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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에르떼 Feb 22. 2023

함께라는 의미

가능성의 바다를 넓혀주다

나는 주로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홀로 시간을 보내며 에너지를 얻는 편이다. 친구들과 모임을 자주 갖지도 않을뿐더러 소모임에 가입할 생각은 아예 없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 가서 기 빨리고 오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올해 1월 큰 결심을 하고 등산 모임에 가입했다.


작년부터 여기저기 탈이 나는 내 몸을 보며 건강을 챙겨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헬스를 하고 있긴 하지만 다른 운동이 필요했다. 그런 내게 가까운 친구가 등산 모임을 함께 해보자고 권유해 주었다. 어릴 적 아빠와 산에 종종 갔던 터라 내게 등산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무리에 끼는 것이 불편해서 피했었다. 하지만 지금 내겐 등산만큼 좋은 운동이 없고 친구가 운영하는 등산 모임이라 믿음도 갔기에 흔쾌히 가입하게 되었다.


1월 29일, 나는 친구와 함께 소백산 어의곡 코스 산행에 참여하였다. 대망의 첫 산행치곤 난도가 높긴 했지만 나의 체력과 친구를 믿고 산행에 참여했다. 이른 새벽에 출발하여 처음 뵙는 회원분의 차에 몸을 실었다. 어색하고 조금은 불편한 공기 속에서도 잠은 잘 오는 게 신기했다. 날은 점점 밝아왔고 우리는 소백산 입구에 도착하였다. 나와 친구를 포함하여 총 4명이 산행에 참여하였다.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인사를 나눴다. 아이젠을 끼우고 스패츠를 신고 비장한 마음으로 양손에 등산 스틱을 들었다. 9겹을 껴입은 덕에 몸은 조금 둔했지만 마음만큼은 가벼웠다.


처음 뵌 두 분은 매우 가벼운 걸음으로 금세 앞서가셨다. 이대로 계속 뒤처지면 다른 분들께 피해가 갈까 봐 따라잡으려고 무리하게 애를 썼다. 하지만 오랜만의 산행인 데다 무리까지 하니 속이 점점 매스꺼워지고 머리가 핑 돌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다른 분들께 더 큰 민폐가 될 것 같아 나는 내 페이스대로 천천히 걸었다. 친구는 내 옆에서 물을 건네주고 천천히 가도 괜찮다며 나를 배려해 주었다. 내 뒤에서 내 발걸음에 맞춰 함께 걸어주었다. 나머지 두 분도 내 페이스에 맞추겠다며 나보고 앞장서라고 하셨다. 나는 죄송한 마음은 뒤로 하고 우선 내 페이스대로 걷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초반보다 곧잘 걷게 되었다. 눈 밟는 소리, 등산 스틱으로 땅 짚는 소리, 사람들의 발소리를 들으며 등산에 집중했다. 고요함 속에서 분주함이 느껴졌다. 등산 스틱으로 땅을 짚는 소리는 청명하기도 하고 규칙적이었다. 새소리 같기도 하고 음률 같기도 했다. 우리 회원분들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묵묵히 산을 오르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같은 정상을 향해 등산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동료가 된 기분이었다.


등산한 지 1시간쯤 다 되었을 때 눈앞에 예쁜 절경이 나타났다. 나무마다 상고대가 예쁘게 피어있었다. 겨울왕국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겨울산의 매력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차가운 바람 속에 핀 예쁜 눈꽃, 상고대를 내 눈으로 직접 보다니… 감개무량했다.

중간중간 고비가 찾아왔지만 휴식을 취하며 천천히 산행했다. 새하얀 눈을 맞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오르고 올라 능선에 다다랐다. 매서운 칼바람으로 유명한 바로 그 능선이었다. 무섭게 몰아치는 눈바람을 마주하며 걷고 또 걸어 정상에 도착했다.


내가 정상에 도착하다니! 내 자신이 너무나 장하고 뿌듯했다. 하지만 나 혼자였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는데 끝까지 나를 배려해 주신 모임 회원분들께 정말 감사했다. 내가 힘들 때마다 군말 없이 함께 쉬어주시고, 따뜻한 꽃차를 종이컵에 따라주시던 고마운 마음 덕분에 내가 정상석을 볼 수 있었다.


함께하면 혼자서는 엄두도 못 낼 일도 할 수 있구나. 인생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사는 거라던 아빠의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 인’ 자가 왜 서로를 의지하고 있는지 그 의미를 체감하게 되었다.


이번 산행을 통해 혼자만의 시간도 좋지만 함께 하는 시간도 충분히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난 이때까지 나만의 우물 안에서 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우물 틈 사이로 보이는 바깥세상은 머리 아프고 피곤하기만 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나와보니 그렇지 않았다.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함께 하면 더 멋진 것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게 이 세상을 알려준 친구에게  진심을 담아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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