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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에르떼 Jan 15. 2023

도시 해방 일지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하다

우리가 이사할 곳은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생전에 사셨던 집이었다. 그곳은 두 분께서 돌아가신 후 10년 가까이 비어있었다. 두 분과의 추억이 가득한 집에서 우리 가족이 새롭게 시작한다니 마음이 뭉클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우리 가족을 곁에서 지켜주실 것 같았다.


할머니 댁은 내가 5살이 되던 해 완공된 집이라고 들었다. 오래전에 지은 집답지 않게 외벽은 아주 튼튼했다. 요즘 집의 외관만큼 예뻤다. 하지만 내부는 수리가 필요했다.


우리 가족은 인테리어 공사를 어떻게 할지 고민에 빠졌다. 인테리어 업체에 맡기자니 생각보다 예산이 많이 들고 부실 공사의 위험도 있어 걱정이 있었다. 그렇다고 부모님께서 직접 하시기엔 잘 모르는 분야여서 선뜻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런 우리에게 엄마의 이모님께서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다. 이모님은 이사 후 인테리어 공사를 직접 하셨던 분이었다. 그분은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고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엄마는 이모님의 말씀에 힘입어 업체에게 맡기지 않고 아빠와 직접 인테리어 공사를 하기로 결정을 내리셨다. 그 날이후 부모님은 각 분야의 전문 기술자분들을 수소문하고 연락을 취하기 바빴다.


그때의 나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동생은 취업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자연스럽게 방학에는 내가 부모님을 도와드리고 동생은 우리가 키우는 깜순이와 함께 집을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


인테리어 공사의 첫 번째는 철거였다. 집의 큰 틀은 그대로 두되, 내부의 구조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작업이었다. 나는 철거 작업이 끝난 뒤 폐기물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드렸다.


내부가 철거된 집에 들어가 보니 휑했다. 할아버지께서 즐겨보시던 tv도 밖으로 나와 있고, 할머니께서 웃으며 반겨주셨던 주방에도 남아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약간은 서글픈 마음이 들었지만 새로운 시작을 위해 필요한 작업이었다.


마당에는 다양각색의 폐기물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창틀부터 각종 폐가전까지 앞마당을 뒤덮고 있었다. 부모님께서 조금 정리를 하시긴 했지만 아직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날, 우리 가족은 소매가 긴 남방을 입고 목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한 채 마루포대에 폐기물을 담았다. 내부 철거 작업은 생각보다 엄청난 양의 폐기물을 만드는구나 생각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땀은 비 오듯 쏟아졌다. 마루포대에 폐기물을 담는 단순한 일이었지만 폐기물의 크기, 모양과 무게가 제각각이라 몸의 피로도는 금방 쌓였다. 나는 엄마가 걱정되어 옆을 쳐다봤다. 씩씩한 엄마는 다행히도 일반 마스크와 자외선 차단용 마스크를 두 겹으로 쓰고 꿋꿋하게 정리를 하고 계셨다.


외삼촌도 멀리서 오셔서 폐기물 정리를 도와주셨다. 부모님과 외삼촌이 힘들게 정리하시는 모습을 보니 하나라도 더 담자는 마음이 절로 솟았다. 뾰족한 유리들, 콘크리트 폐기물들은 하나씩 사라져 갔고 우리는 너른 앞마당을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폐기물을 정리한 후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전기, 수도, 장판 등등 해야 할 일이 줄줄이 대기 중이었다. 그중 나에게 주어진 일은 각 방문을 칠할 페인트를 고르는 것이었다. 기존의 방문이 나무로 되어있어 페인트칠이 필요했다.


나는 인테리어 공사 경험이 있는 지인에게 물어봐서 냄새 안나는 친환경 페인트를 추천받았다. 부모님과 함께 페인트 가게에 가서 색깔을 보고 페인트 2 통과 붓을 구매했다. 그리고 드디어 결전의 날, 페인트를 칠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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