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집에는 새해가 되면 꼭 하는
연례행사가 있었다. 그건 바로 가족 모두가
식탁에 둘러앉아 새해 목표와 달성 방안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아빠는 이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목표를 세워야 그에 맞는 방향이 생기고 그래야
올 한 해도 보람차게 보낼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우리는 지난해에 세운 목표를 돌아보고
올해의 다짐들을 이야기했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나와 동생은 서로의 목표를 응원하고
파이팅을 외치며 그 시간을 마무리하곤 했다.
이 행사의 첫 시작과 마지막이 언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무튼 새해 목표 브리핑은
우리 집의 중요한 연초 행사였다. 그때는 목표를
정하고 새해를 맞이해서 마음 가짐도 달랐고
지금보단 좀 더 결연하게 새해를 시작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부모님의 품을 떠나 대학교를 다니고 직장인이 되면서 새해 목표 세우기는 잊고 살았다.
목표를 세워봤자 못 지키는 게 부지기수고,
어차피 삶은 알 수 없는 사건의 연속이니 그 상황에
맞춰 계획을 세우거나 목표를 수정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매년 비장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지만 결국
용두사미로 끝나버린 계획의 성취도에 싫증이 난 게
가장 컸다.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대학생, 그리고 직장인으로 사회에 진출하면서 나는 새로운 환경에
내던져졌고 그곳에서 나만의 계획과 목표가 생겼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지나자 해가 바뀌어도
내 주변 환경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시기가 왔다.
새해가 되어도 나는 같은 장소에서 늘 보는 동료들과 똑같은 업무를 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소소한 변화를 느끼며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으로 지냈는데 재작년부터는 새해가 바뀌어도
아무 감흥이 없었다.
이건 심각했다. 12월 31일이나 1월 1일이나
그날이 그날처럼 별 다른 생각 없이 일상을
이어나가는 나를 보니
어 이거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라지는 주변 환경에 적응하며 작은 목표를 세우고 성취감을 느끼면서 능동적으로 살았던 예전과 달리
지금의 나는 시간의 흐름에 편승하고 있었다.
흘러가는 시간에 무임승차하는 꼴이라니...
내가 정말 싫어하는 수동적인 삶을 살고 있었던 거다.
이제 내 주변의 환경은 고착화가 되었다.
어찌 보면 안정화가 된 것과 마찬가지다.
대학생 때처럼 해마다 수강과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취업준비생처럼 하루하루가 불안한 것도
아니고 이젠 정말 말 그대로 안정화가 되었다.
거기다 작년에 결혼을 하면서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은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나는 오히려 안정감에 취해 목표 의식을 잃고
수동적으로 살고 있었다. 해가 바뀌는 거에도
감흥 없이 그저 그런 하루를 보냈던 거다.
익숙함에 긴장이 풀리고 편하게 지냈던
시간들도 좋았지만 그게 계속되니 무료하고
몸이 축 늘어진 느낌이 들어 유쾌하지 않았다.
나만 혼자 정체되어 있는 것 같아 스트레스도 받았다.
작년에 내가 한 거라곤 넷플 시리즈물 몰아보기 뿐이었으니...
그래서 올해는 좀 다르게 살려고 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깨어있고자 한다.
아무런 생각 없이 목표 없이 평소처럼
지낸다면 또 그저 그런 날을 보내고
그저 그런 1년을 보낼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주어지고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냐에 따라
내가 지닌 가치가 달라진다.
나의 가치가 금처럼 확확 뛰진 않겠지만
적어도 작년의 나보단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넓은 평원을 힘차게 달리는 적토마의 기운을 빌려
올해는 더 능동적으로 힘차게 하루를 보낼 것이다.
안락하고 푹신한 일상에 목표를 가미하여 작년보다
더 보람차고 뿌듯한 한 해를 보내도록 애써봐야겠다.