 될 때도 있지만, 때로는 홀로 있는 시간 속에서 깊은 위로를 경험하기도 한다. 눈을 들어 가만히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둠을 품은 고요한 바다처럼, 밤하늘은 아무런 말이 없다. 밤의 고요 속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 만났던 사람들, 내가 했던 말들, 내 마음속을 스쳐 지나갔던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나둘 떠올려 본다.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무엇이 그리 조급했을까?’ 어지러이 흩어져 있던 생각의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어 본다. 언제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감정의 불협화음들을 조율해 본다. ‘그래, 그럴 수 있지. 나라도 그랬을 거야. 그게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다시 시작하면 되지.’

밤하늘의 별빛이 눈짓하듯 나를 향해 반짝인다. 불어오는 밤바람이 내 볼을 쓰다듬듯 가벼이 얼굴을 스친다. 나를 둘러싼 밤의 배경들이 조용히 말을 건넨다. 나를 몰아세우거나 다그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해 준다. 그렇게 밤길을 걷고 있노라면 어느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평화로움이 내 안에 밀려온다. 기다려주는 것, 성급하게 말하지 않는 것. 그것이 그렇게도 어려웠을까. 그럴듯한 수많은 말보다 때로는 그저 나를 잠잠히 바라봐 주는 ‘말 없는’ 시간이 답을 줄 때가 있다. 세상의 소란을 잠재우는 침묵의 말, 그 말 없는 위로가 나를 다시 살게 한다.

불빛 아래 비치는 작은 그림자 하나, 하루라는 생의 시간을 힘써 달려온 나를, 애정 어린 눈으로 살며시 안아 본다. 그런 나를 밤하늘이 내려다본다. 짙은 어둠으로 달과 별을 감싸듯, 그 깊은 품으로 나를 가만히 안아 준다. 살게 하는 존재, 살고 싶게 만드는 존재. 나도 그렇게 말이 아닌 마음으로 다가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욕심대로 바로잡으려 하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서 기다려주고 지켜봐 주는 다정한 품을 지니고 싶다. ‘말 없음’에서 전해오는 깊은 이해와 사랑, 밤길을 걷는 나에게 주어지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작가의 이전글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