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이 쏟아지던 12월의 어느 날, 나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일주일에 걸쳐서 조금씩 짐을 싸기 시작했는데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두 번 이사했다간 몸살 나겠다며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계속되는 짐정리에 지친 나는 집 근처 버거킹에 가서 고열량으로 에너지를 충전한 뒤 다시 힘을 내보았다.
이삿날 당일에는 갑자기 기온이 확 내려가 강추위가 찾아왔다. 이삿짐 아저씨의 빠른 손 덕분에 짐들은 금세 용달 트럭에 차곡차곡 쌓였다. 다 안 들어갈까 봐 걱정했는데 여유 공간이 충분해서 마음을 놓았다. 마음속으로 기존의 집과 작별 인사를 하고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3시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멋진 헤어 디자이너라는 두 딸의 이야기를 들으며 대단하고 멋진 분들이라 생각했다. 숱한 고생 끝에 그 자리에 오른 집념이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딸을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하신 아저씨가 대단해 보였다.
목적지에 점점 다가올수록 눈발은 점점 굵어졌다. 이내 커다란 함박눈이 앞 유리창을 쉴 새 없이 때렸고 세상은 온통 하얀색으로 물들었다. 마치 겨울왕국에 입성하는 기분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짐을 내리고 이삿짐을 정리하는 것도 며칠이 걸렸다. 그래도 정리를 하면 할수록 집안이 정돈되는 것이 보여서 뿌듯했다.
새로운 집에 이사오니 필요한 것들이 많았다. 그전에 살던 집에서는 매일같이 토퍼를 펴고 접으며 생활하여 이사를 가면 꼭 침대를 사리라 비장하게 다짐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침대를 사는 그날이 왔다. 기존에 썼던 좌식 테이블도 후련하게 정리하고 와서 나의 오랜 로망이었던 넓고 커다란 입식 테이블을 구매했다. 며칠 동안 퇴근하고 오면 현관문 앞에 커다란 짐들이 날 반기고 있었다.
끙끙대며 침대 매트리스를 옮기고 책상을 조립하며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에 대한 내 기대감은 점점 부풀어 갔다. 그 전의 집보다 이곳에서의 삶의 질이 완전 수직 상승한 느낌이었다. 내가 원하는 가구를 들이고 그곳에서 내가 생활을 하고 있다니 정말 행복했다.
새로 이사 온 동네는 주위에 상권도 많고 카페도 많았다. 심지어 헬스장도 4분 거리에 있어 난 탄성을 질렀다. 그전에는 30분을 걸어 다녔는데 이젠 집 바로 근처에 헬스장이 있다니 정말 너무 좋았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건 내가 기대했던 거보다 더 즐겁고 설레고 행복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가족과 거리가 가까워져서 정말 좋았다. 이제는 가족과 더 오래 볼 수 있고 함께 할 시간이 더 많아졌다는 생각에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곳에서 시작한 새로운 삶은 마치 새로운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뽀드득뽀드득 오랜만에 들어보는 눈 밟는 소리, 나긋나긋한 사람들의 말씨, 새로운 맛집과 예쁜 카페 등등은 나의 오감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나는 여기서 또 얼마나 많은 소소한 행복과 예쁜 순간들을 만나게 될까?
요즘 자기 전 침대에 누을 때마다 행복의 비명을 지른다. 편백나무의 향이 물씬 나는 침대 프레임 덕분에 숲 속에 있는 느낌마저 든다. 친구에게 생일선물 받은 예쁜 잠옷을 입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 행복한 순간들을 영원히 기억해야겠다. 뮤지컬 레베카의 곡처럼 이 순간 행복한 감정을 병 속에 담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