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너머에 있는 그곳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어릴 적 부르던 동요 <고향의 봄>의 가사를 떠올려 보면, 그 시절 시골 할머니 댁에서나 볼 수 있었던 추억의 풍경들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에게는 ‘고향’이라는 의미가 어떻게 다가올지 문득 궁금해진다. ‘집’이라면 모를까 ’고향‘이란 말은 어쩌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생소한 단어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고향의 봄> 노래 가사 중에서도 내 마음에 가장 와닿는 부분은 맨 마지막의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라는 노랫말이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 어릴 적 추억이 담겨 있는 곳. 그래서 언제라도 돌아가고 싶은 곳, 고향이란 그리움이 담긴 장소이다.
내 고향은 경북 경주이다. 초등학교 시절 이곳저곳 이사를 많이 다니긴 했지만, 경주라는 지역의 울타리를 크게 벗어난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살던 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게 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공부만 해야 했던 고3 시절엔 고등학교라는 공간적 틀만 벗어나면 자유가 주어질 거라 기대했었다. 물론 대학교에 가서는 고등학교 때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훨씬 더 많이 주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주어지는 여유를 마냥 ‘여유롭게’ 사용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당시 경주에 계시던 엄마는 집안의 생계를 홀로 책임지고 계셨기에, 그런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 드리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해야 했고 학업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나에게 서울 생활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서울로 올라온 동생과 함께 옥탑방과 반지하에서 생활하기도 했고, 휴학을 하면서까지 돈을 벌어야 할 때도 있었다. 취업하기 전까지 꽤 오랫동안 학교 근처에 있는 고시원에서 생활했었다. 한 사람 겨우 누울 만한 좁은 공간에서 창문도 없이 몇 년을 지냈었다. 대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서울로 오신 엄마가 내가 살던 방을 보시고는 ‘이런 데서 답답해서 어떻게 사느냐’며 마음 아파하시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주어진 것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내 처지를 원망하거나 불평한 적은 없다. 그렇게 살아내야 하는 거라 생각했었고, 결핍 속에서도 노력하며 성장하고 있음에 스스로 만족과 보람을 느꼈었다.
복잡하고 분주한 서울 생활이었다. 그래서 고향 집은 내게 유일한 안식처였고, 진정한 쉼의 공간이 되어 주었다. 방학이나 명절 때가 다가오면 돌아갈 곳이 있어 좋았다. 고단한 삶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찾아가 쉴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는 순간, 설렘 가득한 내 마음은 이미 고향 집으로 달려가 있다. 버스가 도착하기도 전에 터미널에 마중 나와 계신 엄마의 얼굴에는 딸을 맞이하는 반가움에 환한 미소가 가득 번진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내가 들고 온 가방부터 받아 드시는 엄마. 자식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었다.
“힘들었제, 엄마가 맛있는 밥 해 놨다.”
구수한 된장찌개에 갈치구이, 엄마표 김치에 마늘장아찌, 짭조름한 멸치볶음. 타지 생활하며 늘 아쉽고 그리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엄마가 차려 주시는 밥상이었다. 뜨끈한 찌개에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우고 나면 배 속이 든든해져 온다. 소박하지만 정성 가득한 밥상에 지친 몸과 마음이 위로를 얻는다.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도 여전히 엄마가 해 주시던 밥이 그립다. 딸을 위해 정성스레 준비해 주신 엄마의 손맛, 마음으로 지어 주신 밥맛이 그립다. 언제든 달려가면 먹을 수 있는 따뜻한 밥상이 있는 곳, 나라는 사람이 이유 없이 환대받을 수 있는 곳, 그곳이 나의 고향이었다.
결혼을 하고 세 아이를 키우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간절해졌다. 엄마가 되고 나니 엄마라는 존재가 더욱 그리웠다. 명절이 다가올 때면 고향을 찾을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렸다. 우리 가족이 고향집에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문밖에 나와 자식과 손주들이 오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시던 엄마. 언제 달려가도 두 팔 벌려 나를 맞아줄 너른 품이 있던 그곳이, 바로 나의 고향이었다. 나는 그 고향이 언제까지나 그곳에 있어 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바람일 뿐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나의 고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 후로는 이전에 느꼈던 고향의 의미를 더 이상 그곳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제 어디에서 '나의 고향'을 찾아야 할까.
고향이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향이란 곧 사람이기도 하다. 내가 마음에 담고 있는 고향에 대한 기억이 사람에게서 온 따스함, 그로부터 받은 환대의 느낌이라면 나는 ‘그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고향’을 경험할 수 있다. 나의 마음이 쉼과 힘을 얻는 곳, 그곳은 ‘공간 너머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의 고향이다. 구수한 밥 냄새와 같은 편안함을 주는 사람, 속 깊은 너그러움으로 묵묵히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 존재로서 나의 가치를 긍정해 주는 사람, 그래서 꼭 한 번 다시 만나고 싶은 여운을 남기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서 나는 고향을 느낀다. 너와 내가 서로에게 그런 품을 내어 줄 때,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그리운 ‘고향’이 된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아 숨 쉬고 있을 내 고향, 그를 만나 따뜻한 밥 한 끼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고 싶다. 잘 지냈느냐고, 그리웠노라고 안부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