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기쁨 뒤에 늘 슬픔이 따라오는
이 공식은 언제부터 유효했을까.
하지만 확실히 적용되었다.
매번 그랬다.
기분이 너무 좋고 행복하면
그 뒤엔 늘 슬픔이 따라왔다.
더 많이 행복해할수록
더 깊게 슬퍼졌다.
왜 그런진 모르겠다.
처음엔 우연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매번 반복되는걸
깨닫고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론 행복해도 마음 놓고
행복해 할 수 없었다.
내가 느끼는 행복만큼
그에 상응하는 불행이 올 것이기에
겁이 났다.
어떤 날에는 실수로 긴장을 풀고
행복의 들숨을 많이 들이마셨더니
더 아픈 슬픔의 날숨을 내쉬고 말았다.
내가 느끼는 순간의 감정도
이렇게 조심스럽게 눈치 보면서
느껴야 하다니 어쩔 땐 화도 났다.
평소와 같은 아침이었다.
새벽 5시 15분쯤 일어나 샤워를 하고
유튜브를 보면서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내 강아지 깜순이와 산책을 하는
늘 똑같은 평소의 아침이었다.
알고리즘에 악뮤가 나왔다.
성시경의 고막남친에 출연한 영상이었다.
자연스럽게 영상을 재생했고
나는 그 영상을 보고 아침부터 눈물이 맺혔다.
영상에서 악뮤는 새 앨범 수록곡 중 하나인
‘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을 부르고 있었다.
수현이의 따뜻한 목소리로 시작된 노래는
도입부부터 내 마음을 울렸다.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건
아름다운 마음이야
쫓아내지 말고 품어주어라
아주 예쁜 돌이 된단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많았던 걸까.
어쩌면 이 공식은 나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잔잔한 반주에 담담한 목소리,
따스한 가사가 아침부터 나를 울렸다.
예상치 못하게 큰 위로를 받았다.
영상 속 어느 방청객도 눈물을 보였다.
나와 비슷한 마음이 들었나 보다.
위로받는 것 같고 괜찮다고 품어주는
다정함을 느꼈나 보다.
이 노래의 가사처럼
나의 이 슬픈 공식을 품어주면 예쁜 돌이 되고,
겁내지 않고 마주 앉으면 찬란한 그림이 된다고
생각하니 이 공식이 마냥 슬프지만은 않아 졌다.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건
아름다운 마음이라는 찬혁이의 말에서
나는 용기를 얻었다.
현재 내가 느끼는 행복을 오롯이 느낄 용기를.
슬픔이 찾아올까 봐
두려워서 온전히 느끼지 못한 행복을
이제는 그전보다는 더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내 강아지 깜순이와 함께한 저녁 산책에서
가로등 밑 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니
코 끝이 시큰한 게 행복함이 몰려온다.
풍성하게 자라난 나뭇잎에게
손인사를 해본다.
산뜻하고 달달한 봄바람을 맞으며 걷는
이 길을, 이 행복을 지금부터 오롯이 느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